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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아내의 눈물 등록일 2016.09.30 04:47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90



아내의 눈물

 

  아내에게 말했다. 여기 잠깐 앉아있어. 내가 가서 입장권 사가지고 올게. 그리고 나는 매표소 입구 쪽으로 갔다. 아내는 스타벅스 입구 바깥에 마련된 대기 손님 의자에 잘 앉아있었다. 얼굴은 쉴 사이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에 가려 보였다 안 보였다 하였다. 스타벅스 안에 자리잡아주고 왔어야했나? 라는 생각도 일었지만 비싼 커피 값 때문에 생각뿐이었다. 오늘 관광하며 다니다가 마실 한국에서 가져온 커피믹스용 온수가 담긴 보온병의 감각이 둥글게 내 등 뒤의 간이배낭 속에서 느껴졌다. 이곳은 세계에서 제일 화려한 두바이 쇼핑 몰이다. 카타르에서 울트라 마라톤 공식 일정을 다 끝내고 아내랑 잠깐의 두바이 관광을 위해 어젯밤 늦게 도착, 그 첫 번째 일정으로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148층 버즈 칼리파 빌딩 전망대를 찾아 아침에 전철로 이곳까지 왔다. 이제 꼭대기를 올라가 볼 계획이다.

  매표소로 다가가서 검은 차드르를 쓴 두바이 여성 안내원에게 여기가 148층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타는 곳이냐고 묻고 거기 그냥 올라가는 데 돈은 얼마냐고 물었다. 그 여성 안내인은 웃으면서 한 사람당 500 아랍 에미레이트 달라 라고 하였다. 얼른 속셈을 해보니 우리나라 돈 18만원. 나는 이 사람 말이 맞는지 그곳 안내 전광판에 입력된 움직이는 글자들을 다시 보았다. 나의 발걸음은 더 이상 나가지 않았고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고 정주영 회장 부친이 서울로 도망간 아들을 붙잡아 인심 한 번 크게 쓰고 창경원 구경시켜주려고 데려갔다가 입장료가 비싸서 뒷걸음질 쳤다던 일화가 생각났다. 한 사람 당 18만원이면 두 명이면 36만원. 이것은 이 거금을 지불하고 즐기느냐, 안 즐기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이 지불을 하고나서 그 충격으로 내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었다. 그 몇 초 동안 올라가서 한 번 보는데 둘이서 36만원? 뒷걸음질을 치는 나는 몇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며 아내가 있는 스타벅스 입구 쪽으로 왔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냥 나가자! 나가서 바깥에서 그냥 올려다만 보자! 라고 하면서 커피믹스 보온병이든 간이 배낭을 한 번 풀썩거려 어깨로 다시 올렸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아니, 왜? 나는 출구 쪽을 보면서 휘익! 한 번 올라가서 보는데 36만원. 도적놈들! 그냥 가자! 그러자 아내가 금방 되받아 말했다. 아,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 저 사람들 다 올라가는데 우리만 왔다가 그냥 가? 일생에 한 번 올라가는데 그냥 가? 아내의 반응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나도 잽싸게 다시 받았다. 그렇다고 그 몇 초 동안 올려준다고 36만원을 줘? 차라리 계단으로 올라가고 그 돈으로 오 년 치 쌀을 사놓겠다! 그러자 아내의 얼굴색이 확 달라졌다. 내가 이런 사람하고 35년을 살았나? 하는듯한 후회가 얼굴에 확 피어올랐다. 나는 다시 말했다. 이건 말이 안 돼, 우리 둘에 3만6천이 아니고 36만원이야.. 그러자 아내는 나의 시선을 피하고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인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 시각, 이 세상 최고의 멋있는 명품가게들이 모인 이곳 두바이 몰, 아는 이들은 죄다들 돈 써가며 가보고 싶어 안달하는 곳, 이 세상에서 최고로 높은 빌딩의 입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우리만 빼고는 다 행복해보였다. 그들은 모두가 두 당 18만원을 지불하는 데 있어 아무런 망설임이 없을 정도의 잘 사는 사람들이거나, 없지만 지불하는 돈의 액수에 대해서 인지 능력이 없는 사람들같이 보였다.

