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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퓨전 명인 울트라 마라토너 등록일 2016.12.09 10:20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45




퓨전 명인 울트라 마라토너, 

어릴 적에 학교 ( 초등학교 ) 갔다 와서 내 살던 시골 우리 집 양철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늦가을 양지바른 곳 마당 한 귀퉁이에서 아버지가 볏짚 지푸라기를 추리고 계셨습니다. 물 확독에 지푸라기 끝을 얼마간 담갔다가 꺼내 짚 다발 꽁무니를 토방에 탁! 탁! 두둘겨 끌을 맞추시더니 짚 덤불을 손으로 훑어 내시어 짚 가닥을 잘 추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지푸라기로 토방 한 켠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무우 잎사귀 가닥들을 차례차례 엮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동작은 수 년 간 계속되어온 아주 일상적인 것이었음으로 허툰 동작이 전혀 없이 일사분란하게, 아주 일정한 속도로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간혹 동네 골목을 지나가던 동네 어른이 낮은 울타리 너머로 바라보이는 우리 아버지의 이 동작을 보고 한 마디 하시면 대꾸는 하시되, 이 동작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 자네 무엇 하는가? 시래기 엮는가? 오늘 밥값 하네 그려. ’ 
‘ 보면 몰라, 이 사람. 자네도 얼른 이것 하소. 그래야 올 시안 ( 겨울 ) 나지 ’ 

간혹 지푸라기에 물이 덜 먹여져 지푸라기가 뻣뻣한 관계로 무우 시래기가 잘 엮어지지 않으면 퇴! 퇴! 하고 손바닥에 침을 주어 그것을 연하게 만들어 무우 이파리들을 엮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시래기 엮음은 햇볕이 안 드는 뒤쪽 마당 굴뚝 쪽 처마 안쪽 서까래에 대롱대롱 달아놓아 겨울 한 철 우리네 시래기 된장국감으로 쓰였습니다. 어쩌다 동네 냇가에서 대나무 낚싯대로 낚아 올린 참붕어 몇 마리라도 있을라치면 그 시래기는 훌륭한 참붕어 시래기 매운탕 감도 되었지요. 지금도 그 맛을 못 잊는 현대 도시인들이 근교의 시래기 매운탕 집을 찾곤 하는데 저는 그 분들도 저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무우 시래기 엮음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달 일요일, 저는 양평의 제 처소 소나티네에서 그 무우 시래기 묶음질로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지푸라기로 시래기 묶는 그 기술이 어떠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아내 몰래 살짜기 동네 할머니에게 가서 지푸라기로 시래기 엮는 기술을 다시 물어 확실하게 다시 익힌 뒤, 집으로 얼른 돌아와 시침 뚝! 떼고 제가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기술인 것처럼 익숙하게 지푸라기로 무우 시래기들을 엮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에 제가 봤던 저의 아버지가 하셨던 그 동작 그대로 싱싱한 무우 잎사귀들을 차례차례 굴비 엮듯이 엮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늦가을 한나절 햇볕이 제법 따스하니 제 목덜미를 간질이고 있고, 구름은 그런 햇볕을 주기적으로 막았다가 텄다가하며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기가 막힌 날씨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앞산의 만산홍엽은 빙그레 웃으며 그 큰 팔을 턱에 고이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고요. 

집 안에서 식탁보를 개키던 아내가 데크로 나와 바깥을 훑어보다가 이 장면을 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맨날 뜀박질만 할 줄 알았던 이 양반이 저런 기술도 가지고 있었나? 하며 무척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대구 시내에서 살다가 시집 온 아내가 이런 장면을 보았을 리가 없지요. 그러더니 다시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디지틀 카메라를 가지고 고무신 발로 나와 나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 그 시래기 다발 묶음 들고 여기 좀 쳐다봐요! 금방 당신이 엮은 그 지푸라기 시래기 묶음 들고.. 그렇지, 그렇게, 옳치! 멋있다.. 세상에나.. 어떻게 저렇게 지푸라기 몇 가닥으로 저걸 안 흘리고 가지런히 다 묶는다냐.. 신기하다. ’

졸지에 나는 민속촌에서 구시대 생활상을 재현하며 살아가는 구닥다리가 되었습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울트라 마라토너와 지푸라기로 묶는 무우 시래기 묶음 기능장, 한껏 고무된 퓨전 명인이 되어 잘 하지 않는 낮술을 들고, 취한 술에 또 취해 작은 방에서 장구를 꺼내 무우 이파리 너절부러진 데크에서 굿거리 한 판을 신나게 두드렸습니다. 누가 나보고 할 줄 아는 게 뜀박질 뿐이라고요?

춘포 
박 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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