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말고.. 나이가 들면서 잃어가는 것은 피부 탄력만이 아니다. 기억력이 자꾸 떨어져서, 예전 같으면 앞, 뒤 재볼 필요 없이 직관적으로 판단해서 벼락불같이 잽싸게 처리하는 것들도 나이 들어가는 지금은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감을 잃어가니 매사에 행동이 굼뜨게 된다. 그러자니 한 번 더 묻게 되고 더 쳐다보게 되고 더 생각하게 된다. 주절주절 이게 나 혼자 상황이면 그나마도 괜찮은데 그 자리에 상대가 있을 경우, 상대는 피곤함을 느끼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짜증을 내기도 하며 종국에는 가급적 나와의 차후 대면을 피하게 되는,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아내로부터 듣는 불평이나 핀잔의 상당 부분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 아니, 생각 안 나요? ’ 라든가, ‘ 아니, 아까 말했잖아요? ’ 라는가, ‘ 아니, 몇 번을 말해야 돼요? ’ 등등 아내의 말씀 서두에는 ‘ 아니 ’ 라는 접두어가 매번 붙어있는데, 이 불길한 접두어가 나오면 그 뒤에는 항상 부정적인 힐난이 따라붙어 나의 기억력과 판단력을 더욱 주눅 들게 한다. 이 기억과 판단이라는 게 무슨 형상이 있어 어느 한 곳, 잘 보이는 곳에 단단히 챙겨서 간수해 놓는다든가, 무시로 들락거리는 거실 한쪽 벽에 압정으로 눌러 놓는다든가 하면 좋을텐데 좌우 앞뒤가 그렇지를 못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다음에는 내가 억지로라도 더 많은 신경을 써서 잘 기억해야지, 그래서 다음에 ‘ 아니.. ’ 접두어로 나가는 한심한 설교를 면해야지, 라고 단단히 나름 결심도 해보지만, 이는 이룰 수 없는 한낱 희망 사항일 뿐이다. 내 결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노년의 가련한 기억력은, 용을 쓰면 쓸수록 그저 자꾸자꾸 사그라들 뿐이고 세월의 같은 바퀴 위에 장착된 젊은 날의 내 명석한 판단력도 병행해서 무디어지고 느려지며 쪼그라들 뿐이다. 나에게는 이제 겨우 다섯 살, 아홉 살짜리 어린 두 손녀가 있는데 이 두 녀석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조마조마하고 걱정거리 투성이고, 더 단단히 챙겨서 주변을 더 살펴야 할 것들 천지다. 평면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주말과 휴일에 이곳 시골의 내 전원주택에 온 녀석들은, 뛰어놀다가 현관 문지방 턱에 걸릴까, 식탁보를 당기다가 그 위에 있는 물 담은 화병을 쓸어뜨릴까, 마당으로 내려가는 데크의 계단을 건너뛰다가 잔디 마당에 고꾸라질까, 텃밭에 들어가 놀다가 나뭇가지에 머리나 안 부딪칠까, 그저 눈 닿는 곳 모두가 지뢰밭이고 도처에 조심할 것 천지 삐깔이다. 당연히 나는 녀석들 뒤를 따라다니면서 조심하라고 아까 한 말 또 하고 또 하게 되어 손녀로부터 귀여운 짜증을 유발하게 된다. ‘ 아니, 할아버지 그 말 아까 했잖아요.’ 라든가, ‘ 아니, 할아버지, 알았어요. 알아요. 아니, 괜찮아요 ’ 라며 요녀석들까지도 내 귀에 익은 ‘ 아니 ’ 접두어를 자주 쓰곤 한다. 그러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 아니, 자꾸 귀찮게 하지 마라, 하라, 하지 말아요. 요즈음 애들은 우리 어릴 적보다 더 잘 알아요. 그리고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자꾸 하면 애들도 싫어해요.’ 그러면서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로 나의 입을 딱! 봉쇄해 버린다. ‘ 그러면 애들도 이제 여기 우리 집에 잘 안 와요’. 지난주에는 서울의 아들네 집에 무슨 바쁜 일이 있어, 우리 내외가 서울 아들네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다섯 살 손녀의 유치원 등원을 내가 맡게 되었다. 유치원이 걸어서 갈 수 있는 지근거리지만, 사는 곳이 대단지 아파트라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요리조리 구불구불 돌고 돌아가야만 했다. 다섯 살 손녀는 자기가 가는 길을 안다면서 앞장서서 걷고, 과연 길을 잘 찾아갈까 의구심이 있던 나는 손녀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 정말로 길을 알아? 잘 갈 수 있어? 이쪽이 아닌 것 같은데? 할아버지가 아는 바로는 모놀 ( 모래 놀이터 )에서 왼쪽으로 갔다가 516동 쪽 거놀 ( 거미줄 놀이터 ) 쪽으로 꺾어지는 게 아닐까?’. 그때마다 또박또박 자기가 잘 안다고 하며 말대꾸를 해주던 손녀는 종국에는 인내심의 한계에 이르렀나 보다. 툭! 뱉은 이 한 마디로 내 입을 완전하게 막아버렸다. 다섯 살 여자아이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아무리 요즈음 아이들이 옛날 우리들 클 때와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당차고 야무진 말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자기를 못 믿고 계속해대는 잔소리가 싫었었나 보다.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 왜 그렇게 의구심이 많고 왜 그렇게 많이 나서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었나 보다. 그래서 오늘 아침, 나의 유치원 등원길에 신경이 쓰이고 미워지기까지 했다는 뜻의 이 한 말, 많이 봐주어 고맙게도 ‘아니’ 접두어는 생략해준 나의 예쁜 5살 손녀의 이 말씀. 칠순 노인이 된 내가 다섯 살 손녀의 말을 새겨서 듣고 앞으로는 될수록 입을 닫고 살아야 한다고 느끼게 해 준, ‘ 나만 믿고 따라와, 할아버지이이. 아무 말 하지 말고오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 슬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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