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내동생 등록일 2016.09.28 04:35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82






내 동생

 

      나의 첫 해외 출장은 1979년도에 있었다. 첫 여행지는 일본 동경을 거쳐, 홍콩, 호주의 시드니, 멜버른 그리고 다시 뉴질랜드의 웰링톤, 오클랜드를 도는 약 열흘 정도의 사업여행이었다. 당시의 경험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그 때 그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황홀한 구름의 온갖 기기묘묘한 모양새며, 세련돼 보이는 파란 눈 여승무원의 유창한 영어하며, 터져 나갈 것 같은 스커트 속 그녀의 둔부. 망측해라, 세상에 어떻게 다 큰 큰애기 옷이 그렇게 재단될 수 있나? 일부러 가슴을 부풀리게 하여 입은 듯한 유니폼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들이 잘 먹어서 가슴이 원래 그렇게 크단다. 심지어 기내식을 설명해 주는 차림표의 호사스런 인쇄 양식까지 모든 것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었다. 이따가 밥 줄 때 이런 것을 줄 것입니다요, 라는 안내 종이를 그렇게 예쁘게 인쇄하다니.. 그냥 복도에 서서 뭐, 뭐가 나올 것입니다요, 라고 말로 해도 될 것인데

 

   그 당시 상황으로 아마도 결단코 해외여행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할 것 같은 내 동생을 위해서 나는 가능한 모든 것을 내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동생에게 보여주었었다. 지금 와서는 아무 것도 아닌 그런 것들을 말이다. 심지어 기내에서 주스를 따라주는 플라스틱 컵도 가지고 와서 동생에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 이것 봐라, 이게 케세이 퍼시픽 항공 타고 갈 때 기내에서 주스 따라주던 플라스틱 컵이다. 굉장히 딴딴하고, 이 면 좀 봐라 ! 월매나 매끄러운지 ! 우리나라는 아직 기술이 없어서 이런 것 못 만드나 보다 ". 또 어떤 때는, " 이것 봐라 ! 이건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서 나눠준 호주 지도인데, 당신이 호주를 여행 중 일 때 아프거나 다치면 제일 가까운 병원의 위치가 빨간 점으로 나타나 있으니 지체 말고 그곳으로 연락하십시오. 이 얼마나 인간적인 문구이냐? 여기가 바로 사람 사는 곳이다! " 라고 내가 겪은 감동을 동생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것들, 그 중에 내가 가지고 와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가지고 와서 동생에게 보여줬었다. 어떤 것은 그림으로 내가 직접 스케치 해왔고, 어떤 것은 현지의 관광안내 소책자 귀퉁이에 나와 있는 것들을 오려가지고 왔고 , 어떤 것은 사진으로도 찍어 와서 보여줬다. 해외여행 기회하고는 멀리 떨어진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동생이 내깐에는 많이 안쓰러워서 그랬었다. 100Kg 에 육박하는 거구지만 나의 눈에 보이는 내 동생은 항상 연약하고,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게 살아만 온, 언제나 나의 연민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었었기에 말이다.

 

  지금까지도 사정은 별반 좋아진 게 없어 내 동생은 해외여행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동생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적어도 해외 문물의 접근 기회에 관한한 많이 불쌍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동생은 나의 설명을 듣고, 그런 류의 설명조차 생생하게 들을 수 없는 제 친구의 더 안쓰러운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담을 전달해 주고 있었나보다. " ! 웃기구 자빠졌네, 우리 성( )이 그러는데... " 하면서 말이다. 간접적으로 들은 내 동생의 설명은 내가 해 준 이야기보다 훨씬 더 현장감 있게 부풀려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나를 더 다그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올 해는 꼭 내 동생에게 해외 구경을 시켜줘야지, 하는 내 결심 말이다.

 

  지금은 영상물이 발전되어 해외 간접 구경이 흔해지니 그 호기심이 많이 줄겠지만, 그래도 난 내 동생에게 내 돈 들여 해외 구경을 한 번 시켜 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내가 경험했던 35년 전의 그 황홀함을 내 동생에게 안겨 줄 것이다. 내가 가져왔던 기내식 플라스틱 컵 대신 동생은 무얼 가지고와서 자기보다 더 못 한 친구들에게 보여 줄랑가? 가 자못 기대된다. 설마하니 호주 퀀타스 항공 여승무원의 C컵을 벗겨와서, 이것 봐라, 동네 아줌마들 것 다 넣어도 남겠다! 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다음글 | 권력의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