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편지, 2018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3) 등록일 2018.07.11 08:53
글쓴이 박복진 조회 1065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편지                              

2018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3)

 

K 시인아!

 

아가야, 그렇다고 죽지는 않아 !

이 말은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께서 생전에 나에게 남겨주신 만량 무게의 말씀이었다. 어린 나에게 너무나 거창해서, 너무나 힘들어서 혹은 너무나 막연해서 뚫고 나가기가 겁나 망설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나에게 해 주시던 말씀. 나는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내던져질 때 마다 이 말씀을 꺼내 무기로 삼고 헤쳐 나왔다. 여권 발급에 6개월이 걸리던 시기, 둥그런 지구를 미처 생각 못하고 교실 벽에 걸려있던 평면 지도만을 믿고 해외에 나가서 겪은 시행착오. 산업화 초기의 온갖 역경을 딛고 해외로 나돌며 신발을 팔던, 미지의 세계에 발가벗겨 내동댕이쳐진 시기에 이 말씀 하나는 나에게 창이 되고 칼이 되었다. 배고픔에 한 덩이 주먹밥이 되었고 이역만리 낯선 공항 대합실에서 시차로 인한 수면부족으로 자꾸만 내려 가라앉는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 올려주는 마법이 되었다. 지금껏 내내 살면서 지켜온, 그래, 그렇다고 죽지는 않아, 그런 정신의 일환으로 나는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을 창설해서 내리 6년째 뛰고 있다. 나는 이것을 모험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아온 내 내면에 대한 조그만 반란으로 생각하며 그 반동을 즐기고 있다. 바지랑대에 쓸 요량으로 대나무 하나를 잘라 손으로 위아래를 훑어볼 때 반질반질 손바닥 안에 감촉되는 까칠한 턱 대나무 마디의 감촉처럼 그렇게, 그렇게 조금만 거칠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그런 것이 이렇게 큰 반향을 몰고 올 줄 몰랐다.

 

초장거리 뜀꾼들은 몽골에 환호했다. 뾰족하니 솟아오른 나무 한 그루 없는 무한으로 너른 푸른 초원에, 풀 한포기 없는 스텝지에, 바람이 몰아다 쌓아놓은 믿기 어렵게 황홀한 모래산에,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던 기암괴석 산세에 환호했다. 하루도 못되는 불과 몇 시간의 말타기 체험, 말을 몰고 강물을 건널 때의 물튀김에 괴성을 질렀다. 식솔을 먹여 살릴 취사도구 몇 가지와 말과 양, 염소를 몰 장대와 채찍 하나로 살아가는 그들의 단순 삶으로 걸식하듯 호기심을 채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없이 뛰고 싶다!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무한 초원을 끝까지 뛰고 싶다! 하루 왼종일, 아니 밤을 새우며 뛰고 싶다! 라는 꿈을 간직하며 살아온 우리 초장거리 뜀꾼들에게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대회는 바로 그 실현이었다. 그들은 적금을 들고 그걸 깨서 낙타의 선한 눈망울을 보고자 몇 년을 기다린 분들이시다. 오늘 여기 서 계신 분들이다.

 

초라하지만 너무나도 고맙고 인간적인 동네 4인조 브라스 밴드의 출발 환영식이 있었다. 비가 흩뿌리고 있어 조금은 스산한 동네 조그만 학교 운동장이었다. 이미 삼 개월 이상 한 방울의 비가 없었던 메마른 스텝지에서 비는 하늘이 주는 축복이었다. 대한민국 울트라마라톤 원정대가 비를 몰고 와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런 마음씀이 또 얼마나 고마울까?

 

출발 환영식을 뒤로하고 우리와 몽골 현지 운영요원들을 태운 차량 10대는 200km 초원지대를 달리다가 멈췄다. , 이쯤에서 출발을 할까? 그런 것 같았다. 울트라 마라톤 출발지가 우리처럼 강변 둔치 주차장도 아니고, 어렵게 허가받은 코딱지만한 생태보존지역 내 운동장도 아니고 그냥 초원 한가운데다. 360도 지평선 한가운데다. 다시 말해서 울릉도 가는 페리선을 타고 한 시간 쯤 가다가 만나는 바다 한가운데라는 말씀이다. 여기가 오늘 달리는 대회 첫날 울트라 코스다.

 

100km를 반지름으로 하는 기다란 밧줄을 한 바퀴 빙 돌려 만든 원 속에 우리들이 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몽골의 망망 대초원 메넹, 스텝지에 우리가 섰다. 누군가가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이 기막힌 정경을 찍으려 선 자리에서 360도 한 바퀴 돌며 말한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다냐? 지루해서 어떻게 뛴다냐?

 

그런 물음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현지 요원들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별로 서두름이 없었다. 우리가 물었다. 언제 출발해요? 그러자 그 요원이 말했다. 지금 차가 앞으로 나가면서 500m 마다 깃발을 꽂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깃발을 따라가면 됩니다. 깃발이 없으면 코스가 너무나 평평해서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그리고 자기 그림자 각도를 잘 지키며 뛰세요. 50km 제한시간 7시간 반입니다. 앞이 둥그런 지평선이어서 빨간 깃발의 끝은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에 있었다. 겁이 났다. 그 때 어머니 말씀이 또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뛰어봐, 아가야. 그렇다고 죽지는 않아..

 

... 계속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