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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갈등 (2) 등록일 2017.04.03 14:09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49



갈등 (2)                                           박복진

 

   내 원래의 울트라배낭을 멘 오른쪽 어깨에 방금 주운 검은색 케논 카메라 가방을 겹쳐서 멨다.

그리고 잠실 운동장을 나와 전철역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저쪽 어디에서 이 카메라

주인이 허겁지겁 달려오면 나는 이 카메라를 자진해서 주인에게 돌려줄 건지, 모른 척 지나가서

내 소유로 할 건지 결론을 못 내고 걸었다. 당연히 돌려주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냥 지나치다가 발각되어 그 소유주가 나를 향해 무지막지한 언사로, ? 주웠으면 그 자리에서

누구 주인이 없냐고 소리를 안 질렀느냐? 지금 걷고 있는 방향이 파출소 쪽이 맞느냐?

당신 것이라면 당신 주제로 이런 고가 카메라를 살 수 있는지 재산보유 현황을 말 할 수 있느냐? , 등의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상상도 해봤다. 연이어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화두 하나, 하나가

여름 홍수주위보 발령 때 열어놓은 팔당호 한 쪽 수문의 물 쏟아짐처럼 계속해서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바닥으로 패대기 처졌다. 나는 이제 제어불능 상태로 접어들었다.

 

   종합운동장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내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지금껏 관심 밖에 있었던 세상천지

각종 보안 기기들의 형체가 자꾸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아직은 내가 취할 것이라는 결심도, 그렇다고

찾아 나서서 돌려줄 것이라는 작심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였다. 그런 생각을 일부러 회피하면서 자꾸 걸어갔다.

부부가 말다툼 끝에 할 말 없는 남편은 앞으로 빨리 걸어가고, 자꾸 시비를 거는 아낙은 뒤에서 죽자 따라오며

아니, 이녁은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어? 말을? 하는 옛날 영화 장면이 생각났다. 어쩔 것인가? 작심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돌려 줄건 가? 가질 건가? 양단간에 결론을 내고 걸어야 할 것 아니여? 라는 자문을 끊임없이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묵묵부답, 벙어리한테 이마빡을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말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나는 내 범죄가 발각되었을 때의 합당한 변명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 두뇌로 그 정도의 합당성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닥에 마른 침을 한 번 뱉고 어깨 위의 가방을 또 한 번 풀썩거렸다

 

   몇 걸음 못가서 불심검문으로 내가 붙잡히는 상황이 아른거렸다. 그럴듯한 변명이 고무망치로 두더지

잡는 장난감 구멍에서 두더지 대가리보다 더 빠르게 쏙! 튀어 올랐다. 보면 모르시오? 나는 주인을 찾아서

돌려주려고 가지고 간단 말이오. 가방 안에 아무런 연락처가 없으니 내가 어찌해야 되겠소? 일단 집으로

가서 사진기에 찍한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나오지 않겠오? 그럼 그 주인공을 인터넷으로 찾아 연락할 거란 말입니다.

내 사회적 신분을 검색해보시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내 발걸음은 약간 가벼워졌다. , 이 카메라는 정말로 욕심이 난다. 갖고 싶다. 내 재산능력 아니,

내 소비 형태로 봐서 남은 생애 그 어느 날에도 사지 못할 카메라. 너는 왜 내 손에 들어와 내 양심을

비집고 나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냐, 아이고오,.

 

   내가 십대나 이십대 때 주웠다면 이런 고민은 안 할 것이다. 즉각 집 뒤안 볏단 속에 숨키고 이 삼일

상황 보았다가 나 혼자만 꺼내서 보고 그리고 또 그 속에 숨겨놓았을 것이다. 평생 사용 여부는 생각도

못하면서, 단지 소유하고 있다는 행복감으로 밤마다 나 혼자 방을 나와 만져보고, 쓰다듬고, 비스듬히

옆으로 서서 긴 렌즈의 중간 부분을 손으로 받히고 카메라를 내 눈에 갖다대보며 망원사진을 찍는 흉내를

내어봤을 것이다. 그리고는 또 볏단 속에 감추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아마 평생을

미사용으로 둔다 해도 소유 그 자체만으로도 난 행복했을 것이다. 이 카메라는 그렇게 좋은 것이다.

