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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아내의 훈목삼조 등록일 2016.10.11 04:54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37





아내의 훈목삼조                                     

 

   모든 게 부족한 시골에서의 내 유소년 시절에는 그럴 여유를 부릴 수가 없어 눈에 안 들어왔겠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서 나의 몸에는 이상한 유전자가 있음을 알았다. 아니 어쩌면 호남평야 한가운데 그곳,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았던 순수 시골에서의 벌거벗은 자연과 함께 자라왔기 때문에 이런 인자가 태동했는지도

모르겠다이것은 확실히 남과 다른 인자다. 나는 조금은 극성을 부려가면서까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구가

심한 것 같다.

 

   북적거리고 메마른 도시의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양평에 새 둥지를 틀고자 새집을 지을 때, 내 이런 인자

물고기는 드디어 물을 만났다. 내가 갖고자하는 집의 개요를 건축업자에게 설명할 때, 이 분은 처음에는

그런가 하다가 나중에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횟수가 많아졌다. 약간은 모자란 것 같이 반복되는 나의 끊임없는

이 요구사항 때문이다. 그러면 예쁠까요? 그러면 안 예쁘잖아요? 더 예쁘게 선을 좀 살려보면 어떨까요?

그걸 보고 누가 예쁘다고 하겠어요?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돈을 더 줘가면서 그런 말을 하라커니, 아니 미래의 박물관으로 남길 것도 아니면서

정신 좀 차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만 더 예쁘게, 조금만 더 예쁘게를 노래 부르면서 한정된

예산에서의 아름다움을 위해 내 미적추구 유전자와 꿍짝을 맞추며 설레발을 떨었었다.

 

   창틀의 가로, 세로 크기 이 한 가지를 정하고자 열흘을 고민했다. 커튼의 색깔 선택을 위해 이틀을 몽땅 바쳤다. 식탁 의자의 모양과 색깔을 위해 서울의 가구거리를 하루에 한 곳씩 3일을 헤매서 몽땅 바쳤다. 아내의 핀잔은

격려사로 들렸다. 아이고오, 그 돈 가지고 어림 반푼도 없네요. 그러나 이런 미적인 것에 대한 내 특유

고집으로 적은 예산에 이렇게나마 지금의 우리 집은 이렇게 봐줄만하다 라고 생각한다.

 

   미적 추구라는 내 몸속 이런 인자는 나와 상관없는 곳에도 가끔씩 발동되어 곤혹을 치르는데, 서울의 올림픽

대로 가로등 전봇대 모양이 미와는 영 동떨어졌다하여 서울 시장에게 7장의 설명서를 보내, 관계 서기관으로부터

 나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꼼짝없이 나가야했다. 서울시 정무 부시장 앞에서 서울시

가로등 담당자들에게 한 시간이 넘게 내 생각을 토로해야 했었다. 지금 전봇대 곡선이 단순히 아름답지

못하다는 구실 하나로..

 

   그런 나의 눈을 비켜가지 못한 곳이 한 군데 있다. 내가 매주 수요일 한 번씩 가서 수필을 공부하는 강의실이다.

 2 강의실이라고 적힌 출입문 위 팻말도 더 예쁘게 디자인해서 달아놓으면 좋으련만 그냥 행정적 발상에서

숫자위주로 적어놓은 것 같아 불만이다. 강의실 내부에 들어가면 실망은 더 커진다. 거칠게 찢기어서 지난 달

달력 생살이 군데군데 살아남은, 그림은 없고 숫자만 커다란 농협협동조합 대형 월력, 그나마도 항상 오른쪽으로

 삐딱하니 처져 언제나 힘들어하는 모습이니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는 영 불안하다. 우리 반 회장님의 지정석인

 왼쪽 벽에는 누가 갖다 붙여놓았는지 세계지도와 일본지도와 중국지도 이렇게 세 개가 있다. 이 세 개의 가로,

세로 크기가 각각 다른 것이 좌우 균형도 안 맞고, 배치도 안 맞고, 여기에 기본적 예의로 간단한 사진틀이라도

마련해서 그 안에 넣어주면 좋으련만 그냥 투명접착 테이프에 꾸욱 눌러 붙여놓아 꼭 네팔의 어느 산간 마을

임시교실에 있는 암기용 알파벳 그림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 이 강의실 분위기를 갉아먹는 추함의 극대화 종결자가 있으니, 그것은 짙은 밤색으로 스프레이된

소형 플라스틱 사출물 섹스폰 모양 벽시계다. 누가 갖다놓았을까? 그리고 이걸 가져왔을 때 그것 좋다고

여기에 걸자, 라고 누가 했을까? 색깔도 강의실 하얀 벽과 안 어울리고 그 크기도 여기에 안 맞고, 못을 박아

걸어놓은 위치도 전혀 안 맞는, 마치 재활용품 푸대 자루를 쏟다가 아직 살아있으니 버리지 말자, 라고 해서

쌀장수 화물 자전거 뒤에 실려온 것 같은 이 싸구려 섹스폰 모양 벽시계를 보고 좋다! 라고 몇 사람이나

동의했을까? 그리고 이것을 눈여겨보고 미와는 거리가 있다고 끌탕하며 혀를 차는 사람은 나 말고 또

있을텐데 누굴까? 색깔도, 크기도 위치도 전혀 맞지 않는 이 벽시계. 단지 있다는 존재감으로, 시각을

알려준다는 기능만으로 참고 보기에는 너무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 생각을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는,

학생 때 손목시계 없어서 밥사발만한 태엽시계를 책보에 넣고 기차 통학했다라고 하더니만 무슨 시계가

예쁘고 뭐 어쩌고 타령이냐며 나에게 훈목삼조를 상기시켜준다. 그 셋 중, 세 번째, 당신은 이제 나이 들었으니

 내 일 아닌 것에 참견해서 남의 입방아에 올라가지 말것! 알써욧?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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