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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한바탕 뜀질로의 몰입 등록일 2016.10.11 05:00
글쓴이 박복진 조회 1680





한바탕 뜀질로의 몰입                                                                  

 

   어린 유소년 시절. 나는 만경벌 철길 건너 마름방죽 옆댕이 논에서 쟁기질 하시던 아버지에게 갖다드릴 샛밥을 들고 갔습니다. 한 손에는 양은 주전자에 탁주를 담아들고, 다른 한 손에는 삶은 고구마 몇 개와 가닥 무우 김치 종지를 들고 들판 길을 맨발로 걸어갔습니다. 좁은 도랑을 훌쩍 뛰어 건너니 주전자 꼭지가 덜렁거려서 막걸리 국물이 찔끔거렸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막걸리가 안정되길 기다렸다가 다시 가던 걸음을 막 시작하려 할 때, 이 갑작스런 소동으로 들풀 섶에 숨어 있던 놀랜 왕 개구리 한 마리가 두 다리를 모아 깡총! 허공을 날아서 도랑의 냇물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나는 퐁당! 하고 뛰어든 개구리의 물 자맥질 자국을 바라보며 이 개구리가 어디로 숨었는지 도랑물속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일었던 구정물이 가라앉고 냇물 속이 진정되자 그 때까지 한참이나 더듬거리며 개구리의 행방을 찾던 나의 눈에 그 개구리의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여간해서 찾기 힘든 개구리 등 거죽의 위장 무늬에다가, 또 방금 일었던 진흙이 가라앉으며 그 개구리 등 거죽 위에 올라 타 앉으니 더 더욱 그 개구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힘들었던 그 상황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어린 나에게 그것이 참으로 인상 깊게 각인된 게, 그 때의 그 개구리는 물속으로의 자맥질로 인한 입수 행동으로 그는 그 때부터 세상 모든 것과 철저하게 유리된다는 점입니다. 찌는 폭염도, 근처 플라타나스 나무 위에서의 귀청을 때리는 매미 소리도, 식사 한 끼를 찾는 하늘 위 매 한 마리의 위협적인 선회도 도랑 속 진흙 안에 은폐된 이 개구리에게는 완벽하니 별난, 딴 세상일이었지요.

 

   그 개구리의 행동이 참 별나 보였습니다. 움칠움칠 진흙 속을 더 파고들며 다른 세상으로의 도피를 꿈꾸는 이 개구리의 재주는 정말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언젠가는 자기의 세상으로 다시 나와야겠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진 자기가 행할 수 있는 잠깐 동안의 위장능력이 그 개구리에게는 대단한 특기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나의 마라톤에서 이 개구리의 잠복을 곧잘 흉내 냅니다. 마라톤을 하는 동안 이 개구리가 자신을 은폐했던 그 재주를 본떠 봅니다. 한 바탕 뜀질로 인한 흥건한 땀이 내 몸을 촉촉이 적셔갈 때 나는 더 깊은 물속으로의 자맥질을 꿈꾸어봅니다. 적어도 내가 뜀질을 하는 동안에만은 나는 이 세상 모든 잡사에서 유리되고 싶습니다. 내 달리기 수양이 덜되어 내 비록 이 노력이 완전히 결실 맺지 못하고 겨우 주둥이, 대가리 앞부분만 진흙 속에 감춰진다 하더라도 나는 잠시 잠깐이지만 현실로부터의 이런 잠수를, 이런 완벽한 이탈을 꿈꾸며 달립니다.

 

   나는 달립니다. 짧게는 두 세 시간 남짓의 내가 사는 곳 남한강변 달리기부터, 길게는 100km, 15시간여의 내 조국 산하를 달립니다. 총총한 별이 있는 밤과 그 밤이 감아져 올라가며 새벽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 그리고 그보다 더한 또 다른 세계의 경험을 위한 초 장거리 200km 울트라 마라톤을 통해 저는 그 개구리의 잠수를 흉내 내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의 이런 의도는 가끔씩 현실로 나타납니다. 나의 의도에 심각한 접근만 하지 않으면, 그 의도를 까맣게 잊고 어느 만큼을 달리다 뒤돌아보면 나는 어느 순간 나의 목적을 달성했었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완벽하니 현실을 잊고 달리기에만 몰입할 수 있었던 방금 지나친 그 시간, 인식하게 되는 순간 달아나는 완벽한 몰입, 그래서 다시 되찾고 싶은 그 시간들을 위해서 나는 개구리의 자맥질을 흉내 내며 오늘도 달리고 또 달립니다. 나에게 이렇듯 한바탕 뜀질을 통한 나만의 의식세계로의 몰입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고마운 일입니다. 마라톤을 통한 현실 저 쪽 세계로의 자맥질, 네 지금 또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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