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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운좋은 코쟁이 양반 등록일 2016.09.27 17:34
글쓴이 박복진 조회 1662

 

 

운 좋은 코쟁이 양반

 

100km 이상을 달리는 울트라 러너에게 42.195km 의 일반 마라톤 참가는 드믄 경우다.

그 정도 거리야 굳이 참가비 내고 대회 참가를 하지 않아도 혼자서 곧잘 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위 우리나라 3 대 일간지 마라톤 대회랄 수 있는 조선, 동아, 중앙 마라톤 대회는 예외다. 참가자가 많고, 축제 분위기이며, 가까운 도심을 달리기 때문이다. 또 보탠다면, TV에서 생중계를 해 주기 때문에 혹시나 나도 화면에? 의 기대감도 작용해서일 것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이번 달 초에 나는 잠실 운동장을 출발, 성남을 왕복하는 중앙일보 마라톤에 참가해보았다. 100km 이상의 대회가 아닌 42. 얼마의 단거리이니 아무런 부담 없이 그냥 바람 쐬는 기분으로 가서 달렸다.

 

얼마를 가다가 나는 젊은 외국인 남녀를 만났다. 이들은 절반도 못 간 지점에서 두 다리를 벌리고 그 안으로 고개를 넣을 듯이 땅으로 향하고 고통에 겨워했다. 그래서 난 주저 없이 영어로 힘내라고 해줬다. 대회장 여기저기에서 들었던 콩글리쉬 화이팅! 이 아닌 정식 영어표현이라서 그런지 금방 시선을 나에게 돌리며 고마워했다. 이렇게 나와 이 두 코쟁이 양반들하고는 두 서 너 번 주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제한 시간 5시간에서 몇 십 분을 남기고 완주선에 거의 나란히 들어왔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물 한 병 받아 운동장 잔디에 앉은 그들에게 내가 다가가 물으니,

이들은 어제 한국에 처음 왔고, 마라톤은 이번이 두 번째이며, 보름 정도 한국을 관광한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에 처음 온 이들에게 진짜로 우리나라의 참 맛을 안겨주고 싶어서 제안을 했다. 만일 당신들이 진정한 한국과 한국인을 보고 싶다면, 서울만 보지 말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양평 시골에 한 번 와보시라. 기꺼이 초대하겠다...

 

다음 날, 내가 남겨준 연락처로 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돈을 아끼려고 그랬는지 그들은

휴대전화 로밍을 안 해와 이 메일로만 연락이 왔다. 나도 할 수 없이 이 메일로만 회신하길, 서울에서 전동차 타고 양평까지 오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주었고, 그들은 내 안내 그대로 무사히 양평역에 도착, 나의 영접을 받았다. 역의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니 그들은 이미 상당히 고무되어있었다. 한국의 시골 가을 풍경이 기막히게 좋다는 것이다. 그래요.. 지금부터 더 좋은 것을 보여주리다.

 

양평역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10km 거리를, 나는 차를 몰면서 그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이런 곳인 줄,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고 연신 감탄을 해댄다. 그리고 내가 시골에 산다고 해서 시골 농가를 연상하고 왔는데, 유럽풍 외관을 가진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서며 또다시 놀라고, 너른 잔디 마당에 놀라고, 자기네들로서는 매우 낯선, 마당 옆 텃밭의 배추, 무심은 두렁에 놀라고, 그 옆 공터의 100여 그루 기기묘묘한 소나무 수형들에게도 놀라는 눈치다. 그렇지, 외국에서 처음 온 이곳, 모든 게 이상하고 신기하겠지.

 

나는 코쟁이 두 양반들에게, 정말로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외양으로

나타난 것 말고 한국인의 가슴 속을, 그 가슴 속에 간직된 한국의 멋을 보여주고 싶었다. 장롱 속에서 흑포를 꺼내 머리에 쓰고, 꽃천으로 이마에 꽃도 만들어달고, 장구를 가지고나와 거실 한 쪽에 좌정하고, 우리의 멋진 장구 굿거리 한 판을 선물하였다. 가을 날 따스한 햇살이 거실 통창을 뚫고 깊숙이 들어와 나의 왼뺨을 비추니, 자연스레 무대조명이 되었다. 대중을 상대로 한 큰 무대의 공연이 아닌,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관객 단 두 명 특별 공연, 난생 처음 한국 관광 이틀째 그것도 마라톤 하다가 우연히 만나 받은 조건 없는 초대, 결코 쉽지 않은 기회이고, 쉽게 잊혀지지 않을 순간이리라. 마음은 벌써 귀국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보따리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안다. 여행 중 현지에서 받은 작은 친절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리고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던 다른 문화를 처음 접해볼 때 그 감흥이 얼마나 소중한지... , 네 아무렴요, 당신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지요, 극동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관광하기로 마음먹은 코쟁이양반 , 두 분들은 정말 운이 좋은 분들이지요, . 서울로 돌아가는 그 분들의 뒤에서 나는 속으로 거푸 중얼거렸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