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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한반도 횡단 울트라 마라톤 출발지에서 등록일 2017.04.21 07:53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29



한반도 횡단 울트라 마라톤 출발지에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내가 자라 귀가 뚫리면서 듣고 안 지식으로 항상 초라하고 가여운 모습 바로 그 자체이었다. 좀 더 자라면서는 이 가여움이 분노와 비탄으로도 번져 나갔다. 왜 우리는 뙈놈과 오랑케 그리고 쪽발이 왜놈들에게 그 많은 침란을 당해야만 했는가? 힘이 부족하면 달려들어 이빨로 물어뜯어서라도, 머리가 부족하면 그 머리를 돌도끼 삼아 그들의 가슴팍을 찍어 눕히지 못했는가? 조국의 강산을 유린하려한 왜인에게 어찌해서 단 한 명의 생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저항하지 못했는가? 원수의 간을 생 주먹으로 파서 도려내어 허공에 뿌리며 재침을 막고 신성한 우리의 조국강산을 온전히 지키자는 결의를 어찌하여 하지 못했는가? 또 왜 그 결의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가?

 

힘없고 말 못하는 민초가 무슨 죄가 있어, 전란이 끝나고 도성에 돌아온 관리는 식솔의 명

줄을 위해 침입자에게 부역한 백성을 추려내어 치도곤을 하고, 오랑케의 수욕을 채워주는데 동원된 아녀자를 화냥년이라고 치부해 구중산골로 내몰아 칡뿌리로 연명하다 엄동설한 눈구덩이에 짐승의 한 끼 식사가 되게 하였는가? 왜병의 배설구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다 당하고 살아있는 목숨 끊지 못해 비탄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리네 누나, 언니들은 왜 일본 대사관 앞 노천에서 수요일마다 모여 피 튀기는 절규를 해야만 하고 그렇게 내몬 내 조국은 왜 그들 앞에 전경의 방패를 들이대어 그 모습을 숨기려하는가?

 

내 어설픈 분노의 대상은 아름다운 금수강산 이 땅을 유린했던 침략자들뿐만이 아니었다.

남들은 땅을 파서 지하로 철길을 만들어 200년 후를 내다보며 자기 나라의 부를 건설 할

때 우리의 궁궐에서는 안방에서 속닥거리는 밀담을 장지문 밖에서 엿듣고 툭하면 역모라는

올가미로 너를 죽이고 그러고 나서 나 또한 그런 식으로 죽임을 당하곤 했는가? 산자의 죽임만으로도 부족하여 죽은 자의 시체를 파서 다시 육시를 해대는,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증오를 매번 같은 형제, 자매 동족에게 하였는가?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는 우리의 누구를 그래서는 안 된다고 돈 들여가며 사절단을 보내 로비를 하는, 그런 바보 천치 같은 짓거리를 해대어 뭇 세계인의 비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는가? 도대체 그들은 누구이었던가?

 

조국은 불쌍했고, 그 조국 위에서 살고 있는 내 동포는 항상 연민스러웠다. , 여름, 가을, 겨울, 그나마 복은 있어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사계절의 화사함과 수려함 속에 짙게 깔린 말 못할 비통함은 감춰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건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내 나이 더 들고 늦은 철이 들면서 생각은 바뀌어져 갔다. 내가 태어나 자란 나의 조국은 나에게 절대적이었다. 시비를 매길 수 없으며 값을 따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나와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모든 이들은 장삼이 다 예쁘고 이사가 다 귀여우며 다 내 혈육이오 내 동포이니 어쩌란 말인가? 내 조국 산하는 논다랑이의 풀 한 포기, 졸졸 시냇가의 물 한 방울이 다 내 살붙이려니 내 더 이상 어쩔 것인가?

 

호구지책으로 무역한답시고 오 대양 육대주를 떠돌아다니면서 나의 생각은 더 굳어져 갔다.

