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힘 (2)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또박또박한 글씨로 적어나간 그 엽서를 다 읽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건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 정신이 돌자 나는 망설임 없이 회사 경리과로 가서 가불을 신청했다. 당시 내가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경리과에서의 가불뿐이었다. 집안의 큰 일 때문에 라는 말을 남기고 저고리 소매를 꿰며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무작정 김포공항으로 가서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가 처음임은 물론, 섬이라는 곳도 처음이었으니, 여행이라면 얼마나 재미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내 눈앞에서 생명 하나가 꺼져가는 상황이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발견된 친구의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내 모습만 연상되었다. 나는 제주도가 뭐 여의도나 동대문 운동장만한 줄 알았고, 얼른 얼른 걸어 돌아다니다 보면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죽음을 결행하지 않고 꺼져가는 촛불 앞에서 지나온 삶이 너무 아까워, 다가올 삶이 너무 아름다워 또 다른 촛불에 불을 댕기고 또 댕기며 아직은 친구 목숨이 붙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푸로펠라 비행기가 요란한 엔진소음을 내며 제주시 상공을 지나, 착륙 준비를 위해 하강을 시작하자 나는 놀랬다. 제주시가, 제주가 저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 공항을 빠져나와 죽어가는 친구를 찾으려고 두 눈을 부라리며 시내를 싸돌아다녔지만, 이내 벽을 만나고 말았다. 내 친구를 찾으러 발로 돌아다니기에는 제주도는 너무 넓고 너무 컸다. 이틀을 싸질러 돌아다녀 부르튼 발을 질질 끌며 제주 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친구의 엽서를 보여주며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람을 찾아서 한 젊은이가 죽기 전에 그 생명을 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그 경찰은 가출 신고서 용지를 꺼내 가출자의 이름, 성별, 주소 등을 적어 나가더니 가출동기를 물었다. 나는 사전 대책 없이 있는 그대로 말했다. “ 친척지간에 불장난 하다가 애를 배게 했는데요. 죽겠다고 서울에서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지금 어디에서 촛불이 다 꺼지면 죽는다고 엽서가 왔습니다. 좀 찾아서 살려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젊은 목숨 하나 지금 꺼져.. “ 그러자 그 경찰은 적고 있던 종이를 부욱! 찢어서 쓰레기 통속으로 던져 넣으며 나보고 경찰서 민원실의 출구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두 손을 깍지 끼어 자기 뒷퉁수에 갖다 대더니, “ 이 친구가 장난 하나? 나이가 몇 살 처먹었는데, 아, 지가 지발로 집 나갔는데, 대한민국 경찰이 그렇게 할일이 없나? 애를 뱄건 애비를 뱄건 즈덜이 알아서 할 일이지... 장난하나, 지금? “ 그렇게 경찰서에서 쫓겨나와 또 다시 꺼져가는 촛불의 소재지를 찾아 무작정 제주시 일대를 걸어 다녔다. 벌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죽어가는 친구를 찾아 무작정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아직 성한 발가락도 모두 부르트도록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시 걸어다녔다. 벌써 삼일 째 무단결근을 하게 된 회사에는 이미 심적으로 사직서가 제출되었다. 계속...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 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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