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힘(1) 1970년대 후반, 이목구비가 인형같이 곱상한 이십 대 초반의 아가씨 한 분이 나를 찾아왔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서울 명동입구의 어느 무역회사 건물 다방에서 둘이 마주하고 앉았다. 사무실에서 내려오기 전에 화장실에 들러 세숫물을 손에 묻혀 뻗친 머리를 한 번 쓰윽 눌러주었으나 뻗친 앞머리가 아무리해도 진정되지 않아 신경이 좀 쓰였다. 나는 이 분을 알지 못하는데 이 분은 나를 용케 알아보고 앉은 자세에서 손을 들어주어 내가 다가갔다. 다방 안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어색한 침묵이 지나갔다. 탁자 밑으로 두 손을 내려 무릎 위에서 메모 용지를 만지작거리며 둘둘 말더니 갑자기 흐느끼며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한테 털어 놓은 그 이야기는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얼이 나갔다. 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자기와의 불장난 끝에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게 되고, 자기는 임신을 하게 되어 배가 점차 불러오게 되고, 그러자 이 두 불쌍한 청춘은 고민을 하게 되나 대책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내 친구는 죽으러 간다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 친구와의 대화 중 자주 내 이야기가 거론되고 나와의 각별한 우정을 미루어 나는 그 친구가 어디로 죽으러 갔는지 알고 있을 것 같아 어렵게 나의 소재를 파악, 여기까지 찾아오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안경을 딱는 척하며 그 여성의 배를 바라보니 정말 불룩하였다. 물론 그 친구는 나에게 일언반구 이 불장난에 대해 말 한 마디 없었으니, 그 동안 그 둘의 고민은 얼마나 컸겠으며, 이제 막 들어선 20대 초반, 하늘이 무너지는 암담함 속을 헤매다가 친구는 결국 죽음을 택한 것이었다. 아주 앳되어 보이는 그 아가씨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중심을 잃었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친구가 죽음을 결정하고 가출을 하였다니.. 갑자기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두 다리는 휘청거렸다. 어디로 갔는지, 꼭 죽어야만 했는지 그저 그 친구가 죽기 전, 어디에서 공중전화 한 번이라도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었다. 한 삼일 정도 지난 오후, 엽서가 하나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주소로 배달되었다. 그 친구의 마지막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친구여! 여기는 제주도라네. 내 죽을 때까지도 그동안 자네의 우정은 잊지 않겠네. 제주도 어느 어촌 민박 구석방에서 이 엽서를 쓰고 있네. 작은 트랜지스터에서 지금 한일전 축구 중계방송을 하고 있네. 저 중계가 끝나면 바닷가로 나가서 나는 나의 삶을 끊을 생각이네. 방안의 작은 촛불이 다 타가고 있네.‘ ...계속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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