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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신발의 추억 등록일 2016.09.30 05:35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55




신발의 추억

 

   나 어릴 때 엄마는 떨어진 검은 포제운동화를 요소비료 푸대 맨 위 끝 질긴 실로 꿰매주셨다. 철모르는 나는

검은 운동화에 하얀 비료 푸대 실로 듬성듬성 꿰맨 자국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그냥 맨발로 학교에 가려고

하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를 붙잡으시고서는, “ 거기 잠깐만 기다려라! ” 라고 하시며 급히 먹을 갈아 그

하얀 실위에 먹물을 묻혀 위장 (?) 해 주시며 이제 됐다, 신고가라! 고 하셨다. 서툰 위장으로 누구나가 알 수

있는 먹물 묻힌 포제 운동화였다. 너무 너무 창피해서 맨발로 달아나고 싶었었다.

 

   강변의 모래톱에서 동네 또래 아이들과 놀았다. 서쪽 하늘에서 시커먼 먹장구름이 몰려온다. 촌에서 낳아

촌에서 자란 우리들은 저 비구름은 지나가는 소나기라는 걸 잘 안다. 우리들은 누구랄 것 없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놓고, 발아래 모래를 헤쳐 굴을 팠다. 갈대 잎 몇 개 꺾어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운동화를 곱게 뉘고

다시 남은 갈대 잎으로 그 위를 덮고 모래를 쌓았다. 어느 아이는 입고 있던 옷도 벗어 신발과 함께 넣었다.

마치 망자를 초분에 모시듯 서두름 없이 차분하게 했다. 그러면 안에 있는 신발과 옷은 비에 젖지 않고, 우리는

웃통을 벗어 제킨 채지만 신발 젖을 걱정없이 한참을 더 놀 수 있었다. 등하교 때 비가 오면 젖지 않게 신발을

벗어 품에 넣고 맨발로 뛰었던 바로 그 귀한 신발이다.

 

   읍내 예배당에서 성탄절에 과자와 떡을 나눠준다고 해서 동네 형들을 따라갔다. 예배는 뒷전이고 목사님 방

입구에 쌓아놓은 선물과 먹을 것에만 자꾸 시선이 머물렀다. 드디어 바라던 떡을 받아 하나는 왼쪽 주머니,

또 하나는 오른 쪽 주머니로 내 것, 동생 것을 단단히 구분지어 넣었다. 바닥이 널빤지로 된 예배당을 걸어

나와 신발장에서 내 신발을 찾던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내 신발을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다.

눈은 수북이 쌓여 어른 발목까지 차고 올라올 정도인데.. 나는 울면서 눈 쌓인 신작로를 맨발로 걸었다. 얼마를

가다가 동네 청년이 나를 보고 등에 엎히라고 해서 엎혀서 집에 왔다. 잃어버린 신발 생각 때문에 그 날 이후

다시는 예배당에 가지 않았다.

 

   무역을 한다하고 세계 오대양 육대주를 봉사 파밭 두드리듯 쏘다녔는데, 무슨 얄궂은 운명인가, 들고 다니는

출장 가방 속에는 어릴 때 날 울린 바로 그 신발 제품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외국 코쟁이 분들에게 신발을

팔아 조국의 외화벌이 꾼으로 열심히 살았고 그 덕에 내 가족을 부양 할 수 있었다. 가끔씩 뇨소 비료 푸대 실

운동화가 기억나면, 나는 이름조차 생소한 외국의 작은 공항에서 찔끔 눈물을 흘리며, 그 눈물이 얼굴을 타고

턱 선까지 내려오게 그냥 내버려두는 청승을 떨 때도 많았다.

 

   말년에 이르러 어머니는 거동을 잘 못하셨다. 약간의 치매끼로 말씀도 못하셨다. 나는 아파트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출근하면서 어머니를 내 차에 태우고 내 사무실로 가곤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온갖

신발들이 진열돼 있는 내 사무실 상담실에 앉아 하루를 보내시며, 통유리 창문을 통해 당신의 아들이 근무하는

모습을 바라보셨다. 신발의 제작 공정이나 자재 등을 점검하기 위해 내가 신발 견본을 예리한 칼로 반으로

잘라 직원들과 함께 신발 내부를 세밀히 살펴볼 때, 어머니는 상담실의 회전의자 위에 올리신 두 발 중 한 발을

급히 꺽어 턱밑까지 당기시고 긴장하셨다. 그러고선 상담실과 사무실과의 통창 유리문을 통해 나를 더 유심히

바라보셨다. 신발이 곧 돈인데 멀쩡한 그 신발을 면도칼로 자르는 장면은 어머니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나 보다.

간혹 가다가 사무실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이 통창에 이중으로 투영되어 내가 잘 안보이시는지 의자를 이동해서

까지 위치를 바꾸시곤 아들인 나와 잘려나간 신발을 유심히 바라보셨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는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같이 귀가했는데, 돌아오는 차 속에서 어머니가 날 부르셨다. 운전석 의자와 조수석 의자 등받이를 양손에 걸치시고 두 의자 사이 빼꼼한 공간으로 고개를 내밀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언어활동을 멈추신 어머니가 아주, 아주 오랜만에 띄엄띄엄 입을 여셨다. 내 생각에 어머니는,

내가 이 나이까지 잊지 않고 있는 그 비료 푸대 실 신발의 슬픈 사연을 다 잊으신 줄 알았는데 그 게

아니었나보다.

 

애야! 너 그 때 그 신발 때문에 원이져서 지금 신발 허냐? ”.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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