조그만 일로 내 조국을 비아냥거리는 코쟁이는 나한테 걸리면 국물이 없었다. 모든 서식에

요구하는 국적은 또박또박 대한민국이라고 네 자를 다 채워 썼으며, 단 한 번이라도 한국이라

는 약자를 쓴 적이 없었다. 영어의 알파벳을 가지고 으스대는 놈한테는 우리의 두 개가 적

은 한글의 스물 넷 자모로 맞섰다. 내 발음에 진셍은 없으며 상대가 제대로 알아들을 때까지 인삼이라고 고집을 피웠다. 그런가 하면 훔쳐본 그들의 깔끔하니 세련된 매너를 본받아 그대로 흉내 내어 아시아의 동쪽 끝 소국 출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으려 공을 들였다.

 

비굴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쪼르륵 소리 나는 배를 움켜쥐고도 짐짓 잘 먹은 양 근처 일류 호텔 요릿집의 메뉴를 들먹이며 거드름을 피웠고 상담을 위해 호텔방을 나설 때는 침 한 방울이라도 구두코에 떨어뜨려 광을 내서 내 자존심을 세웠고 손톱 밑에 실 같은 땟자국의 유무도 점검해서 내 품위를 지켰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해외에 내 신발을 30여 년 넘게 갖다 팔아 내 조국을 위해 외화벌이를 해 날랐다.

 

그렇다. 수없이 많이 살다 간 나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이 조국 산하에서 태어나 이 강산에 부대끼며 이 흙을 밟고 이 흙 위에서 뒹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 땅에 내 육신의 재를 뿌릴 것이다. 여기는 내 어머니가 날 낳으신 나의 모국이며 내 아버지가 날 길러주신 절대 신성불가침 내 조국인 것이다.

 

이 조국의 산하를 동서로 가르는 한반도 횡단 길을 내 두 발, 마라톤으로 뛰어 본다니.. 무박 4일 동안 내 온 육신의 혼과 령으로 핥고 안고 더듬으며 뛰어 본다니조국의 산하야, 기다려라! 내 자라 오늘이 올 줄 어떻게 알았더란 말이냐? 대한민국의 서쪽 끝 강화도 창우리 선착장에서 동쪽 끝 강릉 경포대 동해까지 동서 칠백 칠십 리. 방금 건네받은 배번에 선명하니 인쇄된 한반도 횡단 308km, 무박, 무지원 울트라 마라톤 64시간의 글씨를 내 가슴에 다니 들떴던 내 가슴의 한반도라는 글씨가 만냥의 무게가 되어 눌러온다.

 

옷핀의 끝을 펴서 내 가슴에 다는 배번의 네 귀퉁이는 삐툴고 바르지가 않았다. 누군가가 오늘밤 날씨는 재난수준의 폭우라고 소리친다. 우중주가 될 터이니 머릿불도 예비로 더 준비하고, 비가 많이 오니 허벅지 쓸림을 방지하기 위해 바실린을 듬뿍 바르고 출발하라고 한다. 갓길 없는 구간의 야간 주행시 특히 졸지 말고 어떤 일이 있어도 도로를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실격이라는 경고도 그 남자의 손나발 통해 내 귀에 빠르게 들어온다. 나는 최면을 걸고 있다. 그래, 상관없어. 나는 이미 내 조국의 예쁨을 받고 태어난 육신이니까. 내 몸은 날 낳아준 내 조국의 충만한 은혜로 이미 젖어있으니까.

 

시작 음악을 기다리는 피겨 스케이터처럼 정위치에 서서 대한민국 땅덩이의 동쪽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화덕 불구멍을 죄다 열어 불을 핀 지가 오래된 끓는 기름처럼 내 전의가 타고 있다. 거기에 방금 던져 넣은 생새우 등짝 색깔처럼 온몸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울타리 구멍으로 과부의 허벅지를 본 뒷집 선머슴처럼 숨이 빨라진다. 두 눈을 감는다. 출발 10초 전이다.

 

 

우중주 : 울트라 마라톤에서 비를 흠뻑 맞으면서 달리는 것

머릿불 : 울트라 마라톤 야간 주행시 이마에 불을 켜 어둠을 밝혀주는 것 ( head to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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