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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그 남자 등록일 2016.09.30 04:21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74




그 남자                               

 바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와 오후 일을 하려는데 남자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귓바퀴가 펴질 정도로 아주 큰 목소리를 내어 나를 놀라게 한
그 남자는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이름을
불러대며 자기를 나에게 상기시키려 했습니다. 나야, 나! 성규, 박 성규! 그러면서
아직도 어리둥절한 나에게 속사포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고! 나!
초등학교 동창!

 고향의 초등학교 이름을 대며 면사무소하고 우체국 중간, 중촌 마을에 살았고,
또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초등학교 또래들도 거론하여서 나는 내 기억력을 탓하며
그 남자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아, 정말 미안하다. 나는 생각이 잘 안 나는데,
너 몇 반이었냐? 라고 묻자 그 남자는 나? 너하고 같은 반은 아니었지. 내가
4학년 때 대전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네가 날 잘 모르는가보다, 만나보면 금방
생각이 날거야! 그러자 나는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야, 그러면 조금만 더 일찍
전화해서 같이 점심이라도 할 걸 그랬다, 지금 어디라고? 그래, 빨리 와,
이거 몇 년 만이냐? 40년도 더 넘었쟎아 그치? 너 오늘 꼭 부산에 내려가야
되냐?

 나는 내 사무실 냉장고에 마실 것이 혹시 떨어지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앞 제과점에 가서 간식거리도 사다놓아 달라고 여직원에게 부탁을 하고
그 남자를 기다렸습니다.  40년 만에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 먼지
풀풀 나는 면사무소 앞길, 우체국 가는 고향의 시골신작로를 생각하며  
도대체 누구인데 왜 내가 동창 이름을 기억 못할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만나서도 얼굴이 생각나지 않으면 어떡해야 되나? 거참! 누굴까?

 한 시간도 안 되어 그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남자의 얼굴과 나의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앉아있었던 내 의자에서 벌 쏘인 목뒤를 손바닥으로 치듯 쌔게,
철썩! 하고 책상 위를 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무지무지하게
큰 거짓말을 했습니다. 내 평생 살면서 이렇게 큰 거짓말을 해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옛날 중곡동 복개천 니나노 막걸리 집에서, 어제 눈 쌍꺼풀 수술하고
밤탱이 눈두덩으로 나와 술 따르던 여인이 자기 쌍꺼풀 예쁘게 잘 되었느냐고
물어 그렇다고 한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이었습니다. “ 야, 너 얼굴 보니까
생각난다. 그래, 어서 와라! 아까 생각 안 난다고 한 것 정말 미안하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동네 마실도 잘 안 갔잖아! 미안하다. 너 어찌 하나 투 안 변했냐,
쨔식! “

 그러자 그 남자는, “ 그래 우리 너무 오랜만이다. 너도 어찌 쬐끔도 안 변했냐?
옛날 그 얼굴 그대로네.  야, 정말 반갑다. 진짜루다가 반갑다! ” 라고 말을 했고
나는 땀을 흘리는 그에게 선풍기도 약풍에서 중풍을 건너뛰어 대번에 강풍으로,
노란 오렌지 주스도 뚜껑 딴 것 말고 새것으로 돌려 따, 뚜껑 위에서 떨어져나가는
밀봉 pvc 껍데기를 옆 쓰레기통에 통! 넣고 포도주 마실 때 먹는 허리 잘록한
유리잔에 담아주며 우리 둘은 고향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남자의 고향에
대한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로 굉장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1시간이 넘게 학교와
고향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해외지사 근무를 오래해서 자기가 그 동안 동창회나
친구들 대소 애경사에 참석을 못해 늘 죄 짓는 것 같았다하며, 다음에 서울에
올라올 때는 크게 술 한 번 사겠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롯데그룹 매장 23군데에
납품을 하고 있으며 부산 요지에 크게 창고도 가지고 있어 밥은 먹고 산다고 했는데
말하는 폼으로 보아 이 밥이 내가 먹는 그런 밥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는
크게 성공한 초등학교 동창 이 친구에게 정말 장하다! 라고 추켜세우며, 사무실이
좁아 의자가 벽 쪽에 너무 가까이 붙은 관계로 의자 뒤가 벽에 닿아 뭉개 벗겨진
내 의자 뒤쪽을 말하는 중간 중간 손바닥으로 가리곤 했습니다.

