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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신발 이야기 1 등록일 2016.10.11 05:24
글쓴이 박복진 조회 2011




신발 이야기 1

 

기억 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저의 신발에 대한 추억은, 아마도 4-5살 때, 시골 마당 한 구석에서 뒷집의 여자 소꿉동무 친구와 놀던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 이전인지, 그 이후 인지도 확실치 않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죄다 논으로 들로 일하러 나가시고 텅 빈 동네, 텅 빈 집 마당, 한여름 처마 끝 대롱대롱 달린 가느다란 그늘이 토방 안까지 밀려 내려와 있을 때, 나는 뒷집 소꿉동무와 아버지 검정 고무신, 어머니 하얀 고무신을 가지고 놀았지요.

 

1950년 중반, 동란으로 4년 여 난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당시 지금처럼 장난감이 있을 리 없었고, 있었다면 장에 가서 팔아 한 끼 쌀로 바꿔먹어야 할 정도로 절박했던 그 시절, 우리 둘 소꿉동무는 날만 새면 한 숟갈 밥으로 허기를 메우고는 본채와 헛간사이 처마 그늘 막 아래에서 소꿉놀이로 하루를 보내곤 했는데, 그 때 그 뒷집 여자 친구의 이름은 행복이었습니다. 김 행복.

 

깨어진 사금파리로 흙을 긁어모아놓고, 아버지의 커다란 검정 고무신 한 짝은 그대로 놓고, 나머지 한 짝은 뒤 코를 둘둘 말아 신발 앞 코에 콱! 끼어서 트럭을 만들어 신발 뒤쪽 적재함에 그 흙을 싣고서, 퍼질러 앉아 앞, 뒤로 위이이잉! ! 고무신 트럭을 조종했지요. ,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으로는 한 짝은 그냥 놔두고 나머지 한 짝을 그 위에 얹혀서 코는 콧속에 넣고 발뒤꿈치는 발뒤꿈치에 넣으면, 위에 올라 탄 신발은 활처럼 휘어져서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곡선 모습의 멋진 리무진이 되었지요. 그 택시 안에 앞마당 끝 남새밭에서 자란 풀 잎사귀 몇 개를 뜯어와 승객을 만들어 공짜로 태워주기도 했고요. 수틀리면 차 세워놓고 차비 내야 된다고 앙칼지게 싸움질도 마다하지 않았던 행복이의 그 당시 돈에 대한 그 집착력을 버리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밥은 굶지않고 잘 살고 있을텐데, 그 이후 행복이의 소식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 얻어 신은 검은 광목 포제 운동화는 걸어갈 때 접혀지는 발가락 부위가 어찌나 잘 떨어지던지요. 그 당시 세상에서 제일 질긴 뇨소 비료 푸대 뜯은 실로 어머니가 꿰매주시기는 했지만, 검정 포제 운동화에 하얀 비료 푸대 실의 꿰맨 자욱이 너무나도 보기 싫어 신지 않고 맨발로 가려하면, 엄마는 먹을 갈아 그 먹물로 하얀 뇨소 비료 푸대 실을 검게 칠해 위장해 주시곤 했지요.

 

그런데 내가 상상도 못하는, 그 당시 같은 대한민국 하늘아래 다른 한 쪽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다름 아닌 제 아내의 이야기이었습니다.

 

시집온 후 어느 날 저녁 밥상에서 알게 된 이야기지만, 아내는 어렸던 그 당시 최신 제품이라고 하며 극소수 선택된 사람들만 신을 수 있었던 만화 슈즈라는 걸 신고 다니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했습니다. 나에게는 그것만도 대단해서 내 기는 꽉! 휘어 잡혔는데 그 다음 이야기는 나를 더욱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아내는 어릴 적 대구 도시에서 살면서, 부모 잘 만나 살림이 괜찮았던가봅니다. 부모님이 사준 최신 만화 슈즈의 그림이 싫증나서 멀쩡한 것 놔두고 다른 것을 또 사달라고 보채었으나 사 주지 않자 한 짝 신발을 살그머니 동네 입구 하수구에 처넣고 집에 와서 신발 한 짝 잃어버려 내일 학교 못 가니 얼른 새로 신발 사달라고 조르려고 하였다합니다. 그런데 외출해서 돌아오시던 아내의 엄마가 무언가 잔뜩 묻은, 시궁창에서 마악 꺼내 땟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신발 한 짝을 들고 들어오시며 하시는 말씀, ‘ , 네 신발 한 짝이 저기 시궁창에 빠져있노? 거참, 희안하데이.. 내 빨아 놀끼니, 마리면 신고 가그레이.. ’

 

빨기야 빨았겠지만, 시궁창에 빠졌던 그 만화 슈즈를 한참이나 더 신고 다녀야 했던 아내의 고통이 꽤 클텐데, 아내는 오히려 나를 더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혀를 끌끌 차면서 맥없이 다른 한 손으로 식탁 위의 빵 부스러기를 꾹!! 찍어 다 먹은 접시에 훌훌 털며, ‘ 세상에나! 없이, 없이 살아도 어떻게 그렇게 없이 살았다냐? 비료 푸대 실이 뭐야, 비료 푸대 실이..’

 

6개월여 동안 신고 줄창 뛰어재껴 뒷굽이 허옇게 들어난 운동화를 만지작거리며 내일은 신발 수선 집에 갖다가 뒤창 수선을 맡겨야 되겠다고 결심하던 오늘 아침, 내 어릴 적, 없이 살던 때의 신발에 대한 추억이 눈앞에 아련히 피어오릅니다.

 

춘포

박복진

( faab 마라톤화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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