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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핀란드 울트라 완주 편지(5) 등록일 2017.09.11 11:32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32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 편지

핀란드 종단 울트라 마라톤 225km (5) 

 

K 시인아!

 

오늘 50km를 달리는 주로의 30km 지점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핀란드 북부 시골 산길을 달리는 코스이기에 

그럴듯한 식당에서의 중식 제공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급수 지점에서 과일과 마른 빵 등 요기를 

면하게 해주는 기본 식사만을 생각하고 달렸다. 그런데 멀리의 앞선 주자가 길 위 주로표시를 따라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진입하는 곳은 놀랍게도 일반 가정 주택이었다. 달리는 내 뜀이 느려짐과 동시에 호기심으로 눈이 자꾸만 더 크게 떠졌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말이 시골 주택이지 우리 한국식 규모로 치면 최참판댁 부잣집같이 규모가 컸다. 그렇지만 여기 

기준으로 보면 평범한 핀란드 시골 농가로 치는가 보다. 도로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족히 200m는 되었다

식구들이 거처하는 본채 말고 우리에게 제공하는 점심식사 건물은 마당 한 켠 얕으막한 곳에 사방이 트인 별도 건물이었다

아마도 격조있는 실내 연희용은 아니지만, 날씨가 좋을 때 바깥기운을 쬐며 지인들이나 이웃들을 초청해서 음식과 술을 드는 

작은 모임의 용도로 쓰는 건물 같았다. 이 건물은 두 방으로 나눠졌는데 첫 번째 방은 들어와서 음료를 마시며 담소할 수 있는 

구조고 그 다음 방에는 본격적인 요리가 담겨져 있었다. 따끈하고 걸죽한 고기 스프, 쌀이 들어간 파이 같은 것 그리고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현지 전통음식인데 우리 한국인에게 잘 맞는 걸로 고른 듯한, 거부감이 없이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음식이 아니었다. 그 분들은 음식을 차려놓고 구글에서 그 음식의 한국어 이름을 찾아 복사기에서 꺼낸 이면지가 

분명한 종이에 설명을 해놓았다. 이것이 나를 울렸다. 차려놓은 음식 앞에 정성을 다해 써 놓아둔 글, ‘ 다진 고기 수프 ’, ‘ 쌀 파이 ’ 

그리고 그 아래의 이 집에 대한 설명문을 보는 순간 내 목의 울대가 움직였다. 내방객에 대한 무한 친절이었다. 자기 집을 찾아온 분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드리려는 정성, 그러면서도 자기 집에 대한 자부심을 내보이는 핀란드 시골의 한 마을 주민의 생각은 어찌 그리 

고고하단 말인가?

 

‘ Kivelan Mode ( 집 이름인 듯 ) 1893년에 내장되어 ( 지었다는 뜻인 듯 )있습니다. 우리는 25년 동안이 상태를 소유하고 있다

우리 우리 말을 타고 있다( 승마용 자기 소유 말을 기르고 있다는 뜻인 듯 ). 우리 개는 미국인 아키타있다 

( 개의 종자가 미국산 아키타라는 뜻인 듯 ).

 

눈에 들어오는 한국어 자모가, 그걸 써 놓아준 주인의 배려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식사를 위해 그 방의 문지방을 들어서는 

나는 치고 올라오는 감정으로 그 자리에 잠깐 멈춰 서서 그 한글 안내를 자세히 보고 또 보았다. 그러자 검은색 티셔츠로 인해 

하얀 피부가 더 하얗게 보이는 제법 통통한 체구의 주인 여성분이 나를 인도하며 어서 드시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우리를 위해 

점심을 마련해주시고 안내하시며 식사를 내미시는 세 분의 핀란드 현지인, 그 집 주인의 진정어린 환영 온기는 나를 감동시켰다

그 집의 터는 그 분들 가슴만큼 넓었고 여유로웠다. 안주인은 내가 식사를 마치길 기다렸다가 자기 집 안내를 시작하셨다

더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 가족들 전용 핀란드식 사우나를 보여주셨고, 자작나무 부스러기로 불 쏘시게 시범을 보여주셨고

본채를 지나 더 위쪽으로 가 취미를 위한 승마용 말을 키우는 마굿간도 보여주셨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본채 입구의 다음 

안내문이었다. 역시 구글에서 번역해서 출력해놓은 것 같은 우리 한글 설명문이었다. ‘ 집 구경하세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외국에서 접하는 우리말의 하세요오세요가 이처럼 심금을 울리며 정감있게 들릴 줄 몰랐다. 그리고 땀에 절은 동양의 

울트라 마라토너들에게 내실을 보여 줄테니 들어오시라고 구글 번역기를 통해 알아내어 써놓은 한글 안내문, 도대체 이 집 

주인의 심성은 어떤 분일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후 시내 모처로 ( 100km 정도 떨어져 있다고 했다) 출근해야하는 

친척 여성 한 분과 그 분의 친구 한 분은 속속 도착되는 주자들에게 음식 수발이며, 집 안내며 그냥 더 못해주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집 안팎을 뛰어다니다시피 하셨다. 현관에서 머뭇거리는 주자에게 그냥 신발을 신고 어서 들어가시라고 권유하는 

친절함도 보여주셨다. 그러면서 아시아의 동쪽 끝 한국에서 온 우리들에게 호기심도 많은 양 이것, 저것 질문도 해주셨는데 

이것은 이런 친절에 익숙치 못해 뻘쭘한 우리에게 베푸는 속이 깊은 배려로 보였다. 저렇게 마음이 고우니 요렇게 얼굴도 

뽀얗고 예뻤다. 우리가 무리지어 들어간 실내는 100년이 넘은 이 집의 내력이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었다. 주인이 직접 그린 

유화며 곰과 늑대를 사냥할 때 쓰는 도구며, 부싯돌 주머니가 옆에 달린 사냥꾼의 칼 등이 있었다. 벽 한 면에는 박제된 

동물들이 제법 여럿 있었는데 주인의 설명에 의하면 조석으로 100km 거리를 출퇴근하다가 다 자기 차에 치어죽은 동물들이라고 했다

그만큼 주변에 야생동물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곳을 떠나며 나는 감사의 인사로 이럴 때 드리려고 가져간 조그만 한국 전통 

열쇠고리를 내밀었는데, 선물이 약소해서 얼굴이 몹시 화끈거렸다. 1회 핀란드 울트라 마라톤 225km대회는 이렇게 감동으로

감동으로 이어져갔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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