 이제 가야겠다고 일어선 그 남자, 나의 초등학교 동창을 복도의 승강기까지
배웅 나가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나에게 그는 말했습니다. 갑자기 양복 왼쪽
가슴, 속주머니 부분을 더듬으며 아참, 지금 나랑 같이 올라 온 상무가 롯데
거래처 매장을 돌고 있는데 그 차에 내가 지갑을 다 놓고 와서 그러는데 급히
접대해야 할 일이 있으니 현찰 있으면 되는대로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내일
바로 온. 라인 ( 그는 한국인이 잘 틀리는 발음인 올. 라인이라고 하지 않고
온. 라인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해서 그의 사회적 성공이 지금보다 더 이어질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 송금을 해 줄 테니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별안간에
기분이 안 좋아졌지만 지금까지 이야기 나눈 분위기를 감안해서 도저히 나는
그 요청에 아니오! 를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40여 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의 부탁인데 거절할 명분이 없었으며 있다하더라도 그러면 나는 지금껏
나의 삶이 그렇게 매몰차 왔다는 증표가 될까봐 거절을 못했습니다. 뭔가 켕겨서
엉뚱한 방향으로 넘어가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풀어버린 치마끈을 다시 매기는
매우 어려운 7년 과부의 파계 직전 형국이었습니다. 그는 명함도 차 안에 있다고
하며 필요 없다고 우기는 나를 밀치며, 메모지를 달라고 해서 주니 또박또박
적어주었습니다.  (주) 대유통상 대표 김성규  051-258-4246/8, 011-9717-4246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837 대우 마리나 APT 207동 903호 051-708-6337. 나는
두 번째 거짓말을 했습니다. 뭘, 천천히 생각나면 보내주지. 아, 또 안
보내주면 또 어뗘? 둘이서 술 한 잔 먹었다고 생각하면 되지.

 그렇게 그는 갔고, 내가 전화 해주어 그 동안 이곳, 저곳에 새로운 동창이
40년 만에 나타났다고 친구들에게 전화질을 했던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 으응.. 나여. 그런 이름의 우리 동창은 없다는데.. 걔, 갔어? 명함 주고
갔어? 내가 직접 한 번 전화 해보게.”

 나는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죽어도 내 손으로 그 전화번호를 즉시
돌려, 너 내 동창 맞아? 라고 그 친구의 진위를 내 스스로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 지금껏 살아온 내 머릿속에 이만큼의 용기도 없었다니... 속내를 애써
감추고 나는 그 남자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춘포초등학교 40회 동창회 총무에게
주었고 조금 후, 나는 벙어리가 내 마빡을 후려치고 간 듯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창문 밖의 잠실 석촌 호수 잔물결만 바라보았습니다. 총무가 전해주는
말은 이러했습니다.

 “ 그 번호 전부 없는 번호야. 핸드폰 돌리니까 어떤 모르는 강릉 아줌마가
받는데 아니랴.. 자꾸 또 돌리니까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느냐고
짜증내더라고. 허지 말라고.. 혼자 사는 여자라고 알고 수작떨면 신고한데.
요즈음 사기꾼들 초등학교 동창 사이트에 들어가서 게시판 글을 한 보름 정도
보고 스토리를 다 맨들어 가지고 온데.  그래가지고 접근해서 허풍 좀 떨고
있는 체 하면 거기에 맞게 부른데.  30 이고 300 이고 마음먹은 그대로 불러
마음먹은 그대로 가져간데.  복진이는 보니까 궁기가 있어 보였나, 왜 30만원만
불렀지? 나한테 왔으면 내 허풍에 돈 천 뜯겼을텐데.. 어쩌겄어? 낼 부터섬 걔
잡으러 댕길라고? 그렇게 못 할 사람이라는 것 다 알고 왔을껄?  잘 본거지...”.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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