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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제주도의 힘 (2) 등록일 2016.10.11 05:14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91




제주도의 힘 (2)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또박또박한 글씨로 적어나간 그 엽서를 다 읽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건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 정신이 돌자 나는 망설임 없이 회사 경리과로 가서 가불을 신청했다. 당시 내가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경리과에서의 가불뿐이었다. 집안의 큰 일 때문에 라는 말을 남기고 저고리 소매를 꿰며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무작정 김포공항으로 가서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가 처음임은 물론, 섬이라는 곳도 처음이었으니, 여행이라면 얼마나 재미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내 눈앞에서 생명 하나가 꺼져가는 상황이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발견된 친구의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내 모습만 연상되었다.

 

나는 제주도가 뭐 여의도나 동대문 운동장만한 줄 알았고, 얼른 얼른 걸어 돌아다니다 보면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죽음을 결행하지 않고 꺼져가는 촛불 앞에서 지나온 삶이 너무 아까워, 다가올 삶이 너무 아름다워 또 다른 촛불에 불을 댕기고 또 댕기며 아직은 친구 목숨이 붙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푸로펠라 비행기가 요란한 엔진소음을 내며 제주시 상공을 지나, 착륙 준비를 위해 하강을 시작하자 나는 놀랬다. 제주시가, 제주가 저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 공항을 빠져나와 죽어가는 친구를 찾으려고 두 눈을 부라리며 시내를 싸돌아다녔지만, 이내 벽을 만나고 말았다. 내 친구를 찾으러 발로 돌아다니기에는 제주도는 너무 넓고 너무 컸다.

 

이틀을 싸질러 돌아다녀 부르튼 발을 질질 끌며 제주 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친구의 엽서를 보여주며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람을 찾아서 한 젊은이가 죽기 전에 그 생명을 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그 경찰은 가출 신고서 용지를 꺼내 가출자의 이름, 성별, 주소 등을 적어 나가더니 가출동기를 물었다. 나는 사전 대책 없이 있는 그대로 말했다.

 

친척지간에 불장난 하다가 애를 배게 했는데요. 죽겠다고 서울에서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지금 어디에서 촛불이 다 꺼지면 죽는다고 엽서가 왔습니다. 좀 찾아서 살려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젊은 목숨 하나 지금 꺼져.. “

 

그러자 그 경찰은 적고 있던 종이를 부욱! 찢어서 쓰레기 통속으로 던져 넣으며 나보고 경찰서 민원실의 출구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두 손을 깍지 끼어 자기 뒷퉁수에 갖다 대더니,

 

이 친구가 장난 하나? 나이가 몇 살 처먹었는데, , 지가 지발로 집 나갔는데, 대한민국 경찰이 그렇게 할일이 없나? 애를 뱄건 애비를 뱄건 즈덜이 알아서 할 일이지... 장난하나, 지금? “

 

그렇게 경찰서에서 쫓겨나와 또 다시 꺼져가는 촛불의 소재지를 찾아 무작정 제주시 일대를 걸어 다녔다. 벌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죽어가는 친구를 찾아 무작정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아직 성한 발가락도 모두 부르트도록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시 걸어다녔다. 벌써 삼일 째 무단결근을 하게 된 회사에는 이미 심적으로 사직서가 제출되었다.

 

계속...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 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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