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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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보스톤 마라톤 완주기 등록일 2016.09.30 05:19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87




보스톤 마라톤 완주기


   보스톤 대학 중앙역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전동차에서 내렸다. 다리 근육이 뭉쳐 그 통증으로 걷기가 많이 힘들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아내는 서둘러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채워주고 어깨에서 벗겨 내린 가방 속에서 보스톤 완주 메달을 꺼내어 보물인 양 따로 잘 챙겨 놓고, 노란 바탕에 검정 글씨가 선명한 땀에 절은 나의 배번 7869를 정성스럽게 손 다림질로 펴서 창가 쪽에 얹혀 놓는다. 나는 땀과 물에 젖어 빨간색과 파란색이 더더욱 선명한 태극기가 수놓아진 소매 없는 하얀색 달리기 윗도리와 감색 아랫도리 빨랫감을 챙기는 아내의 조그맣고 바쁜 두 손놀림을 바라본다. 내 몸 구석구석이 지독한 피로감에 점령당했으나 나는 끝닿은 듯한 성취감과 만족감에 젖어 미동조차 할 마음이 없다. 방금 끝낸 나의 성스러운 의식, 영원히 잊지 못할 전설적 보스톤 마라톤을 달린 내 몸뚱이를 욕조에 담그고 가만히 오늘을 되감아 본다.

 

   내가 가진 에너지는 20Km 도 못가서 다 소진된 듯 힘이 들었다. 숨이 턱까지 넘쳐 올라 얼른 속도를 늦추고 내 육신의 반응을 기다리며 육체에 대한 무리한 혹사에 잘못을 빌었다. 마라톤을 시작해서 이렇듯 숨이 턱까지 차올라 속도를 늦춰가며 육체의 다음 반응에 귀 기울이기는 오래 전의 첫 도전이후 처음인 듯하다. 그토록 겁을 먹고 경건하게 맞이하려던 상심의 언덕 통과 시 나는 이 세상 모든 좌절을 한꺼번에 맛보아야 했다. 나아가지 않는 속도에 속수무책이었다. 가슴에 달고 나간 자수된 태극기와 코리아 글씨를 보고 목이 터져라 나를 응원해준 우리 동포에게 진지한 보답이 있어야만 했으나 마음뿐, 내 육신으로부터의 반응은 없었다. 내 몸에 저장된 마지막 밥알 하나까지도 에너지로 바꿔서 달려야만 했으나 힘은 점점 더 딸려갔다. 여기가 분명코 한계인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거부하고 또 달렸다

 

   열광하는 주로변의 보스톤 시민들. 느려져 가는 나의 속도 때문에 역으로 그들과의 눈 마주침, 뜨거운 감정교환의 시간은 더 길어졌다. 그들은 지쳐서 고갈돼 가는 내 육신의 에너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뽑아주는 펌프질의 명수였다. 그 즐거운 환희, 광란의 응원 속에서 만났던 자랑스런 태극기, 눈과 귀에 익어 나의 영혼에 불을 댕기는 우리말 응원은 또 얼마나 날 울먹이게 만들었든가 " 힘내라! 힘내라! ". , 예쁜 우리말! 소름 돋도록 뜨겁게, 부드럽게, 배고픈 아가의 입으로 담박에 빨려 들어오는 엄마의 첫 젖물처럼 가슴 깊숙이 들어와 박히는 내 모국어의 위대함이여!

 

   머리에 뒤집어 쓴 냉수가 태극기 머리띠에 차고 넘친다. 다시 쏟아 부은 냉수가 안경알을 덮쳐 물줄기가 내 시야에서 주르르 시야를 2, 4분 나눠버린다. 나는 최면을 걸었다. " , 신이시여, 나는 오늘 이 순간 달려야만 합니다. 내 자신의 모든 걸 화덕 안에 내던져 추동의 힘을 빼야만 합니다. 아내, 영희야! 나를 당겨라! 아들 종화야! 나를 밀어라! 나약의 잡신들에게 장대를 휘둘러 근접을 막아 주거라! " 나는 육신의 고통 그 끝자락에서 나 자신 허우적거림을 느끼며 남은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3-4Km를 앞둔 주로인 본격적인 시내 고층 건물군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눈을 들어 열광하는 군중들 속에 시선을 묻어 본다. 그리고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주로 옆 한 할머니의 작고 얇은 입술로 밥 한 숟갈을 건네받는다. " Keep it up! Keep it up! You can make it! " 그러면 나는 울먹이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보스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나 같은 이름 없는 보통 풀뿌리 달림이를 영웅으로 만드는 신비한 기술을 가지셨군요. 여러분은 마라톤의 정신, 모두가 각자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단순하며, 가장 근원적인, 그러면서도 가장 심오한 철학이 내재된 마라톤의 그 근본을 알고 계시는군요.

 

   크랭크 같은, 이어 붙인 니은자 모양의 길에서 꺾어진 곳을 돌아서니, 저 멀리 결승선 Boston Marathon 완주 아치 탑이 나를 손짓하고 있다. 그 탑을 바라보며 두 다리 뜀질에 마지막 불을 당겼다. 그리고 길 양옆에 운집한 인파가 쏟아붓는 함성 속을 헤쳐 나가며 군중 속 어딘가에 묻혀 아침부터 장장 8시간 여 나를 애타게 기다린 아내, 영희의 얼굴을 더듬고 지나갔다. 그 때 그 자리 군중의 함성 소리는 너무 커서 내 귀는 이미 청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나는 극적인, 너무도 극적인 장면의 영화 라스트 씬처럼, 달리는 내 모습이 화면에 딱 정지돼 버린 것 같았다. 나의 팔다리 내둘림은 이미 끝이 난 듯 반응을 상실하고 좌우 4차로의 보스톤 시민들 함성만이 내 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 육신은 핀에 꽂힌 얼룩무늬 호랑나비가 되어 박제되어 버렸다. 그 박제사진 화면위로 나온 사람들 이라는 타이틀이 마련되고, 그 아래 열광하는 보스톤 마라톤 응원, 보스톤 시민들의 이름들이 계속해서 위로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보스톤 마라톤. 오늘까지의 106년 그 장구한 역사에 또 한 획을 그은 또 다른 14,572명 완주자의 영웅을 탄생시킨 시민 모두의 이름들이 그들의 역할 경중에 관계없이 스크린에 자막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박제된 얼룩무늬 호랑나비의 마지막 파닥거림인 양, 정지됐던 나의 육신이 느린 화면으로 42.195Km, 26.2마일의 완주선, 그 끝을 향해 마지막 팔. 다리 내디딤을 토해낸다. 함성의 볼륨은 점점 가늘어지며 그 끝을 향해 늘어지고 임시 육교위의 수십 카메라맨의 셔터 터지는 소리로 된 축포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3시간 2710, 14,572명 중 4,998등이라는 숫자를 내 이름 석자 밑에 쪼어 넣었다. 그리고 나는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후속 완주자들의 물결에 내 몸을 맡기어 흘러가며 고개를 들어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 보일스톤 캎플리 광장 하늘에는 가만히 미소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온 구름 몇 조각이 있었다. 나의 아내 영희의 환한 미소로 얼굴 형상된 예쁜 구름 한 조각도 그 옆에 있었다. 오늘을 위해 지난 일 년 장장 5,565Km 의 뜀질로 내달려온 나의 집념에 조용한 미소로 화답하는 구름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조금 후,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목록, 보스톤 마라톤 참가 항목을 지우는 비행운의 긴 직선이 그 구름들 뒤로 지나가고 있었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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