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파리 몽마트 언덕에서 등록일 2016.09.27 17:10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41

K  시인아,

 

프랑스의 파리에 와 본 것이 스무번 정도 되겠지만

그 중에 이곳 몽마트에 와 본 것은 몇 번이나 될까?

아마 열 여섯 번이나 열 일곱 번 쯤일게다

그만큼 파리의  변두리 이곳 몽마트, 몽마르트는 내 감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

 

내 가슴의 어느 부분, 무슨 감성을 잘 맞추어주는 것일까?

변두리, 언덕. 가난.  밑바닥. 화가. 예술. 빵가게....

 

없는 사람도 나름의 예술적, 정서적 포만감을 가지고

나만의 감성을 만족시켜가며 살 수 있는 곳, 그렇게 보이는 곳.

뭐 그 속내는 잘 알 수 없지만,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감이 사실과 다를 수 있겠지만

대충 이런 이미지가 나의 발걸음을 자꾸 이곳으로 오게 만드는 것 같다.

 

K  시인아 !

 

지난 달,  해외 출장 중 경유지인 파리에 들러서

예외없이 메트로를 타고 아베쎄역에 내려 작으마한 호텔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골목을 돌고 돌아 몽마트 언덕을 올랐다.

 

털실 장갑을 끼고 손을 후후 불어가며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떨어진 저 쪽 구석에서 아코디언을 켜는 한 악사가 있었다

나는 예전에는 화가들의 그림 쪽으로 다가갔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나는 거리의 그 연주자 악사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지금 풍물 연주를 배우고 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는 내 신분이 나도 남 앞에서 연주를 하기 위한 풍물을 배우는 

풀물교습 학생이니 지당한 말씀이다. 

 

그 어코디언 악사 앞에는 매우 허름한 모자 하나가 놓여져있고

그 모자 속에는 유로인지 프랑인지는 모르나  아주 수준 낮은 동전이 조금 흩어져있다.

 

그는 연주를 계속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어코디언이 두 손을 이용 연주하는 악기이니

나에게 시선을 주는 것이 연주에는 하등 방해될 게 없었나보다

그의 외투는 매우 허름했다

그리고 1 월 파리의 겨울 바람은 아주 차가왔다

 

K  시인아 !

 

나는 조금 더 오래 이 거리의 악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 그 자리에 내가 대입되었다

거리 모퉁이에서 장구를 치고 있는 나의 모습,

꽤나 즐거울 것 같은 나의 모습이 금방 상상되었다

 

흑건으로 머리 전체를 감싸고

그 위에 하얀 꽃천을 둥그렇게  둘둘감아

이마 정 중앙에 커다란 꽃을 접어 만들어 치장하고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를 타고 흘러내리어 뒤 엉덩이 위에 매듭을 길게 만든

적,청, 황 삼색띠를 걸치고 앉아있는 내가 상상되었다

 

그리고 느리게 느리게 다스름으로 시작해서

굿거리, 덩덕궁이, 짝쇠 놀음으로 이어지는 마루채 사물놀이를 연주 하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양산도 가락은 어려워 아직 떼지 못했다 ).

 

K  시인아 !

 

가능할까?

내가 장구를 매고와서 , 이곳 몽마트 언덕에서,

한 달포 정도 머물며 치는 것이 가능할까? 거리의 악사 신분으로 살아보는 게 가능할까?

 

그러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내 사회적 신분에 어떤 영향이 올까?

나를 엉뚱한 사람이라고 할까 ?

아 그 사람있잖아, 그 사람..  파리 몽마트 언덕에서 장구치며 동전 받고 있다네 그려?

라고 친구들이 소줏잔 기울이며 할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돌았다고 측은해 할까? 내가 못하는 것 하고 있다고 부러워할까?

아니면 연주 그 자체의 실력을 가지고 말하며 그 정도 실력으로 그런 용기를 가지는 게

용하다고 혀를 내둘을까? 그냥 재미있다고 할까?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라고 할까?

 

그런데 문제는,

 나는 언젠가 그렇게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강렬한 욕구가 내 발가락 끝 모세혈관에서부터 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슴을 찰랑찰랑 넘치게 하고 더 올라와  대가리를 채우고

정수리를 뚫고 분수처럼 위로 솟구칠 것 같다는 것이다

 

장구.  풍물

파리의 몽마트 언덕 거리의 한국인 악사...

아,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순간.

 

나는 도난 방지를 위해 허리에 찬 속지갑은 그냥 놔두고

청바지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다 꺼내 그 악사 모자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그 어코디언 거리의 악사와 눈을 맞추고나서 자리를 뜨며 그에게 큰 눈웃음을 주었다 

 

조만간 이자리에서 다시 봅시다, 친구여 !

 

춘포

박 복진

대한민국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 슬래머

장구잽이



 

 

 

 

 

 

이전글 | 인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