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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제주도의 힘 (3) 등록일 2016.10.11 05:15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35





제주도의 힘 (3)

 

나는 바랐다. 죽으러 간 내 친구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검푸른 파도를 통해, 육지에서와는 다른 세계를 보았길 바랐다. 이 세상 끝이다! 라고 느끼었던 육지에서의 옹벽이 이곳 제주도의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물렁물렁 뚫릴 수 있는 가변성 포도 젤리같은 것으로 보였길 바랐다. 아니다. 어쩌면 바다로 뛰어들기 그 이전에, 바다가 아닌 다른 것에 생각이 바뀌었길 바랐다. 죽으려고 바닷가로 나가는 순간 훅! 하고 불어오는 댓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고 옷깃을 여미어 외부의 바람에 자기 자신을 방어할 대항 자세를 취했길 바랐다. 그리고 순간 크게 놀래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길 바랐다. 죽음을 결행한 내가 바람이 무서워 목을 움츠리다니.. 밀려오는 바닷물에 발이 적셔질까 두려워 뒷걸음을 치다니..라고 생각의 노끈이 생성되어 친구의 뇌에서 강렬한 머뭇거림의 세포가 활동하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 불쌍한 이십대 청춘이, 파도 이전에 불어온 두어 삼태기 정도의 바닷바람으로 죽음을 향한 결행의 순간을 뒤로 미루고, 일단은 묵고 있던 작으마한 어촌의 민박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길 바랐다. 벌건 대낮에 오그라든 용기가 늦은 오후에도 다시 살아나지 않기를 바랐다. 낮이라는 이름으로 만물이 만물을 다 보게 되는 그 때 쪼그라 들었던 용기가 어둑어둑해져 갈 때도 다시 펴지지 않길 바랐다. 이제 어둠은 또 다른 무서움을 동반하고 그 무서움은 지금 당장 출구가 없는 자기 처지보다 더 큰 무게로 친구를 눌러주길 바랐다.

 

제주도의 작으마한 어촌, 초라하기가 그지없는 민박집 방 한쪽 귀퉁이에서 나머지 3각 귀퉁이를 응시하길 얼마, 다시 해변으로 나아가 넘실대는 파도, 검푸른 태평양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또 얼마.. 지금껏 살아온 곳과는 전혀 다른 육지가 아닌 섬, 제주도가 주는 뭔지 모를 그 무엇으로부터 더 강렬한 삶의 애착이 불쌍한 청춘에 흡착되어지기만을 바랐다. 언젠가 친구가 목욕 후 송월 타월로 자기 발과 발가락을 정성껏 먼저 닦고 다음에 그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닦는 것을 보고 순서가 이상하다고 이야기 했을 때, 그 친구는 말했었지. , 발가락도 내 살, 얼굴도 내 살, 어디를 먼저 닦는다고 뭐가 이상한데.. 그렇지. 그처럼 구석구석 다 소중한 네 몸을 절대로 소홀히 다루지 않기만을 바랐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제주시 시내를 벗어난 변두리 어촌 마을을 뒤지고 있었다. 두 눈은 용접봉 끝의 벌겋게 달아오른 불빛처럼 피사체를 녹일 것 같이 이글거렸다. 운명아, 이게 사나이 우정이라면 그 이름으로 친구를 구원해다오! 나는 뜨거운 눈물이 고여 가는 눈을 연신 깜박거리며 어울리지 않는 파란색 페인트칠의 여닫이문이 있는 동네 반점에 들어가 밥을 주문하고서 바다가 보이는 창 쪽을 향해 좌정했다. 어디선가 징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북소리도 가만가만 이제 막 굿이 시작된 듯했다. 북채를 든 손이 어깨와 함께 너울너울하는 환상이 보였다.

 

계속....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 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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