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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쌀바가지만큼 등록일 2016.10.11 04:56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51






쌀바가지만큼                                          

 

   6.25 동란이 발발되어 온 나라가 난리통속이던 여름, 대둔산의 남쪽 끝자락 조그만 산골동네에서 개나리

봇짐 몇 개, 세간 몇 점, 식솔들에게 당장 끓여 먹일 부엌 살림도구 몇 가지를 담아 주절주절 이고 지고,

자식들을 한데 모아 무리지어 피난을 떠나는 한 식구가 있었다. 조상대대로 이어 온 산골마을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이유는, 밤마다 산속에서 내려와 쌀, , 보리 등, 식량을 약탈해 가는 빨치산이 무서웠고,

전기불이 있을 리 없는 칠흑같은 산골짜기 스무 채도 안 되는 마을에 밤마다 볶아대는 빨치산의 따발총

소리 때문에, 죽어도 개명된 너른 들판에서 죽겠다는 것이었다. 이사를 가던 그 무리는 조금 더 큰 면소재지를

지나자 같은 이유로 피난길에 오른 또 다른 무리와 어우러졌다. 그들은 너른 들녘을 향해 신작로를 따라 피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던 도중 이제 겨우 두 살인가, 세 살인가 하는 사내아이 하나가 피난민들 틈에 끼어

밀치고 달치며 겁먹은 얼굴로 끌리어가다가 엄마 손을 놓치는 바람에 흐르는 시냇물 물살에 그만 휩쓸려

 떠내려갔다.

 

   엄마는 화들짝 놀래 들고 있던 세간살이를 패대기치고 사람 살려! 라고 울부짖었고 이를 본 어느 용감한

청년이 물속에 뛰어들어 그 아이를 구해주었다. 엄마는 이 아름다운 청년에게 사례를 하려하나 수중에

가진 것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들고 있던 쌀바가지 하나를 건네주며 자식의 목숨을 구해주신 그

고마움에 청년의 두 손을 꼭 잡고 연신 고맙단 인사를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이처럼 초라한 사례밖에 하지

못하는 처지에 대해 몸 둘 바를 몰라 그 바쁜 피난길에도 더 한참이나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피난민은 지금은 돌아가셔 안 계신 나의 부모님이었고, 쌀바가지 하나와 목숨을 맞바꾼 그 아이는,

얼마 후 바로 세상을 떠나서 이듬 해 태어난 나와는 눈 한번 마주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나의 바로 위

형이었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그 때의 그 고마운 청년에게 낡은 쌀바가지 하나로 고마움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두고두고 말씀하시며, 지금만 같으면 이름 석 자, 주소라도 알아놔서 명절 때만이라도

고기 몇 근 들고 갈 수 있을텐데 라고 매우 안타까워하시었다. 그 당시 거의 모두가 그랬듯이 모친께서도

일자무학이셨지만, 내가 남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해 그토록 고마워하시고 그리고 미처 못 챙겨드린 그

보은에 그토록 마음 아프셔했던 모습은 어릴 적 나의 기억 속에 어제 일인 양 지금도 또록또록하다. 황망히

피난길에 오른 마당에 연필 한 자루 있어서 이름을 적었겠나, 전화번호는 고사하고 전화라는 명사를 알아

후일 연락을 위해 묻고 대답을 했었겠나, 모친에게는 그것처럼 마음 아픈 게 없었던지, 평생을 사시면서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오래 전 무릎도리 상채기 마냥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한 희미한 기억이

되어버렸지만, 그 일을 말씀하시면서 자식들에게 가르쳐주셨던 교훈, 사람은 작든 크든 은혜를 모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지난 주, 제주도 일원에서 벌어진 제주일주 200km 울트라 마라톤 대회 때 주로 감독차 대회차량으로

주로를 돌던 나는 관계 임원과 함께 긴박한 상황을 발견했다. 서울에서 온 듯한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도로 옆 바위를 들이받아 부인이 의식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부인의 자전거 헬멧은

벗겨져 튕겨나갔고 머리에서는 선혈이 낭자하며 아스팔트에 흘린 피는 선지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나는

달리던 차를 멈추고 대회 본연의 임무는 팽개친 채 그 상황에 뛰어들어 응급하게 대처하며 119 구급대가

와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부인은 의식을 잃은 것 같았고 얼굴은 하얀 타일 색깔이었으며,

정신 차리시라 말하며 손으로 얼굴을 만지니 얼음장이었다. 그 상황에 남편 되시는 분은 구급차에 자기네

자전거를 같이 실어달라고 해 구급대원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옆에 있는 박물관에

말해서 잘 보관해 드릴테니 걱정 말고 어서 따라가라고. 얼마 후 응급실에서 그 남자 분한테서 전화가 왔다.

맡겨진 그 고가 자전거를 제주 택배사에 연락해서 서울 자기네 집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맡긴 사람인 우리가

 아니어서 택배사 직원에게 그 자전거를 인도할 수 없다하니 나보고 좀 가서 처리해달라고 했다. 해서

그렇게 처리해드렸다. 그 분한테서 전화가 오길, 자전거가 택배사에게 잘 인도되어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분에게서 전화 한 통이 없다.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고마웠다는 전화

한 통을 은근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그런 그가 이해가 안 되어 혼자서 중얼거리면 아내는 말한다. 도움 준

손은 잊어버리세요! 라는 말도 안 들어봤나, 이 양반아. 기다리긴 뭘 기다려요? 당신은 그게 문제에요. 기브

하라고 하면 중간에서 떼어먹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여태 안하지요? , 그럼 떼어먹는 그 사람 몫까지

얹혀서 더 주면 될 것을 가지고 요래 저래 핑계만 대고.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안 오면 어떠시냐고 먼저

전화하면 되지 않아요? 당신은 진짜로 그 부인이 걱정돼요? 전화 안 온 그 사람이 미워 그 미움이 쌓여가는

것이 걱정돼요? , 이렇게는 생각이 안돼요? 내 도움이 60 여 년 전 그 쌀바가지 하나보다 못했나보다, 라고?

기다리기는 뭘 기다려요, 이 양반아!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