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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오늘 아침 어느 노인으로부터 받은 편지 ( 2 ) 등록일 2016.09.27 17:16
글쓴이 박복진 조회 1596




오늘 아침 어느 노인으로부터 받은 편지 ( 2 )

안녕하십니까?
춘포
박복진입니다.

이 노인 분의 글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 저는 제주 울트라 대회의 200km 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나, 영 자신이 안 섭니다.
나이가 73 세이니 제한된 34 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눈도 침침, 이도 흔들
흔들, 귀도 멍멍, 꾸부정하고 어늘한 몸뚱아리, 여기에 교통사고 후유증도 가끔나타나는
완전고물입니다.

한 때는 KBS, MBC, 각종 매체에 출연도 많이했고, 조.중.동 및 각종 스포츠 신문과 지방
신문에 고정적으로 4 개월 여 기사가 나간 적도 있어, 그 때의 그 인기로 천지를 얻은 기쁨
이 있었지만, 죽음을 앞둔 지금은 모두가 도로묵입니다.

한 때는 준 재벌보다 더 풍요를 누렸지만 저의 황금 생활 중 15 년은 거지 중 상거지 생활
을 했습니다. 어린이 대공원 상춘객이 버린 음식을 주워와서 끓여먹으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똑똑한 줄 알았는데 지금은 바보천치입니다....“.

“... 저는 57 살에 고지혈증, 당뇨, 고혈압, 위장, 대장암, 고도비만으로 고생하다가 교통
사고 후유증으로 재활 치료를 위해 조깅을 하여 죽음 직전에 살아났습니다. 처음에는
100m 도 못 뛰다가 10 년 동안 꾸준히 연습하여 당당하게 100km 울트라 마라톤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지만 200km 는 아직 도전을 못해봤습니다. 저는 무식하고, 어눌한
늙은이이지만 신념이기라기보다 고집이있습니다. 2012년 4월 7일 제주 200km 울트라에
출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한 번도 뛴 적이 없고 더구나 배낭을 지고 뛰어 본 경험
이 없어 자신이 없습니다.....“

“ 박 선생님은 서울 마라톤 게시판의, 어버이날에 다시 읽는 사모곡, 이라는 글을 읽고
알게 되었으며,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선생님 홈 페이지의 칼럼을 모두 읽어
KUMF 의 국제 담당이시고, 우리 고유의 풍물도 잘하시는 만능 멋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죽지않고 세계 대회 한국 유치설명회를
가져 모나코에서 IAU 임원들을 설득시킨 점, 상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합니다...“.

자, 이렇듯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며 흘러가는 이 육필 서신을 보며 저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노인 분 글대로 본인의 상태가 완전 고물인데 지금껏 정상의 상태에서 도전해보지
않은 200km 를 도전하시고자 하시는 그 용기가 어데서 나왔으며, 왜 그 도전을 해보려
하실까요?

저는 이 점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외람되지만, 살다가 보면 우리가 하는 일,
하려 하는 일이 언제나 거창한 이유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었으니까요.

다만 제 생각에는, 이 분의 드라마 같은 삶에, 그래도 마라톤과 같은 정직한 운동으로, 지금
이 순간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다는 그 한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를 담가보고
싶은, 그래서 나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껏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이 이렇게 허무하게 시들어가는 것으로 마감하고 싶지 않고,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이보다 더한 굴곡도 용케 넘어온 내 자신에게, 마지막으로라도
좋으니, 다시 한 번 더 높은 언덕을 던져놓고 한 번 시험해보자는 것, 그래서 이겨보자는
것이지요. 그것으로써 내가 아직 죽지않았다고 가만히 세상을 향해 소리 한 번 질러보겠다
는 것이 아닐까요?. 평생 남의 돈 한 번 안 빌리고, 고지서 연체 한 번 안하시고 사신 그
우직함이 지금도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을까요?

자, 이 분은 과연 200km 울트라 마라톤에 신청을 하게 될까요? 아니면 생각으로만
그치어 도전을 포기하고, 종로 3가 파고다 공원에서 한 낮의 해바라기만을 하게될까요?
제가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이 분은 신청 마감일은 어제 오후 짧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
왔습니다.

“ 박선생님, 유통기한이 다 되어 폐기처분에 가까운 꼰대, 방금 신청, 입금 완료했습니다. ”

아, 얼마나 많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일까요?
그리고 그 결론의 값은 얼마나 나가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 노인 분은 과연 오는 4 월 7 일 생애 최초 200km 울트라 마라톤의 도전에서
어떤 전설을 써서 다시 한 번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게 될까요?

200km 제주 울트라 마라톤이 출발되고, 제한시간 34 시간이 지난 후, 대회 종료 호각이
불리게 될 2012 년 4 월 8 일 오후 4 시에 저의 이 글은 다시 계속됩니다.

춘포
박복진
( faab 마라톤화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