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나는 안다 등록일 2019.08.27 07:53
글쓴이 박복진 조회 795

나는 안다.

 

   어르신들! 그 사람들 오는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요번 공일날, 교회 마치고 초등학교

강당으로 모여서 딱! 두 시간만 연습하는 걸로 할게요. 작년에 했던 공연, 딱 그대롭니다.

그 때는 정말 좋았지요? , 그것대로만 하면 됩니다. 우리 연주가 한 곡, 한 곡 끝날 때 마다

그 한국 사람들 엄청 좋아했어요.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고 고개를 양옆으로 요래, 요래 흔들고

어깨를 들썩이며 어느 여성분은 발까지 구르고, 감동으로 눈가를 촉촉이 적셔가며 마치 적당히

뽕 맞은 사람들 같았다니까요.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신명이 많은 분들은 처음 봤어요.

100km, 200km 마라톤 한다는 그 분들에게 그렇게 연하고 풍부한 감성이 있었다니 놀랍지요?

얼마나 좋습니까? 아시아 어디 끝터리 동쪽 쬐꼬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용케도 우리 이곳

여기를 알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와서 울트라 마라톤을 뛰고, 우리 연주를 듣고

그렇게들 좋아하고 .. 제가 너무 신명이 나서 다음 연주곡목의 시작을 놓칠 뻔 했다니까요.

이번에도 한국 사람들 그 분들 오면, 작년처럼 씨니까 리이피넨 부인께서 책임을 맡아 부인회

몇 분들과 팀을 만들어 먹을 것으로 즉석 파이와 음료를 준비합니다. 우리는 그 분들 도착 전에

좀 일찍 나와서 한 시간 정도 연습을 좀 더하다가 한국 팀들이 탄 리무진이 모니 호수를 출발할 때

깔레씨가 전화를 주면 멈추고 주변 정리를 하며 의자에 앉아 대기합니다. 마당의 천막과 의자는

학교 창고에 있는 것 꺼내서 쓰면 될 듯합니다. 버스가 도착해서 학교 정문을 들어올 때

환영하는 식으로 먼저 연주를 할지, 아니면 그냥 착석해서 그 분들을 맞이할지는 어떻게 할까요?

좋은 쪽으로 결정해 보기로 합니다. 시간은 작년과 똑같이 오후 5시 쯤 도착해서 두 시간 좀

더 되게 있다가 늦어도 8시 전에는 끝내고 모니 호수로 간다고 합니다. 곡목은 작년에 했던 것

그대로지만 그래도 손을 맞춰봐야 하니 오늘 연습하고, 다음 주, 그 다음 주 두 번 정도만 더

손을 맞춰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마 작년처럼 한국 팀들 중에서도 자기나라 악기를 가지고

와서 연주하는 한 분이 있을 겁니다. , 왜 울긋불긋 요상한 소매 복장으로 머리에 두건 두르고

이마에 천으로 만든 꽃을 접어 매고 재작년부터 맨 날 올 때마다 연주하는 그 사람, ,

모래시계같이 가운데가 오목하니 처음 보던 타악기 있지요? 올 해에도 아마 또 할 것 같습니다.

자아, 우리 그러면 오늘, 그 사람들 구호 한 번 외치고 연습을 좀 시작해볼까요?

아자, 수오미, 나빠삐이리 !!

 

   나는 한참 연주에 빠진 그 실버악단을 바라본다. 오늘의 연주를 위해 그동안 해왔을 연습

날들을 상상해본다. 마른 침을 삼키며 목울대를 올렸다가 내려놓는다. 감격으로 눈이 젖어간다.

100 가구 정도 밖에 안 되는 핀란드 중부 베마스킬라 이 작은 면 단위에서 이제 연례행사가

되어가는 울트라 마라톤 한국인 환영행사. 여남은 단원들은 이미 평균나이 70이 넘어 보인다.

젊었을 때 조금이라도 악기를 연주해보았던 마을의 모든 분들이 총동원된 마을 실버악단,

그들이 일 년여 자체연습으로 베풀어주는 우리 한국인들에 대한 진심어린 환영은 곧 자기네

조국 핀란드의 뜨거운 자부심이자, 세계 행복지수 일등국의 권리로 여기나보다. 나이 많은

그들의 어눌하나 진지한 움직임이 내 가슴을 깊이 후벼 파서 여러 도랑을 만든다.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그 무엇이 거기를 가득 채우고 넘치며 흘러간다. 한 도랑은 부러움이며 또 한 도랑은

시기질투며 또 한 도랑은 원인 모를 행복감, 그리고 피부색을 초월한 인간애다.


  , 나는 안다. 이 분들은 힘 하나 안들이고 이방인과 교감하는 기술이 있음을 안다. 나는 감동과

감사와 눈물의 도가니 임시 천막내의 관람석을 빠져나와 소매로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바라보는

핀란드의 파란 하늘, 거기에는 놀랍게도 대한민국에서 북극권 기류를 타고 넘어온, 구름 몇 점이

만들어놓은 상형문자가 있었다. 고국의 아내가 만들어 보낸 멋진 그림 문자, 나도 알아요.

 

대한민국 뜀꾼 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춘포

박복진

이전글 | 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