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마루채 공연 관람 등록일 2016.09.30 05:17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33




마루채 공연 관람    

 

   수용 가능 총 객석 수 45. 그 조그만 소극장이 앉은뱅이 의자로 된 객석과 바닥에 방석 깔아 좌정토록 한 임시 객석 그리고 출입문 입구에 서서 관람한 입석 관람객 숫자로 꽉 채워져 1시간 30여 분의 공연이 다 끝났다. 공연을 위해 무대 뒤 벽에 설치되었던 송령학수, 소나무처럼 푸르게, 학처럼 오래 살라 수놓아진 팔각병풍이 치워지고 공연장 바닥에 간이 식탁이 정렬되었다. 그 식탁은 조금 전 관람객이 앉았던 접이식 앉은뱅이 의자들의 변신이다. 좁은 살림에 공간의 극대화를 위해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펴고 접고의 지혜가 여기에서 빛을 발했다. 큰 방 하나에 이불을 펴서 자고 접어 넣고 그 다음 그곳에 다시 밥상을 펴 식당을 만들고 그걸 다시 접어 넣고, 다음에 윷판을 펼쳐 놀이 장소로 공간을 극대화한 조상들의 영리함을 이곳 마루채 소극장에서 다시 보았다. 그렇게 쉽게 공연 마당은 이제 뒤풀이 공간으로 변신을 했다. 출연자, 공연 보조자, 관객 할 것 없이 누구나 손이 닿는 데로 자리를 펴고 음식 보따리를 펼치며 관람객 서로가 서로의 좌정을 권유하고 또 권유 받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여기 이곳에 이방인은 없다. 누구나가 공연자가 베푼 후한 덕담의 수혜자였으며, 악기를 통한 연주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부터의 기복을 축원 받은 복 받은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진정 풍물이 지향하는, 연주자간 호흡을 맞추고, 연주자와 관객간 호흡을 맞추는 것 아니던가? 그리고 그 훈훈함이 넘쳐 생면부지 객석 관객들 간 같은 호흡으로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던가? 누구라서 이 순간 여기 있는 모든 분들로부터의 가족 유대감을 이렇듯 담박에 이뤄낼 수 있으며, 그 무엇이라서 예외 없이 우리 모두를 그 환희의 정점에 이렇듯 쉽게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꽹가리, 장구, , .. 셋도 아니고 다섯도 아닌 이 네 악기가 품어내는 고저장단, 느리고 빠르고의 위력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어휴! 정말 몇 놈 죽어 나자빠지게 좋은 우리 것의 진수였다. 뒤풀이 간이식탁 위 팥떡, 콩떡을 집으며 말한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진 막걸리 병뚜껑을 돌려 빼고 거품이 이는 것을 막으려 꼭지를 잡고 병 몸체를 휘휘 돌리며 말한다. 미처 나누지 못한 옆 자리 사람과 늦은 인사를 나누며 말한다. 오늘 공연 정말로 멋있었지요? 네 정말로 죽였지요! 한 잔 합시다. 여기 이것 드세요.

 

    불과 이 주일 전, 나는 아내랑 이태리의 로마에 있었다. 새로운 것, 그리고 예쁘고 더 예쁜 것들을 보려고 무리를 해서 거리를 쏘다녔다. 힘이 소진된 아내를 달래어 호텔에서 쉬는 것 보다는 저녁에 공연관람을 하기로 했다. 호텔 접수대의 공연안내 소책자를 뒤적였다. 그리고 물어물어 찾아간 공연장 조그만 교회. 소프라노와 테너와 바리톤 이 세 명이서 번갈아가며 이태리 가곡을 부르는 자리였다. 보수적인 예배당이 이렇게 변신되는 게 신기했다. 노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페라들 중에서 선곡된 곡들이어서 듣는 내내 즐거웠다. 50명이 조금 안 되는 것 같은 청중들로부터의 호응도 대단했다. 그러나 그 공연은 거기가 끝이었다. 멋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냥 헤어지는 관객들의 늦은 밤 발걸음만 출구를 향해 느리게 이어졌다. 공연 출연자는 끝나기가 무섭게 목사 집무실 쪽으로 들어가고, 흥이 어느 정도 올랐을 법한 청중들은 그 쪽을 몇 번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그 흥을 이해하고 돋아주며 새김질해 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온갖 감언이설로 끄드겨 과부의 치마끈을 풀게 하곤 그냥 코골고 자는 선머슴 같은 형국이었다. 그런 것이었다. 서양의 음악은 철저하게 오선지에 기록된 음표를 따라 작곡자의 의도대로 연주만 하면 그 뿐이었다. 몇 시까지 공연, 그러면 몇 시까지였다.

