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내 동생 등록일 2016.09.30 05:32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84




내 동생

 

   나는 다짜고짜 소리 질렀다. “ 아니, 얌마! 못 오면 못 온다고 전화라도 해줘야지! 아무 말도 없이 안 오면

어떡해! , 알잖아! 네가 온다고 해서 찌게 잔뜩 끓여놓았다가 안 오면... 이 찌게 언제 누가 다 먹으라고? ”.

정말 그랬다. 내 동생은 매사가 희미하고 트릿했다. 누구랑 맘에 드는 사람만 만나면 헬레레 해 가지고 다음

약속은 까맣게 잊고, 또 술이라도 한 잔 걸칠라치면 옹야, 홍야, 주머니에서 살아남아 집에까지 자러 들어오는

돈이라곤 없었다.

   트릿한 게 맘에 안 들고, 절약할 줄 몰라서 속이 상하고, 그 나이에 남에게 속임을 당해서 돈을 떼이지 않나,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친구나 친척들 일에는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 헛품을 팔고. 그렇지만 나는, 체중이

100킬로나 나가는 이 동생이 항상 마음에 걸려 어쩌다 집에 맛있는 음식이 있게 되면 불러다 먹이고 싶어서

괜스레 아무 일도 아닌 것도 부풀리어 말했다. 우리 집에 꼭 와 볼일이 있으니 왔다가라고. 그러고는 아내보고

동생이 오니 좋아하는 김치찌개 좀 맛있게, 많이 끓여 놓아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 동생이 그제 집에

들른다고 해놓고는 오지 않았다. 우리 두 내외는 앞으로 열흘 정도는 다른 요리 없이 이 김치찌개만 먹어야

할 판이다.

 

   그런 내 동생이 어제 일요일, 정말 야무진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마라톤 대회에 나가 뛰는 현장을 몇 번

보아왔던 내 동생은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좀 뛰어보겠다고 작심하고 나름대로 아침, 저녁으로 마라톤 연습을

해왔나 보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동네 조깅 수준인데,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장하던지. 체중 100킬로 짜리

거구가, 김치찌개를 냄비 대짜로 혼자서 먹는 식탐으로, 허구한 날 친구와 술타령으로 세월, 네월 찾던 술꾼이

지난 삼 개월 여 아침, 저녁으로 조깅을 해 왔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했다.

 

   어제 일요일, 처음으로 하프 마라톤 대회를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걱정이 되어 신발, 복장, 장구

등을 전화로 물었는데, 매사를 아주 착하게도 성()과 착실히 상의하며 성 말을 잘 듣는 내 동생은, 마땅한

신발도 없고, 달리기 팬티도 없고, 달리기 셔츠도 없으니, 성이 어떻게 해 주어야 뛰지!” 라고 말했다. 나는

동생을 불러내어 신발, 달리기 옷 등을 차례로 사서 신기고 입혀서 돌려보냈다. 내일 마라톤 하니 술 먹지 말고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해 주었고, 새벽 6시에 혹시나 늦잠이 들었을까봐 전화를 해주고, 여의도 둔치 출발지에

늦지 않게 전철도 확인해 주었다. 비가 많이 온다하니 들어와서 바로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게 옷 보관 가방에

긴팔 보온 옷도 한 벌 넣어두라는 당부도 해주고, 달릴 때 눈 속으로 빗물이 들어가면 불편하니 긴 차양 모자는

꼭 챙기라고도 일렀다. 마음 같아서는 현장에 나가 이것저것 더 챙겨주고도 싶었지만, 군대에 간 아들 생일로

면회를 가는 길이라 나에게 다른 대안이 없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강북 강변도로를 따라 문산의 아들 부대로

면회 가는 차를 몰면서 그 시각에 여의도에서 뛰고 있을 내 동생 생각에 내 목이 자꾸 그쪽을 향해 돌아갔다.

 

   드디어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 아우냐? ”... 사실 기권을 했다 하더라도

칭찬을 해주려 맘먹고 있었다. 그 체구에, 이 악천우 폭우에 첫 도전. 다급한 내 목소리에 옆에 앉아있던

아내도 놀래서 즉시 차 안의 음악 음량을 낮춰주었다. 그러나 내 동생의 그 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짐작컨대 천신만고 끝에 완주선을 통과해서, 감격적인 첫 완주메달을 받아 목에 걸고, 어느 구석진 곳에서

비를 피하며, 극심한 피로감으로 다리도 제대로 못 가눈 상태에서 나에게 전화를 하는 듯 했다. 동생은 뜻 모를

감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말했다. “ 아우냐? 그래, 그래 울지 말고. 계속 전화 기다렸는데. 울지

말라니까! 그래, 그래 잘 했다. 어서 빨리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근처 목욕탕으로 가서 목욕하고. 얼른 밥

먹어! 국물 있는 뜨거운 걸로 빨리 먹어. 그래, 그래 정말 잘했어! 이따가 면회 갔다 와서 보자. 울지 말라니까! ”

 

   보통의 마라토너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반절짜리 마라톤, 불과 50여 리의 뜀길일지 모르나 내 동생에게는

인생 최대의 시련이었고, 도전이었으며, 나름의 인내심을 총 동원해 얻은 완주이었나 보다. 폭우 때문에

아랫도리 솔기 쏠림이 심해져, 사타구니와 허벅지는 쓰리고 아려왔을 것이다. 겨드랑이도 벌겋게 다 까졌을 것

이다. 안 해봤던 운동으로 인해 창자는 오그라져갔을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 굳어져가는 두 다리를 질질 끌며

2시간 1717초 동안 자기 의지와 싸워서 이겼을 것이다. 그 긴 동안의 뜀질 중 수 많은 생각 중에서 나에

 대한 생각도 있었던 모양이다. 내년이면 나이 육십, 망육의 내 동생이 생애 처음 마라톤 완주 후 잔소리꾼 형,

나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동생의 말은, “ , 고마... 나 성 맘 다 알아 였다. 무어가 고맙고 무엇을 다

안다는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전화기를 통해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내 동생의 그 끈적끈적한 흐느낌 속에

담긴 무게만 짐작할 뿐이었다. 남의 도움없이 오로지 내 힘만으로 가야하는 마라톤 완주의 고통이 아니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었던 그 무엇을, 동생은 알았나보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