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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두 달 시한부 마라토너 등록일 2016.09.30 05:30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70




두 달 시한부 마라토너

 

   많이 불안하다. 안 되는 날은 이래, 저래 안 되는 게 많다. 아침 출근을 위해 넥타이를 맬 때, 두 번을 고쳐 매어도 넥타이 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번은 겉의 넥타이 길이가 너무 길어서 허리띠를 타고 넘어서도 한참을 더 남아 보기에 안 좋았다. 그래서 다시 매었지만, 이번에는 넥타이 속끈이 겉끈보다 손톱 길이만큼 길게 삐죽하니 나왔다, 다시 고쳐 매는 수고 없이 그냥 버텨볼 요량으로 목 밑 매듭을 조였다, 풀었다 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다시 매었다.

 

   낮에 서울의 동쪽 끝 큰 병원에서 MRI 사진을 찍었다. 이것저것 복잡한 소도구들을 내 발목 이곳저곳에 갖다 대며 누워있는 나에게 말을 거는 그 MRI 기사분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 찍는 이 MRI 사진은 이미 수술을 전제로 하고서 찍는 것으로써, 어떻게 살을 헤집고 들어가서 어디를 수술할건지를 결정하는 참고용 사진이다! 라고 말했다. ‘ 선생님,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나가셔서 접수대의 간호사에게 월요일 수술을 취소하시고 그냥 가시지요.’ 라고 속으로 요행을 바라는 내 자신이 측은했다.

 

   현실은 나의 바램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의사는 물어 볼 것 없이 예정대로 수술을 하자고 할 것이다. 이 사진 보세요, 내가 그랬잖아요. 일상적인 활동까지는 석 달 정도 걸립니다. 물론 뛰는 것은 그 다음 경과를 보아야 하고요, 라고 말하며 수술 일자를 알려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MRI 사진 판독결과를 토대로 내 수술을 집도하기로 되어있는 정형외과 담당의사와의 면담을 위해 대기실에 있던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같은 병원의 정형의로 근무하는 친구를 찾았다. 어떻게 사정을 해봐야겠다. 이렇게 연약하게 앉아서 비오는 날 남의 밭 고춧대 바라보듯 해서는 안 되겠다. 내 앞에 닥쳐온 내 운명에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했다.

 

   스커트가 아닌 하얀 색 간호사 바지 유니폼을 입고 있던 그 간호사가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그 간호사를 따라 친구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친구가 진료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나를 맞아준다. 나는 말했다. “ J 교수야, 한창 진료 중에 정말 미안한데 너무 답답해서 말이야. 어차피 80, 90살 되면 뛰지 못하게 되는데, 지금 수술하면 이제 평생 뜀질하고는 끝나게 된다고 하니 나로서는 무지 심각 하거든. 아파도 찔룩찔룩 뛸 수만 있다면 그냥 참고 이대로 뛰고, 수술은 90살 그 때 가서 하면 안 될까? 그냥 쩔뚝, 쩔뚝이로 뛸 수만 있으면 .. ”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 이 친구야! 100킬로라니. 그거 서울, 대전 아닌가? 거길 차타고 가지 왜 뛰어? 지금 이런 상태라고. 뼈가 조각나서 들고일어난 게 안보여? 심각해! 다른 운동으로 바꿔.” 나는 또 말했다. “ 미안해.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 또 미안하지만 지금 뛰지 못한다는 말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내 말은, 쩔룩쩔룩 아파도 좋으니, 아니 지금부터는 조금씩만 뛸 거니까, 수술만은 안하고 어떻게 안 될까? 수술하면 이번에는 다시 뛰는 것조차 장담 못한다니, 내가 어떻게 하겠나? “ 여기까지 와서는 나는 나 혼자의 감정에 북받쳐서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난 항상 무엇 한 가지에만 몰입하는 세포 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사정하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J 교수는 또 다시 마우스를 끌어와 손놀림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방금 찍은 수 십장의 내 오른 발목 부위 사진이 지나간 6.25 동란 자료사진처럼 흑백으로만 빠른 속도로 휘익, 휘익! 하고 지나갔다. 두 번에 걸쳐 사진 탐독을 마친 친구 J 교수는 다시 마우스를 밀어놓고 두 팔을 자기 머리 뒤통수에 깍지 끼더니 말을 한다. “허이, ! 답답하네... 알았어. 내일 담당 L 교수하고 상의해 보고 내가 전화해 주지... ”

 

   그리고 그 다음 날이 오늘이다. 낮에 강남의 삼성동 즈음 길을 걷다가 도로변의 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 멍하니 커피를 들고 있을 때 손전화가 울렸다. 조마조마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기다리던 바로 그 전화였다. “ . J 교수님의 친구 분이라고요.. 어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도 뛰고 싶으세요? 일요일 100키로 울트라도 뛰셨다고요? 뛸 때 안 아팠어요? 그러면 이렇게 하기로 하지요. 일단 수술은 두 달 정도 뒤로 미루지요. 두 달 후 다시 저에게 외래로 오세요. 그 때 괜찮으면 다시 두 달 후 다시.. 이렇게 두 달 마다 저에게 오세요. 일단 월요일 수술은 미룹시다. ”

 

   커피숍을 나오며 손전화를 꺼내 아내를 불렀다. 지옥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몹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일요일 100킬로 울트라 마라톤을 뛸 때 안 아팠다고 거짓말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 영희야! 나야. 수술 안 해도 된대. 그런가봐. 정말이라니까! ” 안 아팠다고 한 거짓말이 시한부 두 달을 벌어주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프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며 연장해 가는 그 두 달이 지금 15년째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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