  우리 둘은 거기서 그렇게 한참동안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나는 아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것을 맞추어주기로 맘을 바꿨다. 나는 천천히 다시 그 차드르 여인에게 다가가 국민은행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두 명이요.. 11시 40분 꺼 두 명이요.. 내가 지금껏 내 두 눈을 위해 지불해온 금액 중 최고의 액수였다. 내 손이 달달달 떨리어 다시 건네받은 신용카드를 내 지갑에 쉽게 넣지 못하고 그 동작은 아내에게 다시 다가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내는 나를 보자 다시 말했다. 물려. 물려요! 나 안 봐! 거기 한 번 올라갔다가 당신 잡겠어. 아니 올라가는 도중에 초상 치루겠어.. 그렇게 보는 게 기분도 안 나. 앞으로 살면서 두고두고 이야기 할텐데. 나 그 꼴 못 봐.. 그러자 나는 상황이 더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을 깨닫고 즉시 고쳐 말했다. 아니, 왜 또오? 샀으면 봐야지. 보자고..그냥 보자고... 내가 왜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 당신이 보고 싶은 것이니 보자고. 저기 봐, 다른 사람들도 다 올라가잖아. 굉장 할거야. 일생에 한 번인데..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두 가지 고민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거금 36만원을 초고속 엘리베이터 붕! 한 번으로 날린다는 것과 애초에 아내의 마음을 못 알아주고 상처를 주어 귀국 후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가 동시에 고민이 되었다. 내가 이 표를 안 사려고 보낸 만큼의 시간과 거의 같은 시간을 나는 이미 사버린 표를 물리지 않고 그냥 사용하는 쪽으로 아내 마음을 돌리는 데 썼다.

  한참 후 아내는 등 떠밀리는 자세로 버즈 칼리파 BURJ KHALIFA 148층 초고속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붕! 하자마자 우리는 금방 해발고도 555m, 148층, 현존하는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 꼭대기에 올라와 있었다. 시중을 드는 꼭대기 층 안내 직원들로부터 음료수와 건과를 건네받으며 우리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전망대 주위 360도를 돌았다. 상상 그 이상이었다. 모래위의 신기루들.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감탄의 연속이었다. 그러자 아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안 났지만 자꾸 안경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눈물을 닦고 있었다. 얼른 다가간 나는 그 눈물이 아내의 눈앞에 펼쳐진 기적에 대한 눈물이 아니라 생각했다. 우리 둘은 벌써 35년을 같이 살아왔잖은가? 내 어찌 아내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하지 않았어도 내심으로 다 들은 아내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속으로 혼자서 나의 말을 하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다. 이 세상 최고의 인류 건축물, 이 세상 최고의 꼭대기, 이 세상 최고의 붕!에서 나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영희야, 미안해. 안 그러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 지독한 가난으로 없이 보낸 내 젊은 시절이 날 그렇게 만들었어. 그건 소비의 문제가 아니고 내 철학의 문제였어. 내 삶에 낭비는 없고 사치는 존재하지 않아. 그러나 믿어주어. 당신은 내 삶의 전부야. 나 혼자 왔으면 이틀이고 삼일이고 돈 안드는 계단으로 올라가던지 그냥가던지 했겠지만, 당신이랑 왔으니 이렇게 호사를 누리고 한 번에 붕! 올라올 수 있었잖아. 나는 당신 복으로 이렇게 사는 걸. 영희야, 울지 마, 우리 이렇게 세계 최고의 꼭대기에 세계 최고의 호사를 누리고 있잖아. 여기 이 황량한 사막에 이렇게 건설된 신기루처럼 나도 바닥에서부터 올라와 이렇게 이런 자리까지 왔잖아. 울지 마, 영희야. 우리 앞으로도 가볼 데가 많아.. ”.

  그렇게 보낸 148층 전망대의 시간을 뒤로하고 호텔로 오면서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아까 왜 울었느냐고. 그러자 내 잘못된 지레 짐작에 대한 실소가 터졌다. 아내는 그깟 돈 몇 푼으로 속앓이 하는 속물 나와는 완전 다른 부류였다. “ 인간이 갖고 있는 상상의 현실화와 그 치밀한 과학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경외감이 일었어요. 꼭대기에 오르자 실내에서 들리던 그 마법과도 같은 배경음악이 순간 날 울게 만들었어요. 그 분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감사의 눈물뿐이었어요”.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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