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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편지, 2018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5) 등록일 2018.07.26 09:50
글쓴이 박복진 조회 1112




K 시인에게 보내는 완주편지                           

2018년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5)

 

K 시인아!

 

서부 영화를 지독하게도 좋아했던 나는 그 당시 서부 영화의 주인공 흉내를 내기 위해 물과 불을 안 가렸다. 리반 클립 흉내를 내기 위해 담배 크기만 한 나뭇가지를 주워 입에 물고 곰방대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연출했고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중절모를 구하고자 무진 애를 쓰기도 했다. 제일 가관인 것은 죤 웨인의 윗저고리 소매에 너덜너덜한 수가 그렇게 멋이 있어서, 큰형님 댁에 있던 아이디알 미싱 덮는 천에 달린 노란 수를 떼어내어 내 옷 소매에 너덜거리게 달고 쏘다녔다는 사실이다. 이글이글 타는 듯한 그의 파란 눈매는 도저히 흉내를 낼 수가 없어서 포기했지만 말을 타고서 대평원에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모습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땀에 절은 진한 밤색 가죽으로 된 말안장이며, 목이 긴 가죽 장화, 어느 것 하나 내 눈길을 피해가는 것이 없었다. 더 가관인 것은 나는 년 전에 텍사스를 여행하다가 진한 밤색으로 된 허리 권총집 밴드를 보자마자, , 이건 진짜다! 나를 위해 만들었다! 라며 거금을 지불하고 사와서 지금 내 집에 보관하며 가끔씩 허리에 차고 데크에 나와 난간에 엉덩이 반쪽을 걸치고 맹칼없이 먼 산을 한 번 째려보기도 한다. 총알 넣는 총알 집은 총알을 구할 수가 없어 빈집으로 남았지만 오른 쪽 다리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곳의 권총집은 쓰레기더미에서 주워온 목재 장난감 권총을 넣어 구색을 맞추어 놨다. 지금 이 나이에도..

 

첫날에 예정된 50km 달리기를 끝낸 몽골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메넹편 ) 전사들은 오늘 예정된 야영지 숙소를 향해 이제 10대 차에 분승해서 지평선만을 바라보며 또 차를 몰았다. 표지로 삼을만한 것이 아무 데도 없는데 용하게 방향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이 별종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미처 끝나기 전에 그들은 길을 잃어 멈췄다. 한 시간 여 요리저리 길도 아닌 곳을 헤맸다. ,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안타까운 탄식을 하며 제발, 제발! 빌었더니 다행히 상황이 좋아졌다. 울란바토르에 사는 조직위원장은 이곳 지리에 자신이 없어 메넹에서 파트너를 구해 길 안내를 부탁했고, 그 분은 또 한참을 이동하더니 그곳에서부터는 자기도 찾아갈 길에 자신이 없어 현지인 안내를 구해 이 분이 오토바이로 우릴 안내하더니, 또 얼마를 가니 거기에는 놀랍게도 그곳 마을에서 우릴 안내 영접하기 위해 네 마리 말을 탄 현지인들이 약간 높은 지형에서 우리 일행들을 내려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긴 장대에 마을 깃발을 꽂아 든 이 징기스칸 후예 기수단을 보자 나의 몸 전체는 소름이 돋았다. 나뿐만 아니라 이걸 본 우리 일행 모두가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징기스칸 기마부대다!! 네 마리다!

 

그랬다! 맨 앞에 서는 의장대 기수단이라 그런가? 말들도 모두 평균치 보다 더 커 보였다. 늠름했다. 깃발을 매단 장대가 말안장 어느 곳에 고정되었는지 좌우로의 움직임이 없었다. 왼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오른 손으로 깃발의 장대를 잡은 네 명의 기수단. 깃발의 무늬는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것이었으니 아마 그곳 부족이나 지역을 나타내는 것이었나 보다. 그러나 깃발의 상징은 문제가 안 되었다. 지금 우리는 21세기 현대차 스타렉스를 탔고, 12세기 몽골식 환영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차량 10대 맨 앞에서 따각! 따각! 차량 속도를 리드하며 달려가는 네 마리 말 환영 기수단. 그들이 만들어내는 말편자 먼지. 흔들리는 깃발이 품어내는 이상한 야성, 피를 부르는 듯한 전투욕, 그 모습 자체로 우리는 뽕! 갔다. 우리는 차창 문에 목을 길게 빼고 덜컹거리는 몽골의 동쪽 끝 비포장 대평원에서, 뭔지 모를 뜨거운 혈관 속 피의 역류를 느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찾고 있었던, 여기에 와서 느껴보고자 했던 끝없는 자유, 야성, 문명으로부터의 탈출, 바로 그런 것들의 구현이었다.

 

그 분들의 안내와 호위로 한참을 달리자 그곳에는 약 200여명의 마을 주민들이 총출동해서 크게 간격을 벌린 이열 횡대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안 되어 연락을 할 방법이 없던 그들은 그곳 그 자리에서 무려 4시간 동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했다. 감사합니다, 바야를다!만 연발하며 그들의 손을 한 분, 한 분 잡고 눈을 맞추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몽골 고비 울트라 마라톤 225km, 이것이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감동의 극치이자 나의 소년 시절 꿈속으로의 시간 여행이었다. 먼지 펄펄 나는 대평원을 달리는 카우보이 시네마스코프 서부 영화 스크린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 마법의 순간이었다.

 

계속...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