내가 그렇게도 절실히 가지고 싶었던.

 

   그러나 난 지금 60을 넘어 *망칠이다. 내가 어떤 잘못된 생각을 하고 그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그건 용서가 안 될 것이다. 모르고 그랬다는 것이 용인이 안 되는 나이니까. 그리고

나에게는 나를 바라보는 자식이 있고, 아내가 있고 손녀까지 있다. 내가 만일 부정한 행동으로 경찰에

끌려간다거나, 형사가 야밤에 집으로 와서 노크를 하며, 박복진씨 맞습니까? 하면 나는 그 순간 까무라칠

것이다. 그 순간이 곧 내 인생의 끝장일 것이다. 정의만을 부르짖고 살아온, 지금껏 재산을 못 모았지만

이것 하나로 축재 미숙의 방패막이로 삼은 내 정의가 애들 혀끝의 솜사탕처럼 단방에 녹아 없어질 것이다

 

   이런 복잡한 생각의 흐름은 집에 다 올 때 까지 이어졌다. 차라리 나에게는 아무런 생각을 하는 능력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머리가 띵하고 눈알이 휑해지고 가슴은 벌떡증 직전까지 갔다.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다시 그 카메라 가방을 열었다. 오메, 이 도톰한 망원렌즈 좀 보소. 손아귀에

착 감기는 감촉 좀 보소.. 몸체에 볼록하니 다섯 손가락 감아서 마는 손잡이 형태 좀 보소.. 오른 손은

몸체잡고 왼손은 뻗어 망원렌즈 줌 땡길 때 이 까칠한 오목 홈이 손바닥에 착 앵기는 감촉 좀 보소 ..

 

   그 때 아내가 들어왔다. 화단에 올라온 수선화 줄기가 꼿꼿하니 이 삼일이면 꽃이 필 것이라는

말을 하며 거실로 들어왔다. 자초지종을 듣던 아내가 내 말을 콱! 짤랐다. 어려운 결정을 할 때 당신이

잘 쓰는 방식이 있잖아요. 돌려준다, 가진다, 두 항목을 쓰고 그 중간에 위에서 아래로 길게 금을 긋고,

양쪽 항목에 대해 몇 가지 사항만 대비하면 금방 답이 나오잖아요. 주인 찾아 돌려줬을 때의 기쁨,

가지고 있을 때의 불안함, 금방 답이 나오네요. 빨리 찍은 사진 열어서, 주인공 찾고, 노트북 켜고

네이버 검색해 봐요. 오늘 마라톤 했으니 참가 배번호 알아 동아일보에 전화도 해보고요.


  아내는 현명했다. 아내는 저녁 밥상을 차리며 내가 인터넷을 통해 마침내 알아낸 주인과 전화를

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내 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 선생님 것이 맞는 것 같네요.

월요일 택배로 바로 보내드릴게요. 집에 포장용 뽁뽁이가 없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충진종이를 넣어서

상하지 않게 포장해서 보내드릴게요. 오늘 마라톤은 잘 하셨나요? , 그럼 이제 올 여름 몽골 고비 울트라

마라톤에도 도전해보세요. 아니, 무슨 말씀을요. 주인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려 제가 죄송해요.

배송료도 제가 부담해서 보낼게요, 걱정 마세요. 그러자 아내가 코르시카 섬에서 사서 식탁 옆 기둥에

걸어놓은 식사 준비완료 신호용 종을 딸랑거렸다. 그것은 잠깐 동안 혼미했었던 내 양심을 되살려준

고마운 소리이기도 했다.

 

* 망칠 : 나이에 있어 칠십을 바라보는 60대 후반을 일컫는 말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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