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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편지, 2018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4) 등록일 2018.07.26 09:48
글쓴이 박복진 조회 1171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편지                              

2018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4)

 

K 시인아!

 

여기는 세계에서 유일한 360도 지평선 대초원, 몽골의 마넹지역이다. 비가 좀 오면 풀이 사람 허리춤까지 자라, 그래서 이 지역 마넹 소고기 육질이 국내에서 제일로 맛이 있다는 곳이다. 지금은 석 달째 가뭄으로 풀의 길이가 겨우 양말높이까지만 자라있는 곳이다. 달리는 내 속도가 늦어진 건지, 앞선 주자가 빨라진 건지 내 앞 주자가 꼴까닥 지평선을 넘어가니 이제 이 우주에 나 하나 달랑 남았다. 말이 없는 묵언 수도승처럼 아무런 말도, 생각도 없이 얼마를 달려 나갔다. 그야말로 지평선만 존재하는 마넹 대초원의 특별 은혜를 흠뻑 받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리자 내 앞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학교를 파하고 동네 골목에서 뛰놀던 나에게 어머니가 가만히 다가오셨다. 그리고 내 손목을 잡고 조용히 끄셨다. 나는 재미있게 뛰놀고 있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왼발 오른 발이 엉긴 채 마지못해 어머니를 따라갔다. 비녀를 꽂은 엄마의 돌돌말린 쪽진 뒷머리에 한낮 칠월 중순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 꽂혔다. 세월에 눌려 저절로 삐딱해진 양철 대문을 옆걸음으로 통과한 어머니는 나를 볏짚 낸내 나는 굴뚝을 왼쪽으로 끼고 뒤안 장독대로 데리고 가셨다. 사람 발소리에 놀란 장독대 앞 봉숭아가 분홍색 꽃잎 하나를 떨퀐다. 중간치 항아리와 뒤에 서있는 큰 항아리 사이를 가리키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기 저거 얼른 먹어라.

 

그것은 방문의 격자무늬처럼 좌로 우로 길게 허리춤에 벌려 써진 복 복자 한문글씨가 있는 큰 국사발이었다. 거기 안에는 금방 삶은 중간치 닭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큰 국사발 가장자리를 따라 누우런 닭기름이 띠를 둘렀고 그 띠 안에는 숟갈로 뚝! 떠서 건져먹고 싶은 놀놀한 닭기름 방울들이 큰 것, 작은 것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놀랜 내가 어머니를 바라보자 어머니는 주먹으로 꿀밤을 주는 시늉을 하면서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어서 먹으라니까! 딴 애들 오면 뺏긴다, 거기 앉아서 어서 먹어라. 싱거우면 호박잎 위 장아찌랑 어서 먹어라. 내가 앞마당에 있을테니 얼른 먹고 나오너라!

 

우리 집 그 닭은 낳는 족족 그 알이 팔리어 내 잡기장도 사고 연필도 사고 수재 의연금도 내고 했던 우리 집의 살아있는 현금지급기였다. 그런 것이 지금 무슨 조화를 당해 무성한 털들은 죄 뜯겨나가고 알몸으로 국사발 속에 하늘 향해 두 다리를 벌리고 있다. 뒤안 장독대에서 끓는 물에 담가진 닭은 털이 뽑히고 다시 볏짚 불에 삶아진 채 초복의 복달임이라고 커다란 국사발에 담겨 내 앞에 놓여졌다. , 어머니! 아들의 영양식을 위해 현금지급기를 죽여야 했던 그 절박한 심정의 내 어머니. 그 때 어머니는 날 위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전장의 장수가 군 훈령을 위반한 부하를 치듯 그토록 의연하게 그 닭을 죽였을 것이다. 그런 의지로 날 내내 키워주셨을 것이다.

 

어머니. 허구헌날 무역한답시고 세계를 돌아다니느랴 밥 한 끼 따뜻하게 같이 먹어보지 못했어요. 철이 좀 들어 그 죄스러움을 알아차렸을 때 어머니는 이미 가시고 이 세상에 안 계셔요. 불효를 알고 불충을 아파할 때, 날이 궂거나 날이 너무 좋을 때, 그래서 내 가슴을 퉁!! 치며 하늘을 올려다 볼 때 어머니는 이미 안계세요. 나날의 바쁜 일상에, 잠시 잠깐의 묵상 시간도 갖지 못하다가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 어머니 생각이 나 목에 피가 나도록 울고 싶어요. 자꾸만 눈물이 나요. 그런데 어머니는 안 계셔요. 망칠 나이에 이 무슨 변괴인지 모르지만 주책없이 자꾸 눈물이 나요. 자꾸만 자꾸만 이렇게 참회의 눈물이 나요..

 

나는 지금 환생하신 내 어머니랑 나란히 이곳 몽골의 대초원 마넹을 뛰고 있다. 절대적인 침묵이 아니면 결코 맛 볼 수 없는 무한 질주의 지평선 한가운데에서, 달디 단 참회의 눈물을 혀끝으로 받아 입속으로 밀어 넣어가며 달리고 있다. 지금 이곳의 내 화두는 돌아가시고 안 계신 내 어머니다. 마넹이 나에게 허해준 환생하신 엄마와 나는 지금 울며 웃으며 7 시간째 달리고 있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