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내가 좋아하는 것들 등록일 2016.09.27 17:37
글쓴이 박복진 조회 1647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는 이른 새벽 눈뜨기 직전, 의식이 돌아온 그 순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만 귀를 기울여 또 하루가 밝아오는 침실의 창문, 커튼 바깥세상을 궁금해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새 같은 겨울 날, 두툼한 이불의 무게가 내 온 몸에 주는 안락함을 좋아하며, 이불을 살며시 걷고, 맨 다리를 침대 아래 방 바닥에 착지 시킬 때의 그 첫 느낌을 좋아합니다.

 

간밤의 수면 중 무의식에서, 이제 살아야하는 오늘 하루, 의식 세계로의 귀환을 좋아합니다. 나는

우리 집 커튼의 달팽이 무늬와 그 색깔을 좋아합니다. 이 커튼을 장만 할 때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상가 커튼 집에서 만났던 모 섬유 공장 사모님의 탁월하신 미적 센스를 좋아합니다. 앉아있었던 팔걸이의자가 좁을 것 같은 뚱뚱한 하체를 가진 그 큰 몸집에 어떻게 그렇게 섬세한 감각이 내재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 사모님의 센스가 담긴 작품, 우리 집 커튼의 무늬와 색의 배분을 좋아합니다. 나는 그 커튼을 열어젖히는 순간, 커튼을 매달고 있는 가는 플라스틱 바퀴가 알루미늄 홈을 타고 또르르 굴러가는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합니다. 이 소리는 남해의 거제도 홍포에서 들었던 둥그런 몽돌의 소리와 비슷해서 좋아합니다.

 

나는 열어젖힌 커튼 바깥세상에서 갑자기 밀려들어오는 새벽의 희뿌연 밝음을 좋아합니다.

이 희뿌연함이 매 초 매 분 점점 밝아지면서, 사물의 형체가 내 두 눈 속에 하나 둘 자리하는 하루의 시작, 새벽의 그 순간을 좋아합니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고 새벽 마라톤을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 때 욱 ! 하고 오래 기다렸다는 듯 내 얼굴에 푹 안기는 새벽의 공기를 좋아합니다. 운동화를 신어 끈을 조이고, 발바닥이 신발 안창에 잘 안착되었는지 확인하려 발을 나무 데크에 탁! ! 내려쳐 보일 때, 지면과 떨어져있는 그 나무 데크가 만들어 내는 둔탁한 울림소리도 좋아합니다. 그 소리를 신호로, 나랑 같이 새벽 달리기 나가려고 몸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뒷다리를 허공에 대고 몸 풀기 동작을 취하는 눈치 빠른 우리 집 개의 영리함도 좋아합니다.

 

나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길 좋아합니다. 어떤 큰 일로 마음이 안정되지 못 할 때 나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거나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끄집어내길 좋아합니다. 그럴 시간이 없거나 그럴 심적 여유가 없을 때는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길 좋아합니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용수철 튕김 같은 즉흥적 반응보다는 이렇게 반걸음 뒤로 물러서서 잠깐의 시간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길 좋아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이곳 시골 양평 땅에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하며 생긴 것들인데, 나는 이렇게 느린 생각이 가능한 전원생활을 좋아합니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다음글 | 그녀는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