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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편지, 2018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1) 등록일 2018.07.11 08:47
글쓴이 박복진 조회 1141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편지                              

2018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1)

 

K 시인아!

 

   울란바토르를 새벽 6시에 출발한 우리 일행 차량 10대는 동으로, 동으로 하루 종일 달려 이곳 마넹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우리 식으로 치면 군 정도의 작은 도시다. 62018년도 몽골 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대회. 우리는 오면서 시야에 거침이 없이 파고 들어오는 몽골 특유의 초원 모습에 넋을 잃고 사진기를 들이댔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이렇게 너른 들이 있었던가? 마이크로 소프트 컴퓨터의 초기 화면과도 같은 이런 넓은 초지가 있었던가? 펼쳐진 화폭에 점점이 그려진 방목 양떼들, 말들, 소들, 염소들. 내 집이고 내 구역이니 당연히 도로고 언덕이고 간에 망설임 없이 자연스레 어슬렁거리며 우리가 달리는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짐승들. 나 또한 그들의 자유분방함에 점점 동화되어 천천히 녹아 들어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지금부터 몽골의 말이며 소이고 염소며 양이다! 그렇게 여기에서 910일을 눕고 뒹굴고 기고 뛰어볼 것이다! 그러나 도회인의 속물근성도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있어 가끔씩 튀어나온다. 여긴 땅값이 얼마야? 양 한 마리에 얼마면 년봉으로 치면 얼마야? 아마도 인천공항에서의 비행거리가 고작 3시간 반, 그런 생각이 아직도 대롱대롱 내 두뇌 어딘가에 붙어있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자기 꼬리가 안 닿는, 그래서 파리를 쫒기가 어려운 목과 머리 부위를 상하로 끊임없이 흔들어 대는 말처럼, 나도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덜 떨어진 생각을 떨쿼본다.

 

   우리는 눈만 뜨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좋은 말들, 좋은 글들 속에 산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 지인들은 좋은 글이라고 하면서 퍼 날라준다. 마음을 비우세요. 나누세요. 서로 사랑하세요. 여행이 가고 싶으세요? 그럼 바로 떠나세요. 그러면서 정작 자기는 죽는 그날까지 재산을 더 못 모아 안달복달 하다가 죽는다. 떠나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면서, 남에게는 그런 글을 퍼서 나르면서 정작 자기는 그 며칠 시간을 못 내어 눈앞에 찾아온 소중한 여행의 기회를 망설이다 놓쳐버리는 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여기 오신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참가자분들은 예외다. 결코 짧지 않은 910일을 혼쾌히 질러버린 분들이시다. 가서 보지 않은 미답의 길을 내발로 찾아오신 분들이시다.

 

   매번 그랬지만, 이번 원정에도 특이한 사연을 가지신 분이 몇 분 계셨다. 그 분 중 한 분. 직장을 때려치우고서라도 가시겠다고 하시고 맨 먼저 참가 신청을 하신 분이다. 작년에 신청을 했다가 출발 몇 주를 앞두고 직장 눈치로 다음으로 미루신 분이다. 그 분은 몽골의 초원이, 몽골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자유가 돈보다도, 직장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말씀하시며 이번 기회는 놓치지 않겠다고 하셨다. 무엇이 그 분을 이 척박한 몽골로 끌고 왔을까? 그 분은 여기서 무엇을 보며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아니 그 분은 여기 몽골의 대자연, 광활한 초원에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비울 수 있을까? 자식을 가슴에 묻고, 날이 좋으면 좋은 날, 궂으면 궂은 날, 소주 한 병 사들고 자식의 묘를 찾는다는 그 분의 가슴에 박힌 못을 이 광활한 몽골 초원은 과연 빼줄 수 있을까? 이 세상 모든 것이 치유를 포기한 그 분의 상처를 몽골은 과연 보듬고 안아주어 힐링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그 분을 찾았다. 하얀 티셔츠에 빨강 faab 티셔츠를 입고 짙은 색안경으로 멋지게 얼굴의 거의 반을 가리고 머플러로 목을 휘감아 한껏 멋을 내신 그 분. 아직 첫날이지만 여기 몽골이 어떠세요?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라는 나의 질문에 그 분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오길 정말 잘 했어요. 내가 어디 가서 어떻게 이런 풍광을 봐요. 앞으로가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그러는 그 여성분의 눈가에서 나는 눈물을 보았다. 백 마디 말보다 더 웅변적인, 입을 통한 언어보다 더 진한 눈을 통한 언어를 훔쳐보았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몽골의 광활한 대초원을 일렬종대로 달려 나가는 차량 10대의 대이동이 만드는 굉음과 먼지가,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몽골에서만 자라는 야성이, 그 분의 상처 치유를 위해 시동을 걸었다.

 

...계속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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