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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아들의 첫 편지 등록일 2016.09.30 05:11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06



아들의 첫 편지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나, 이렇게 달랑 세 식구 사는데 아들이 군에 갔습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여린 아내는 입대하는 아들을 따라 보충대까지 가서 펑펑 눈물을 쏟아내어 곁에 서 있던 저도 덩달아 눈물이 나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툭하면 감동해서 양 눈가에 진한 눈물 주르르 흘리는 날 보고 염색체 하나가 없다느니 빠졌다느니 놀려대던 아내는 눈물샘의 염색체가 통째로 다 빠져버린 듯했습니다. 그렇게도 이겨내기 힘들 것 같던 입대 후 열흘 여가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니 아내는 조금은 안정을 찾아가는 듯 집안에 조금씩 대화가 되살아났습니다. 아들이 잘 먹는 나물만 보아도 훌쩍, 신발장의 아들 신발만 보아도 훌쩍, 아들이 잘 입는 검정색 에어 워크 잠바만 보아도, 아들이 지독히도 좋아하던 스노보드가 TV 뉴스에 나오니 또 훌쩍, 오늘 오후에는 잘 개킨 아들 양말을 설합장에서 꺼내어 만지작거리며 텅 빈 아들 방에서 나올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양말 벗어 놓을 때 제발 좀 뒤집지 말고 내어놓으라고 해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매번 홀랑 뒤집어 벗어놓아 매번 속 상해하더니 이제는 신고 벗어 빨랫감을 내놓을 양말 주인은 그나마도 군에 가버리고, 그 양말은 빨아 개킨 그대로 설합장에서 이 년 여 동안 잠자고 있어야 한다며 또 훌쩍. 어떤 날은 키가 아들만한 어느 한 아이가 검정색 잠바를 입고 7단지 저쪽 끝으로 걸어가고 있어, 분명 우리 아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한참을 그 아이 뒤따라 걸어가다가 울음이 터져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문 닫고 또 한참을 울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던 아들에게서 첫 편지가 왔습니다. 아내는 그 편지를 받아들고 숨을 못 쉽니다. 너무 기뻐 두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물인지 콧물인지 뒤범벅되고 웃음과 울음이 뒤섞이어 몰아쉬는 숨소리는 옆에서 바라보는 저의 숨도 멈춰버리게 만들듯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 엄마, 아빠라고만 부르던 아이가 어느 감정을 가지고 갑자기 호칭을 변경했을까요? )

 

  어느덧 군에 온지 열흘이 넘어 갑니다.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정말 빡빡한 생활이 이어집니다. 좋은 친구도 많이 만나고 저는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아픈데 없고 남들보다도 더 잘해내고 앞으로도 더 잘해낼 테니 걱정 마시고 계세요.

( 그래, 그 편지 중대장이 검열해서 좋은 말만 쓰라고 한 것 잘 안다. 지금도 잘하고 미래도 잘할 것이라는 시제도 올바르게 골라 썼구나. )

 

  부모님께 편지를 쓴다는 게 이렇게 가슴 설레는 것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 그래, 애야! 너의 편지 한 장이 이렇게 엄마, 아빠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며 숨이 멎을 정도로 가슴 벅차게 하는 기쁨인 줄 우리도 몰랐다 )

 

  일요일에 초코파이 먹으려고 교회에 갔을 때, 찬송가중에 아버지라는 말, 사랑한다는 말, 이 두 마디 말을 듣고 저를 포함 훈련병들 전부가 흘렸던 찡한 눈물, 그 눈물의 의미를 모두 깨우쳐보고 돌아가겠습니다.

( 그래, 아들아! 사람은 그렇게, 그렇게 성숙하는 거란다! )

 

  저는 중대 선임병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어 훈련병 모두를 지휘하는데 목이 좀 망가진 것 외에는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그래, 아들아! 힘이 부치는 전우가 있으면 배낭도 들어주고, 총도 받아주고, 배가고파 힘든 전우에게는 밥도 나누어 주거라. 네 숟가락 위 네 몫 밥알이 전우의 밥 숟가락위로 나누어지면 너의 포만감은 두 배가 된단다. )

 

  이제는 보직이 바뀌어 제가 하는 일은 식당 관련일인데 퐁퐁 5-7방울 가지고 동기생 200명분의 식기 세척용 거품을 만드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요령이 생기어 칭찬 받으며 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하던지, 또 어떤 곳에 가던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많이 생깁니다. 항상 저 자신에게 이야기합니다. 절대 뒤쳐질 게 없다고 말입니다. 매사에 성실하게 행동하여 건강한 상태로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 그래, 아들아! 양말 벗어 홀랑 뒤집어 내어놓던 그것 하나만 고치고와도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단다. 부디 건강하게 매일 매일을 잘 보내거라.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우리 둘을 기쁘게 만드는 너의 다음 편지가 몹시도 기다려지는구나, 사랑하는 아들아! )

 

   편지를 다 읽은 아내는 고개를 돌리어 나를 향하더니 그냥 안기어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눈물을, 사탕 뺏긴 세 살 아이의 앙! ! 울음소리로 그냥 퍼지게 울었다. 아주 시원한 울음이었다. 부모 곁을 떠나서 혼자서도 잘 지낼 것 같은 자식에 대한 믿음이 확인되던, 우리 두 부부로서는 매우 감격적인 순간의 아들 편지였다. 대한민국 울트라 마라토너, 애비인 나를 닮은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의 입대 후 첫 편지였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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