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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구름은 빨래처럼 동쪽하늘에 걸리고 등록일 2016.09.30 04:38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43



구름은 빨래처럼 동쪽하늘에 걸리고

 

   어제 밤 내린 비로 땅은 젖었으나 발자국이 남겨질 정도는 아닙니다마른 풀숲을 지날 때는 운동화가 젖을 것 같아 오늘은 이 길로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대로 왔는데 간밤의 세찬 바람이 풀잎의 물기를 몽땅 핥아간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작은 용담천을 지나 본격적으로 남한강변에 이르니 나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옵니다. 지금은 한 여름의 강렬한 태양도 아닙니다. 동짓달, 섣달의 북풍 한파에 옴짝 쪼그라든 시든 태양도 아닙니다. 적당한 잿빛으로 어설프게 채색된 동쪽 하늘에 철사 없는 젖 가리개 속의 젖가슴처럼 뽕긋 해가 올라오고 있습니다앞뒤로 내둘리는 팔에 아직은 한기가 느껴지지 않는 적당한 서늘함이 있습니다.  나는 신이 나서 해를 향해 달리며 아침 해를 마중합니다. 열리는 새 아침의 하늘을 경배합니다어제 무슨 쪼간으로 바쁜 일이 있어 다 못 내려온 비구름 덩어리가, 긴긴 밤 뒤척이며 서성이던 그 구름들이 보기에도 안쓰럽게 눈치 보며 구석으로 몰려갑니다. 구름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여덟 가닥 고압선 전깃줄이 그 구름을 부여잡고 가지마라 늘어집니다. 구름에게 말을 합니다. " 여보세요, 구름님, 뭐가 그리 바빠 도망치듯 서쪽하늘로 가는가요? 세월은 당신 마음처럼 그렇게 빠르질 않답니다“.

 

   눈을 돌려 강변을 바라봅니다. 수 천, 수 만의 사관생도 모자에 꽂힌 깃털처럼, 정복에 정모에 말을 타고 광야를 내달려오는 천군천마의 위용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들의 깃털을 봅니다. 덮어 짓누를 것만 같이 위세 당당하던 초록은 다 갔습니다.  추수 끝난 들판에 몸져누운 벼이삭 쭉정이 색처럼 측은한 연갈색들뿐입니다가녀린 풀숲의 갈대군무를 바라봅니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부드러운 정육면체의 오른 쪽 모서리 선처럼 하느작, 하느작 나부끼는 황홀한 깃털의 군무를 봅니다. 더 눈을 내려 바람을 맞는 새벽의 남한강 강물을 바라봅니다강물은 주물공장 놋쇠 사발의 겉 두드러기처럼 팔랑팔랑 수면 위에 오목 홈을 만들고 있습니다청동 오리 너 댓 마리 그 위에서 바람그네를 타고 있습니다. 간밤에 흩뿌린 비가 있어 나의 남한강 뜀길은 더 더욱 상쾌합니다바람이 있어 갈대의 군무가 더 더욱 자극적입니다.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참말로 좋은 아침입니다. 구름이 빨래처럼 동쪽하늘에 걸린 새 아침입니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