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엽서를 부치러 간다 코로나 사태로 학교 개학이 불가능해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살면서 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해괴한 방역 지침이 내려지자 네 살, 여덟 살 두 손녀 녀석들은 이곳 시골 내 처소로 내려와 거의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개학 준비를 위해 즈네 부모들, 나의 아들과 며느리의 손에 이끌리어 다시 서울로 훌쩍 떠났다. 두 녀석은 새가 대문간 옆의 빨간 우체통 속에 새집을 지으려고 물어다 놓는 지푸라기들을 보고 눈이 똥그랗게 되었고, 마당 한 켠의 흔들흔들 의자 그네에서 목을 뒤로 젖힐 때 바라보이는 하늘을 보고 저런 게 파란색이구나, 라고 알았다. 그네 옆 모과나무 둘레에 심은 청산도 채송화에서 꽃잎들이 올라오니 밋밋하니 죽은 색 잔디에 깜짝 덧칠되는 그 분홍색을 몹시 좋아했다. 창고에 처박혀있던 고물 자전거를 꺼내 빨간 불자동차 색 페인트칠을 해서 큰 정원수 아래 말뚝에 박아 고정해 놓으니 그 위에 폴짝! 올라타서 설치 미술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하루는 봄철 밭작물의 이식을 위해 내가 밭을 파서 쇠스랑으로 두렁을 만들고 고랑을 내는 텃밭에도 따라 나왔다. 파란색 단색 무늬 고무 장화에 내가 하얀 페인트로 땡땡이 무늬를 그려 넣어준 만화 장화가 귀여웠다. 뒤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놀이 하던 두 녀석의 엉덩이에 붙은 흙이 봄철 반의 반나절 햇볕만으로도 저절로 떨어져 사그라졌다. 개집 옆 산수유나무 꽃을 보고 TV로 보았던 코로나 바이러스 같다는 관찰력을 보여 나를 감탄시켰다. 손 씻고 발 씻고 머리 감고 저녁 식탁에 앉았을 때 팔각 유리 창문을 통해 바라보던 해가 서쪽 산을 통해 붉은색을 남기며 넘어갈 때, 입에 문 숟가락을 떼지 못하던 손녀는 나에게 저것 좀 보라고 했다. 녀석의 감성적 소양이 이렇게 나를 놀라게 했다. 지난 한 달 모두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서로 간 떨어져야 했지만, 나와 손녀 사이는, 그 또래들이 으당 가야만 하는 피아노, 태권도, 미술 학원들을 멀리하고 대신 나와는 밀접 접촉상태로 더 가까워졌다. 두 녀석이 서울로 떠나자 나는 이제 또다시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으로 돌아왔다. 늘상 하던 그대로 양자산 임도를 두 시간여 뛰고 들어오니 두 녀석의 시선이 머물렀던 곳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어제 보았던 꽃잔디가 오늘은 신행 나서는 신부의 분홍색 치맛단 색깔처럼 더 짙어지고, 그때는 못 보았던 개복숭아 꽃망울이 오늘은 쏘옥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날 앞산 옆으로 날아갔던 왜가리는 오늘은 개천 바위에 앉아 꼼짝 안 하고 굴렁쇠처럼 멈춤이 없이 굴러가는 세월의 바퀴 그림자를 낚고 있다.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무언가는 하여야만 할 것 같다. 조용히 설합을 열어 엽서를 꺼내 손녀에게 쓴다. 문자와 카톡의 휴대전화가 아닌 육필로, 어제와 다른 오늘 지금의 꽃소식, 화신을 전한다. 잘못 갈세라 우편번호까지 꼬박꼬박 채워서 쓰고 파라핀 초에 불을 붙혀 떨어지는 촛농 위에 구리로 된 도장을 꾹 눌러 내 서명까지 마쳤다. 이제 이 엽서를 울트라 마라톤 배낭 속에 넣고 마을 용담천을 따라 10리를 뛰어가서 면 소재지 간이 우체국으로 갈 것이다. 손녀는 할아버지의 첫사랑이라고 말해주던 K 시인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고 생각하며 갈 것이다. 울트라 마라톤 할아버지, 나는 지금 첫사랑에게 엽서를 부치러 간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