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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 편지 (4) 등록일 2017.09.06 06:02
글쓴이 박복진 조회 1510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 편지

핀란드 종단 울트라 마라톤 225km (4)                                                          박복진

 

K 시인아!

 

   오늘은 50km 달리기 날이다. 달리는 거리가 긴만큼 오늘의 감동도 길고 깊었다. 우리가 달렸던 50km 구간에서 주자들은 계속해서 말했다. 핀란드는 청정나라라고들 말하는데 지금 이곳을 달리는 우리처럼 그 말뜻을 진정으로 느끼신 분들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청정의 진정한 의미, 나는 이렇게 풀어보고 싶다. 우리나라 설악산이 좋지만 그곳은 이미 청정과는 거리가 있다. 설악동 입구에서부터 주차를 위한 장사진, 곳곳의 안내판, 계도판, 서울 한복판과 다름없는 상가, 식당가, 넘쳐나는 인파. 어느 날 무슨 법에 의해 이 모든 것들이 사그리 사라진 설악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절대 고요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곳이 지금의 핀란드 이곳, 우리가 달리고 있는 주로일 것이다.

 

   달리다가 화장실이 필요할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한 주자의 질문이 있었다. 그러자 현지 진행요원은 주저 없이 말했다. 달리는 주로 옆으로 3 4m만 숲으로 들어가세요. 이렇게 바닥의 이끼 위에 있는 풀을 움켜잡으면 솥뚜껑만한 두터운 이끼 뭉치가 통째로 들립니다. 필요치 않은 몸 안의 고형물을 그 안에 배출하시고 옆으로 놔둔 솥뚜껑만한 그 이끼 뗏장을 그 위에 놓고 다시 달리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그 분은 실재로 이끼 뗏장을 잡고 들어서 떼어내는 시범을 보였다. 그 뗏장을 다시 그 자리에 놓으니 감촉같이 원형이 유지되었다. 즉 커다란 공중화장실을 만들고, 진입로를 만들고 분뇨를 실어 나를 도로를 만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여기 식대로 하면 숲은 항상 거기 그대로 원래대로 있게 되는 것이었다. 선진국 국립공원이라는 곳에 왜 공중화장실이 없을까? 라는 조롱이 섞인 의문을 가졌던 나는 무릎을 쳤다.

 

   18만개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호수를 가진 이 나라의 호수가 단 한 곳의 오염도 없이 잘 보존,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핀란드에서는 어느 호수에서든지 수영, 목욕이 가능하다. 물도 그냥 마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끓이기만 하면 더 안심하고 호수의 물을 마실 수 있다. 그것은 호수를 오염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철저하게 금하고 있고, 세수나 간단한 목욕조차도 일반 화학비누는 쓰지 못하게 하고, 자연친화적인 특수 비누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스팔트 바닥에 하는 주로의 임시 화살표 방향표시도 공업용 페인트 스프레이를 못 쓰게 하니 천연 밀가루를 사용해서 방향표시를 한다. 그 밀가루 값이 스프레이 한 통보다 비쌀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 핀란드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 국민성이 대단한 것이다. 숲속 트레일을 달릴 때도 그랬다. 방향을 나타내는 우리나라 근교산 등산로의 덕지덕지 합성소재 리본도 어느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공해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며칠을 지나면 자연이 소멸되는 자연 친화적인 소재로 만든 리본만 쓰게 되어있단다. 참 대단한 나라이고 대단한 국민들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나는 결혼식 때 신부가 입는 드레스의 이론을 만들어보았다. 그 드레스는 너무나도 깨끗하고 고결하기 때문에 그 옷을 입은 신부는 행동에 엄청 신경을 쓴다. 앉을 자리도 몇 번을 확인하고 청결이 보장되어야 앉으며 지나갈 계단도 그 드레스가 오염될까봐 너무 신경이 쓰여서 아예 옷을 걷어붙이고 다리 아래 맨살이 나오도록 옷을 위로 바짝 치켜들고 이동한다. 그만큼 옷이 깨끗하고 정갈하기 때문이다. 청바지 작업복 같으면 그렇게 조심을 안 할 것이다. 즉 이 나라는 그만큼 청결하기 때문에 그 속에 사는 국민들은 남보다 더 청결에 관심을 가졌으리라 여겨진다. 아니면 우리보다 더 일찍 자연의 오염을 경험해보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 라고 어느 시기에 자각하여 더 좋아졌던지. 내가 사는 곳, 내가 지나가다 머문 곳, 한 부분, 한 부분의 청결이 모여, 모여 나라 전체의 청정을 이룬 나라, 그래서 그 속에서 진정한 청정의 복을 누리고 사는 나라, 나는 이번 핀란드 울트라 마라톤 225km 전 여정 중, 특히 이 나라의 청정 보존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았다. 놀란 것은 그 분야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발견해서 현지인에게 왜 그러냐고, 이유가 무어냐고 물으면 그들은 그런가요? 그렇게 하면서도 나도 잘 몰랐네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즉 그들의 청정 노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일상 생활화되어 무의식중에서도 그렇게 해왔다는 사실이었다. 옆 동료가 말하길, 아마 오염에 관한 법률 위반 시 벌금이 워낙 세서 그럴 거야, 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동의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살고 있는 핀란드 분들이 그냥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여기에 벌금과 법률을 대비시키는 것은 우리네 삶의 척박함과 천박함에 불과하다고 까지 느꼈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