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 편지 핀란드 종단 울트라 마라톤 225km (3) 등록일 2017.09.02 05:37
글쓴이 박복진 조회 1638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 편지

핀란드 종단 울트라 마라톤 225km (3) 

 

K 시인아!

 

핀란드 울트라 마라톤 225km 대회, 날수로 치면 셋째 날. 우리는 잔자갈과 부드러운 흙으로 다져진 흙길 신작로를, 양옆에 아름드리

 자작나무소나무들의 열병식을 받으며 러시아 국경까지 42km를 달렸다. 국경이라고 해봐야 버킹엄 궁 경비병의 입초 초소만큼 작은 것

 하나가 전부였다그리고 제주 주민들이 외출시 대문에 걸쳐놓는 막대기만 한 진입금지 가로막대가 전부였다. 그 막대도 신작로 폭을 다 덮지 

못하고 끝은 허공에 떠있어, 마치 우리에게 러시아 국경을 한 번 넘어보라고 유인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신발의 그림자만 넘어도 그 때부터는 

러시아에 끌려가 남은 생을 장담 못한다하니 나는 벌벌 떨리어 국경선을 나타내는 선 앞에서 기념사진 하나 찍지 않고 뒤돌아 다시 뛰었다.


 

국경. 우리에게 국경은 남과 북의 초긴장이 상존하는, 서로가 서로를 꼬나보고 단 일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죽고 죽이는 현장이다

판문점 남북 공동 관리소에 갔었을 때 보니, 세로로 길게 지은 건물의 반 토막은 남, 그 나머지 반 토막은 북 소속이었다. 그곳을 지키는 

헌병의 두 주먹은 북을 향해 불끈 쥐어진 채였다. 거기에서는 그게 경비 근무수칙이라고 했다. 무기 반입이 안 되는 비무장지대여서 여차하면 

주먹으로라도 때려눕혀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여기 핀란드와 러시아 국경을 보니 나의 국경에 대한 상식은 여지없이

 허물어졌다핀란드와 러시아도 결코 순한 사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렇듯 느슨하다니. 더구나 그 일대는 핀란드와 러시아가 겨울전쟁이라고 

불리는 치열한 전쟁을 치루어 5만 여 군인이 전사한 곳인데도 말이다.

 

그곳은 전쟁사에서도 그렇지만 역사적으로도 핀란드인들에게 잊지 못할 곳이라고 했다. 5,000 정도의 소수 열세인 핀란드 군인이 

그 열배에 달하는 50,000의 러시아 군인들을 물리쳤던 곳이라고 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보다는 나는 다른 각도로 그곳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런 훌륭한 전승지에 우리나라에서 그 흔한 기념탑이나 기념관이나 동상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죽은 군인들 숫자만큼의

 큰 돌만 여기 저기 마구마구 흩뿌려 놓여져 있을 뿐이었다. 그 돌은 다듬거나 가공된 돌은 아닌 성 싶고 그저 발파석같이 주변에 흔한 커다란

크기로 말하자면 임꺽정이 온 용을 다 써도 못 들 크기의 커다란 바위 쑥돌이었다. 그 당시 이렇듯 죽어나자빠진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는 뜻일까?

이렇게 전쟁은 사람의 품위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일까


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지간에 나는 작가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이해해주고 받아드린 핀란드인들이 참 위대해 

보였다작가는 여기 이 전쟁의 참상을 너무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이끼가 낀 바위, 잡초들 속에 나뒹구는 발파석 쑥돌. 죽은 자는 이렇게 

잊혀지고산 자는 그 망각을 살리려 애쓰고. 우스꽝스런 조형물로 싸구려 기념비나 탑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온, 그냥 내팽개쳐진 

바위쑥돌의 웅변이었다. 작가로서 이런 작품을,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바위 쑥돌을 두고 작품이라고 관공서에 출품한다면 그래서 그 작품의 

대가를 요구한다면 우리나라 관공서에서는 이게 통할까? 이게 뭐야? 돌무더기 여기 저기 갖다놓고 작품이라고 돈을 달라고? 그럴 것 같으면 

우리가 구청 청소차로 날라다 놓고 그 작가 출품은 없던 걸로 하면 되겠네.. 라고 하지 않을까? 나는 다소 긴 시간을 할애해 작가의 뜻

핀란드인의 단순 검소하나 높은 예술에 대한 자세를 눈에 가득 담아 뛰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그곳은 핀란드와 러시아간 수오무살미 겨울전쟁의 

현장이었고 나는 그곳을 뛰었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