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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 편지(2) 등록일 2017.08.25 04:32
글쓴이 박복진 조회 1638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 편지(2)

핀란드 종단 울트라 마라톤 225km                                                                        박복진

 

K 시인아!

 

내가 사는 이곳 양평의 변두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져있는 소위 자연생태지역이다. 서울에서 내려오면 집 근처부터 자연생태지역이라는 입간판이 보이고, 고라니 출물지역이라는 그림도 있으며 실재로 한 밤 지나고 나면 길 위에 죽어 나자빠져있는 고라니를 수시로 목격하게 된다. 매정한 시멘트 정글, 서울에서 살다가 야생의 동물이 출현한다는 그런 간판 속에서 살게 되니 나는 양평 시골 삶이 주는 작은 흥분을 맛보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뛰기로 되어있는 핀란드 이곳 코스는 이름이 카르훈키에로스 Karhunkierros 곰 서식지 트레일 이다. 곰이 출몰하니 극히 조심해야한다는 산악코스다. 반드시 여럿이 사람소리를 내며 떼로 가야만 한다고 한다. 안전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내가 가다가 곰을 만나다니. 돌아가면 이 이야기는 또 친구들에게 얼마나 부풀려질 것인가?

 

가져온 약 5cm의 비상용 등산 칼을 짐 속에서 꺼냈다. 출발은 여기 저기 곰 그림이 그려져 있는 산장의 베이스 캠프 오우랑카 Oulanka 라는 곳이다. 출발 전, 아주 예쁘고 예뻐 너무 긴 동안 빤히 얼굴을 바라보다가 내 스스로 무안해진 지역 신문 여기자와 인터뷰도 했다.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오늘 곰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출발하자는 완전무장 43명 주자들의 걷꾼과 뜀꾼 분류가 끝나자마자 주자들은 우르르 출발선으로 몰려가 오늘 예정된 31km 산악 마라톤을 시작했다. 발목 복합 골절로 산악 달리기를 못하는 나는 나 스스로를 걷꾼으로 분류하였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이곳 국가지정공원 중 제일 풍광 좋은 단축 코스만 서둘러 걷고 이내 도착지점인 호텔로 내려왔다. 워낙 유명한 코스라 현지 등산객이 많아서인지 곰과의 조우는 없었지만 야생 순록은 여러 번 보았다. 뜀꾼 중에서 길을 잃어 핀란드 현지인들이 데려다 주는 일이 초반에 발생되자 나는 서둘러 주자들 상황 파악에 매달렸다. 차량이 접근할 수 있는 근접 산악지점에서 휴대전화로 전해오는 주자들의 주로 상황을 확인하고 있던 나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곰이 문제가 아니라 코스 자체가 문제였다. 이 코스는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험하기로 악명 높은 홍콩트레일 코스보다 더하다는 것이었다. 부여된 주자 제한시간 6시간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니, 지금 이 시각 중간 급수대를 통과 못한 주자들은 무조건 대회를 중단시켜야한다는 것이었다. 핀란드 도착 첫날이고 첫 마라톤 코스인데 일정이 꼬여가는 느낌이 일기 시작했다. 곧 닥칠 일몰로 곰의 위험성도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국내 신문 첫 페이지에 핀란드 곰에 물린 울트라 마라토너 대원의 모자익 처리된 사진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코스가 어떤 코스이길래 주자들이 저렇듯 흥분하는 것일까? 계속해서 전해지는 정보는 장난이 아니었다. 대회를 총괄 지휘하는 란타씨와 내 입술이 마르기 시작할 때 선두 주자 한 명이 들어와서 왼쪽 산을 가르키며 잔뜩 흥분한 어조로 증언을 쏟아냈다.

 

거기서요, 후미 주자들 대회를 중단시키기로 한 거 정말 잘 한 거에요. 장난이 아니에요. 이 코스는요, 홍콩 트레일보다도 훨씬 더 끝내줘요. 이 코스 하나만 가지고 대회를 해도 충분해요. 아이고오, 장난이 아니에요, 장난이.. ,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고, 그런데요 그럴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이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나요, 나 내년에 다시 올거에요. 그런데요, 저기 산속에서 아직 뛰고있는 후미 주자들 지금 6시간으로는 안돼요. 적어도 9시간은 주어야돼요. 아이고, 나도 울트라 트레일 많이 다녔지만, 여긴 정말 끝내줘요.

 

서둘러 그 분에게 호텔 방 배정을 해드리고 나는 호텔 입구 주차장 위쪽으로 보이는 높은 산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시간은 밤 8시를 넘기고 있었다. 백야라서 아직 어둠은 저 멀리 비켜 서있었지만 마음속의 조바심으로 덮여진 어둠은 나를 에워싸고 자꾸만 주자들이 아직 달리고 있는 산속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선두주자와 함께 방금 달리고 온 양, 내가 더 흥분된 어조로 연결된 후미 주자들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 안됩니다, 안돼요. 지금 거기서 계속 가시면 제한시간을 넘기어 절대로 안됩니다. 위험해요. 곰 나와요. 거기서 접으세요, 거기서 차 타세요! 타세요!”

 

내년이 아니라 지금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둠이 데리고 올 현실적인 곰과의 문제였다. 장난이 아니었다. 어설픈 자연보호 구역에서 온 나에게 진짜로 자연보호구역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일깨워주는 소름 돋는 문제였다. 여기는 핀란드 북부 초삼림지대 국립공원, 진짜 로 곰과 늑대가 출물하는 자연보호구역이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그 유명한 홍콩 트레일보다 더 좋다는 주자들의 이야기가 날 더 흥분시키었다. 그렇구나! 7일 짜리 달리기 대회. 이제 첫날 첫 코스인데 이런 평을 듣다니.. 오늘 밤 묵을 숙소 앞에 정차된 우리의 대형버스 옆구리에 붙은 핀란드 울트라 마라톤 225km, 핀란드어로 수오미 나빠삐이리 울트라 마라톤 225km라고 병기된 대회명 플라카드를 가만히 쓰다듬는 내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기대와 흥분으로 손끝의 감촉이 두뇌를 조금씩 조여왔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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