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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아, 목동아 ! 등록일 2016.09.30 05:02
글쓴이 박복진 조회 2419




, 목동아!

 

   숱하게 가졌던 모임 중 생각이 가장 많이 나는 모임이 있다. 잠시 몸을 담고 봉사활동을 했던 지체부자유 이동

도우미 송년회 자리다. 봉사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지난해의 봉사 경험담이나, 도움 받은 장애인들의 보은인사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화기애애하게 이어지고 나서, 마지막으로, 후원자들에 대해 고맙다는 뜻으로 지체 부자유분들 중 한 사람이 대표로 봉사자들에게 노래 한 곡 바치는 순서가 왔다.

 

   나는 그 때까지 그 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내 옆 탁자에 앉아있었던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짙은 검정색 투피스 옷차림의 여성이 일어날 때까지 나만 모르고 있었다. 좌중의 모든 이들은 이 분을 익히 알고 계시는 듯 많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 분은 곧장 단상 위로 올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계셨다. , 이 분은 앞을 못 보시는 장애를 가지고 계시구나, 하는 나의 안타까운 숨이 코가 아닌 입으로 새어나왔다. 어느 분이 이 분 옆에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자 그 분은 도우미 손을 잡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단상에 오르는 계단 3개를 멈칫멈칫, 매우 불안하게 발 더듬이를 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단상에 다 올라가서 도우미가 틀어주는 방향에 따라 몸이 돌려지니 이 여성의 고개는 객석 우리 쪽을 향하게 되었다. 그 분은 도우미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잡았다. 다섯 살 꼬마에게 잠자리를 잡아 건네줄 때 무서, 무서워하며 손가락 사이에 그 잠자리의 날개를 끼어서 쥐어 잡는 꼬마 동작같이 매우 조심스럽게, 어눌하게 그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 그 분은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라는 게 모든 참석자들에게 다 알려졌다. 그래서 장내는 더 숙연해졌다. 아까 그 도우미 분이 반주를 위해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 앞으로 가 착석을 하자, 70여 명 모임 참석자들은 숨을 낮추어 그 맹인의 노래 시작을 기다렸다. 노래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곡, , 목동아! 이었다. “ , 목동들의 피리 소리들은.. 산골짝마다 흘러나오고.. ”

 

   나는 그 맹인분을 통해 피리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산 푸른 잔디 졸졸졸 골짜기를 따라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소리를 들었다. 그 물에 손을 담갔다가 젖은 손으로 이마에 물도 찍어 발랐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 분의 노래, 어쩌면 앞을 보지 못하기에 그녀는 더 더욱 아름다운 상상 속 천상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노래를 부르며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신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계에서 이 노래를 하며 무얼 보고 계시는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내 가슴이 미어졌다. 그 분은 아마도 악보를 볼 수 없어 수도 없이 이 노래를 불러 익혔을 것 같았다. 혹은 점자책 볼록 부위가 문드러지도록 손가락으로 그 부위를 더듬었을 것이다. 그 분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러나 너무나도 정확히 피아노 반주를 따라가며 노래를 불렀다. 잡고 있는 마이크가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온 공을 다 들여 두 손으로 꼬옥 잡고 노래를 불렀다. 마치 그 마이크에서 가느다란 전류를 수혈 받아야만 목숨이 부지되듯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노래하며 움직이는 입술 빼고는 그녀의 신체 그 어느 곳에서도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목각인형의 일자모양 두 다리는 너무 심하게 가지런하여 오히려 어색하고, 앙증맞게도 까맣고 작은 구두코는 고급 한정식 젓가락처럼 나란히 나무 발판 위에서 앞을 향하고 있었다. 짙은 검정색 벨로아 투피스에 붙은 반짝 장식 몇 개가 천장의 불빛을 받아 21세기 폭스 영화사의 조명처럼 짧은 순간 강당의 뒤를 향해 길게 뻗쳤다. 그러자 이 분의 노래에 신비감이 더해졌다. 내가 살면서 지금껏 들어본 이 노래의 횟수가 백번도 더 되었을 터이지만 나는 이 노래를 이토록 감동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강당의 모든 참석자들도 나처럼 이 분의 노래에 다 빨려 들어갔다. 고급 호텔의 변기 속 젯트 수류처럼 한 곳을 향해 홱! 하고 빨려 들어갔다. 그 분은 아마도 정식으로 개인지도를 받은 듯, 발성의 기본을 익힌 듯, 몸은 그대로였지만 입 모양은 소프라노 조수미처럼 자음과 모음을 하나, 하나 엮어가며 정확한 발음을 구사했다. 때로는 동그랗게, 때로는 네모지게, 또 때로는 네모졌다가 세모지게, 마치 인간문화재 채상소고 고수의 상모 끝에서 돌아가는 느린 화면의 지끈처럼 부드럽게, 부드럽게 입 모양을 변형해가며 정확한 발음으로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지독히도 아름다운 이 순간. 우리가 눈이 있어 볼 수 있다는 게 특권일까? 눈이 없어 더 더욱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는 저기 저 눈 먼 숙녀분의 위치가 더 특권일까? 우리가 육신이 멀쩡해서 뜀박질을 자유자재로 하는 게 특권일까? 그렇지 못해 그 특권을 갈구하며 마음속으로, 혹은 꿈속에서나마 가상으로 맛보는 그 처절함의 소유가 특권일까?

 

, 목동아! , 아 내 사랑아! 의 마지막 구절이 길게 여운을 남기며 끝나기가 무섭게 모든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나는 스프링 의자에서 탈출 훈련하는 전투기 견습 조종사처럼 의자에서 저절로 튕겨 올라서서 그 분에게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짙은 검은색, 그러기에 더 더욱 애잔함이 더하는 그 눈먼 숙녀 분께 감사와 감동이 섞인 내 마음을 보냈다. 단언컨대 나는 내가 지금껏 들었던 아, 목동아! 이 노래를 오늘처럼 감동 깊게 들어본 적이 없다. 노래가 다 끝나 자기 자리로 가기 위해 도우미를 기다리고 서 있는 저기 저 단상의 눈 먼 여인처럼 이 노래를 애절하게 잘 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늘 아침, 차 한 잔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려는 내 귀에 들려오는 거실의 라디오 노래, 아 목동아! 나는 지금, 그 때 그 맹인분의 노래하던 모습을 생각하며, 노래 끝난 지가 언제인데 감아쥔 찻잔 손고리 속 내 손가락을 펴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흘러나온 이 노래가 가져다줬던 그 때의 그 감흥을 다시 맛보려고 다 마신 빈 커피 잔을 기울이며 목을 뒤로 젖히고 있다. 열어젖힌 커튼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거실의 햇살 그 한가운데에서.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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