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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신발 세일즈맨 등록일 2016.09.30 05:29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25




신발 세일즈맨

 

    캐나다의 서쪽 대서양에 면해 있는 도시 밴쿠버  후진 골목에서 조상 대대로 신발을 만들어 파는 소위 맞춤 신발 장수 맥킬리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가 만든 신발을 들고 매일 근처 사무실마다 들려서 새로 만든 신발을 설명하고 팔아서 먹고살았지요. 그 분의 지하실 공장 근처 고층 건물에는 한 으리으리한 사무실이 있었는데, 멕킬리씨는 매일 아침 이 사무실에 들려 그 회사 회장님에게 새로 개발한 신발을 설명하고 한 족을 사실건지 묻곤 했습니다.


   자동으로 스르르 열리는 두꺼운 유리문을 통과하면 반원형으로 된 짙은 밤색 마호가니 나무로 만든 접수대 앞에 아슬아슬하게 젖가슴이 드러난 야한 의상의 금발 비서가 앉아있어, 찾아온 용건을 말하면 그 비서는 회장님께 내방객의 방문 사실을 알리고 면담 여부를 여쭈어보곤 했지요. 회사 업무가 무척이나 바빴지만 그 회장님은 가끔씩은 이 신발장수에게 면담을 허락해 주어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멕킬리씨는 자기의 새 신발에 대해 침을 튀기며 열심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자기 손톱 밑에 새까맣게 끼인 기름때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정말 열심히 자기 신발을 설명하며 팔려고 했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대기업의 회장님이 자기와의 면담을 허락해 준 것만도 고마워서 그 회장님의 발모양, 걸음걸이 모양도 세심하게 눈여겨보았다가 자기가 개발하는 신발에 적용시키어, 그야말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그 회장님만의 신발을 만들어서 팔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회장님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 분은 이 보잘것없는 거리의 맞춤신발 장수가 자기를 찾아와 열심히 신발 판매를 하는 걸 보고서는 자기와는 다른 하층계급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기회로 밖에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또 자기의 복잡한 서류에서 잠시 떠나 자기와는 전혀 다른 용어를 쓰는 이 신발장수에게 조그만 호기심을 가짐으로써 잠깐의 여유를 만들어 보자는 뭐 그런 차원의 아량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찾아오는 멕킬리씨가 매번 면담을 허락 받은 것도 아니었지요. 열에 아홉 번은 비서만 보고 뒤돌아서야 했고요, 그 한 번의 허락된 면담도 멕킬리 씨의 입장에서 신발을 충분히 설명해 드릴 시간을 허락 받는 게 아니라, 면담 허락이 떨어져 회장실 안으로 들어 갈 때 비서가 통보해 주는 면담 가능시간을 철저히 맞춰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제와 같은 경우, 비서실 마호가니 접수대 앞쪽 의자에서 40여 분을 기다렸다가 그 예쁜 블론드 머리의 여비서로부터 듣게 된 말, " 멕킬리씨! 오늘은 회장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지금 들어가셔서 면담을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회장님은 2분 후에 동부지역 총괄담당 중역 톰 쿠퍼씨와 면담이 예정돼 있습니다. 그 분은 지금 아래 현관에 도착하셔서 전용 승강기 쪽으로 오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쿠퍼씨가 이곳에 도착해서 제가 외투를 받아드리고, 저의 오늘 아침 눈 화장이나 스커트 의상에 대해 한 마디 칭찬을 해 주시며 문으로 들어가실 때까지의 시간, 140여 초 밖에는 드릴 수 없습니다. 시간이 다 되면 쓸데없이 머뭇거리어 회장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 그럼 들어가세요! ". 뭐 이런 식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슬아슬 젖가슴 블론드 여비서 앞에 신발가방을 들고 다가간 멕킬리씨에게 그 비서는 말했습니다. " 멕킬리씨! 오늘 아침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어제 밤 갑자기 뇌졸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멕킬리씨는 더 이상 여기에 오실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신발 한 족만이라도 팔아보겠다고 평생을 출입하셨는데 참 안 되었습니다. 저는 멕킬리씨의 슬픔을 이해하고도 남습니다만 지금은 갑자기 돌아가신 저희 회장님으로 인한 슬픔 때문에 다른 경황이 없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러자 멕킬리씨는 자기 평생의 목표가 없어졌음을 알고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다가, " ? 그래요? ", 하고는 들고 있던 가방을 어깨에 메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멕킬리씨는 그 회장실 앞 접수대 비서 앞에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전과 다름없이 신발가방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비서는 다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 멕킬리씨! 제가 어제 그랬잖아요. 회장님이 돌아가셨다고.. 이제 안 오셔도 된다고". 그러면 멕킬리씨는 마치 그 소식을 처음들은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허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돌아서곤 하였습니다. 이런 식이 거의 일주일 계속되자 급기야 그 비서는 이제 인내심을 잃고 화를 내며 다시 한 번 더 회장님의 서거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러고서는 도대체 회장님이 돌아가셨다고 매번 이야기 해 주어도 자꾸 찾아오는 이유가 무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멕킬리씨는 고개를 삐딱하니 옆으로 돌리다가 허공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 들고 있던 신발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며 아슬아슬 젖가슴 블론드 비서에게

말했습니다.

 

" , 저는 내 일생일대의 목표가 회장님께 신발 한 족 파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섭섭하게도 시리 회장님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저의 신발을 단 한 족도 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 가셨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이곳에 와서 당신으로부터 회장님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 이곳에 들리지요 "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