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 편지, 핀란드 종단 울트라 마라톤 225km (1) 등록일 2017.08.21 09:08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81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 편지
핀란드 종단 울트라 마라톤 225km (1)                                                                     박복진

  핀란드 남부에 있는 수도 헬싱키에서 2인 1실 상,하 침대칸 열차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북극권을 향해 밤을 새며 달려온 열차에서 내렸을 때,   
나는 핀란드에서의 기차여행을 실감하지 못했다. 시골에서 기차를 타고 중. 고등학교 통학을 했던 나는 기차에 관한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몹시 편하다. 비록 그 당시 내가 탔던 콩나물 시루 여객 열차가 아니고 지금은 냉, 온 골라가며 단독 소나기( 샤워 )까지 할 수 있는 시설의 북극행 
초호화 열차였지만, 아내와 나 단 둘이서만 사용하는 전용 침실칸 기차였지만, 나는 다른 일행들처럼 기차 여행에 대한 행복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졸다 깨다 차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끝없는 자작나무 숲, 탄닌 성분이 많아 짙은 암갈색인 호숫물, 벽돌보다 더 붉은 색의 통나무 집, 거기에 
하나같이 하얀 페인트칠이 된 창틀로 된 숲속 별장의 부자티 나는 모습들도 지금은 우리 일정대로 지나가는 풍경의 하나로만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핀란드 울트라 마라톤 225km 대회 참가자 42명을 책임지고 9박 10일을 인도해야하는 나의 무거운 책무 때문일 것이다. 
이 열차에 승차하기 전 탑승명단 작성, 호명, 열차칸 안배,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음식 챙기기, 싣기, 인원 확인하기 등 눈, 코 뜰 새 없이 숨고르기 
한 번 없는 진땀을 흘렸기에 이 순간을 즐기는 여유는 애초부터 사치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막 시작인 핀란드 종단 울트라 마라톤의 
긴 여정에 대한 걱정이 항상 내 안경 코받침 사이에서 대롱거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침대열차 여객전용 칸 총 20여 개 중 세 칸을 몽땅 우리 일행으로 채워 이동하는 긴 몸뚱이의 야간열차는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백야의 
핀란드 북극권을 향해 올라갔다. 좁은 공간에 큰 짐을 구겨놓고 겨우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누우려는 나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울트라 참가 원정
 대원들이 안전하게 잘 즐기는지 방마다 노크를 하며 순회했다. 분명 늦은 밤 시간이지만 백야로 바깥은 환했다. 음식을 드시는 분, 처음 타보는 
침대열차가 신기해서 구석구석을 쓰다듬어보시는 분, 창 바깥으로 펼쳐지는 핀란드의 이국적 모습에 얼을 빼고 고개를 처박듯이 해서 뒷걸음질
 치는 풍경을 감상하시는 분, 흔들거리는 열차 통로에 나와 책을 읽고 있는 분 다양하시다. 모두들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친척처럼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두 번 째 칸을 지나니 벌써 대 여섯 분은 가져온 소주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은 종이컵 고추장에 마른 멸치 대가리를 거꾸로 꽂고 계시다. 
원정대원들은 하나같이 그 순간들을 즐기고 있었다. 서울에서 남으로 간다고 해야 고작 2시간 하고 잠깐이면 종점이어서 침대열차라고는 
상상이 안 되는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나도 그 일행에 끼어 막 종이컵 소주를 받았을 때 일행 중 한 분이 열차의 자기 방 열쇠를 
안에 놓고 바깥에서 문이 잠기었다고 급 당황으로 나를 찾아오는 바람에 나는 받아놓은 종이컵 소주를 내려놓고 여객 담당 승무원을 찾아서, 
속 채우기 전의 긴 순대같은 열차 속을 이리저리 좌우 흔들려가며 헤매기 시작했다. 겨우 해결된 이 사건은 아침나절에 도착한 북극행 열차의 
종점에 이르러 또 발생했다. 내 짐은 잔자갈 정거장 플랫홈에 서둘러 팽개쳐 내려놓고 나는 여객 전무를 찾아 뒤로, 앞으로 숨이 가쁘게 
돌아다녀야했다. 열차가 다시 출발하기 전 해결해야 할 급박함이 나를 뛰게 만들었다. 등에 땀이 주르르 엉덩이 가운데 골을 타고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간신히 해결하고 대기한 리무진 버스에 우리 원정대원 43명이 다 올랐다. 북극행 야간 침대열차의 낭만은 진즉에 내 곁에서 떨어져
 나가있었다. 

  그러나 열차에서 내려 달리는 버스에서 생각해보니 나 또한 방금 전 기차 여행 그 시간을 즐기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기차만을 생각하면 
별도의 감흥이 안 일었지만 그 좁은 열차 안에서 벌어진 것들, 대원들 서로의 마음속에서 일었던 특별한 감흥들. 평상시 일상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못했을 그 무엇들이 내 가슴을 푸근히 감싸주어 지금 나는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어느 부부는 말씀하셨다. 생전 
처음 타보는 침대 기차, 나는 이 기차 여행 하나만으로도 이번 원정을 만족한다고 하시던 고백.  9박 10일의 첫날 첫 시작일 뿐인데 저렇게 
만족해하시다니.. 간편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보온병에 물을 나르고 내가 가져온 부식이 여기 있으니 나눠드시자고 바리바리 싸들고 오시는 
대원. 먼저 드시라고, 먼저 드시라고 사발면의 온수를 양보하시며 즐거워하시는 모습들. 그러면서 창밖을 가르키며 연신 감동해 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들. 여기는 그리고 지금은 내 삶의 치열한 현장이 아닌 머나먼 이국 핀란드 기차 안, 모두가 경험해보지 않았던 매우 특별한 
곳이었고 시간이었다.

  거기 기차 안에는 인간이 있었다. 무엇인가에 쫒기다 안전한 동굴 속으로 들어온 안도가 있었다. 사람의 향이 있었고 서로 간 간격을 메운 
애정이 있었다.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단단한 자석이 있었다. 북극을 향해 달리는 야간 침대열차, 그것은 2017년도 핀란드 울트라 마라톤 225km를 
뛰어보시겠다고 단걸음에 달려온 대한민국의 뜀꾼 42명을 단박에 한 동굴 속으로 밀어 넣어 무엇으로도 깨부술 수 없는 탄탄한 동지애의 마술이
 있었다. 내가 조금 전에 즐기지 못한 것은 쇠로된 철마 그 자체이었을 뿐, 이렇게 인간애가 결합되어 훈훈한 사연이 씨줄, 날줄되어 짜여지니 나는
 커다란 행복감을 기차에서 즐길 수 있었다. 그 이름은 헬싱키 발, 북극권 종점 케미야르비로 가는 야간 침대 열차이었다. 다시 또 타보고 싶은 낭만
 기차 여행이었다.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이전글 | 5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