 

   그러나 우리 음악은 청중의 호응을 돋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흥의 발산 그리고 그 흥의 차분한 내림까지도 맡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마루채 공연은 그 역할을 충분히 잘 해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같이 갔던 친구도 전혀 예기치 못한 흥에 도취되어 처음으로 찾은 마루채 이 공간이지만 아무나하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즐기고 탁주잔을 돌렸다. 그 자리를 파하고 나서 바로 집으로 귀가하기에는 그 흥이 너무 달아있었다. 전철역으로 가는 길 내내 우리는 서로가 이런 말을 건넬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어디 가서 한 잔 더하자. 오늘 정말 기분 좋네. 그 친구는 383개월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퇴임해서 맞는 첫 휴일을 내 안내로 이곳 마루채에서 보낸 것이다.

 

    2차로 찾아간 근처의 술집, 빈대떡 신사에 좌정하자마자 친구가 말했다. 오늘 특별 순서로

가족 네 분이 나와서 했던 그 순서, 정말 멋있었지? 그 공연 정말로 죽였어. 그게 무어라하는가? 그 뭐야, 삼겹살 굽는 솥단지 같은 것을 무릎 위에 엎어놓고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것. 그 투박한 가마솥 같은 것에서 그렇게 투명한 소리가 나네, . 그러게, . 자세히 보니 솥단지 뚜껑이 그냥 뚜껑이 아니고 그 위 표면이 볼록볼록 애들 만화의 혹부리 영감 혹같이 나왔어. 그게 공명을 일으키며 소리를 맑게 하는가? 어디서, 왜 그렇게 맑은 소리가 나오지? 내가 보기에는 손바닥으로 손가락으로 그리고 솥뚜껑의 윗부분, 아랫부분 돌아가며 골라가며 세게 약하게 두드리는 게 기교인 것 같아. , 그렇다고 해도 기타처럼 지판이 분류된 것도 아니고 어디를 얼마큼 어떻게 때리고 튀기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질 건데, 참 대단해, . 그러고 그 솥단지 뚜껑 하나만으로도 소리가 엄청 좋지만 그것이 장구가락과 북으로 어우러지니까 그것 참, 정말로 좋데. 사과 궤짝 같은 것 깔고 앉아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것은 또 어쩌고? 나무 같은데 북소리 같은 게 나오데. 그러게, . 남미 앤디스 음악에서 보는 봄보 같은 북소리가 나오데. 일정하게 장단만 맞추는 목적은 아닌가 봐, 가락도 엄청 빨랐어. 장구 가락과 같은 속도로 나갔으니 사물의 징처럼 기본 장단용은 아닌 것 같았어. 그래, . 고것들이 엄청 빠른 장구 가락과 똑같이 갔어. 대단혀...

 

   아주 유쾌한 기분으로 이렇듯 연주 곡목과 연주 악기 그리고 그것들의 소리는 물론 각자의 음가에 이르기까지를 두루두루 안주로 삼으며 마신 막걸리가 제법 몇 순배되어 얼굴이 불콰해지고 마루채에서의 팥떡, 콩떡에 포항산 과메기 안주로 우리들 배는 이미 장구 울림통처럼 포만감으로 뽈록 부풀었지만, 한 번 도도해진 흥은 쉽게 가라앉질 않아 2차로 간 빈대떡 신사에서의 대화는 끝을 모르고 길게 이어졌다. 마루채 풍물공연 이야기, 아직 남아있는 막대사탕의 단물을 요리조리 빨아대는 어린아이들처럼 우리는 깊은 밤 심지를 돋우며 술잔을 돌리고 또 돌렸다. 그리고 주모가 가져온 술값 청구서 용지를 집는 손이 동시에 두 사람에게서 뻗어 나왔다. 내가 낼게!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이전글 |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