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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그 남자 등록일 2016.10.11 05:06
글쓴이 박복진 조회 1686






그 남자                                           

 

   나는 매일 아침 새벽 거의 정해진 시각에 어느 남자를 봅니다. 내가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햇수로 거의 2년이 넘습니다. 그 때는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도로에 수북이 쌓여 있던 낙엽들도 다 쓸어 걷어내어지고, 그 위에 북쪽 찬바람이 맛보기로 휘이잉! 하고 한바탕씩 쓸고 지나가던 초겨울 쯤 이었습니다. 내 남편의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입어야 할 와이셔츠를 다려놓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던 생각이 나서, 이른 새벽이지만 침대에서 내려와 겉옷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습니다. 베란다 구석에 세워 놓았던 다림질 판을 가져오기 위해 거실 미닫이 창문을 열었을 때, 유리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아파트 단지 내 도로의 움직이는 물체가 그 남자였습니다. 이른 겨울, 그 남자의 입김인지, 콧김인지 모를 하얀 김이 날숨 되어 뿌옇게 흐트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어느 한 남자의 새벽 운동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그 남자의 모습이 단지 내 도로 끝까지 다 가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그 남자의 존재를 잊어 버렸습니다. 새벽 창문 너머로 보았던 어느 한 남자의 아침 달리기하는 모습은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들썩거리는 압력 밥솥 뚜껑의 꼭다리처럼 잠깐 시선을 끄는 평범한 일상이었으니까요.

 

   처음 본 그 후로 두 어 달이 지났습니다. 월요일 내 남편의 출근을 위해 또 다시 베란다 창고에서 다림이 판을 찾으려고 나가다 무심코 창문 밖을 내다보았을 때, 나는 그 남자의 모습을 또 보았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그 남자의 운동 복장은 바뀌었으나, 네 분명 저 모습은 바로 두 달 전 그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달리면서 내뿜는 날숨의 입김, 콧김은 두 달 전 보다 훨씬 더 진하고 선명해 졌습니다. 당연히 날씨 탓이겠지만 나는, 어쩌면 그동안 나와 마주치지 않았지만 그의 진지한 운동 자세로 보아 그 남자의 운동 강도가 더 세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두 어 달 전에 보았던 짧은 반바지 차림 밑으로 보였던 적당히 그을린 근육뭉텅이의 두 다리는 긴 트레이닝 바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변함없이 그 남자는 또 그렇게 아파트 단지 내 소 도로 끝으로 달려갔습니다. 내 시선이 그 남자를 따라가기에는 바깥이 너무 어두워서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또 그 남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남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그 시각, 그 장소를 지나가는 아주 특이하고도 보기 드문 끈기의 소유자인 것 같았습니다. 그 남자는 지금에 와서 알았지만 마라토너이었나 봅니다. 그런 단어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마라토너, 이제 막 마흔이 된 주부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의 가슴에 민들레 홀씨처럼 살포시 들어와 자리한, 언제부터인가 내 소녀시절 감성을 간지리는 그 남자, 동네의 아파트 아줌마들 간에는 꽤 알려진 7단지 마라토너 남자라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나봅니다. 느끼었던, 안 느끼었던 마흔 살 아줌마인 나의 마음에 동네 마라토너 그 남자의 존재는 조금씩, 조금씩 파고들어왔습니다. 이러다가 무슨 일이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짜릿한 감성으로 동네 마라토너 그 남자를 향한 나의 마음은 조금씩 기울어져 갔습니다. 이제 새벽 그 시간,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나가는 그 남자의 모습을 기다릴 때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단지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그 남자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 거려보는 용기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 망측해라! 마흔 살 아줌마, 내가 이름 모를 어느 중년 마라토너를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40여 년을 살아온 나의 지난 세월이 분리수거 하는 날, 다락방에서 삘건 프라스틱 노끈으로 묶이어 나오는 지난 해 실전 수능 문제집 다발같이 그냥 내 던져지기 시작하는 운명이 나도 모르게 다가 선 것입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앉아서 옷고름 돌돌 말며 기다리는 수줍은 아낙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아끼던 빠알간 립스틱을 바르고 단지 내 도로 골목 굽은 곳에서 그 남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운명을 내 치마폭에 다 담아 가지고 갈 요량으로, 앞 뒤 분간 없이 달려오던 그 남자 앞을 막고 섰습니다.

 

  “ ... !! ”

 

   ‘ , 왜 그렇게 놀래 서 있어요? 뛰어 왔으면 어서 빨리 씻고 밥 먹고 출근 할 생각은

안하고! 토스트 잼이 떨어져서 사러 나왔어요. 사가지고 바로 들어 갈 테니 어서 먼저 들어가요. 당신, 이 꼭두새벽에 뛰어 오면서 꼭 무슨 좋은 일 생각하며 뛰어오는 것 같대요. , 좋은 일 있었어요? ‘

 

 

   정신없이 쓸 데 없는 공상을 하고 달리던 내 앞에 터억 버티고 서있는 사람은, 내가 맞아 뒈지기 전에 있었던 진실을 죄다 털어놓고 이야기 하자면, 평소 내가 그냥 보기만을 좋아하던 동네의 그 예쁘장한 아줌마, 가끔씩 내가 단지 내 새벽 도로를 뛰어 갈 때 내가 안보는 척 하며 남의 집 베란다 창문 너머로 흘깃흘깃 바라보던 그 아줌마가 아니라, 나의 아침 식사를 위해 떨어진 딸기 잼을 사러 나온,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스런 바로 내 아내이었습니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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