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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도로에 누운 울트라 마라토너 (2) 등록일 2016.09.28 04:34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88




도로에 누운 울트라 마라토너 (2)

 

                                                            

 

거기 그 도로변 길가에서 그렇게 얼마를 누워있었을까? 후미 주자 2명이 그곳을 통과하다가 길가에 누운 나를 발견하고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은 오늘 하루 100km, 이 구간만 신청해서 뛰는 주자들이어서 3일 연장으로 뛰어온 나 같은 주자들보다는 힘이 남아있었다. 나의 배번을 훑어보아 내가 외국인 참가자라는 것을 알고, 얼른 무릎을 더 꺾어 나에게 더 다가와 영어의 한 단어만을 써 거푸 거푸 말했다. 미스터 박! 댄져러스 Dangerous !! 그들이 당거러스!! 라고 우습게 발음하지 않았는지 헛생각도 해보았다. 그들이 소리 지르는 대만 말은, 갓길이 없는 이 험한 길바닥에, 이렇게 누워있으면 지나가는 차량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라 알아차렸다. 그들이 날 양쪽에서 잡고 일으켜 세워줬다. 배번을 보니 한 분은 오나라 오자 성이고 한 분은 진나라 진자 성을 가진 대만 현지인이었다. 오나라와 진나라가 대한민국 나라 박씨를 구해주는 격이 되었다.

 

내 배번에 매직잉크로 쓰인 대만횡단 종착점 후아리엔 호텔 이름을 보고 무어냐고 물었다. 난 나 혼자라도, 밤을 새워서라도 가려고 배번에 종착지 호텔 이름을 써달라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네들이 길 안내를 해 줄테니 같이 가자고한다. 고마웠다. 그래서 우리들 셋은 다시 달리기를 했다. 힘을 쥐어짜고, 쥐어짜고.. 가장 힘들어하는 내가 앞장서고, 내가 달리다 지쳐 속도를 늦추면 그들 두 분도 같이 늦췄다. 얼마 후, 이렇게 느리게 가다보면 그들마저도 제한시간 경과로 탈락이 될 것 같아 나는 말했다. 두 분 먼저 가시라고.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험한 오지에서 외국인을 놓고 갈 수는 없다고 하였다. 날 감동시키는 순수한 우정이었고 동지애였다. 그렇게, 그렇게 3,200m 급 최고봉 산을 넘어 아래로, 아래로 동쪽의 태평양 바다를 향해 긴 달리기가 계속되었다. 너무 많이, 너무 굽은 도로를 달린 내 허리 통증이 갈수록 심해지고, 내 몸의 균형 틀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지, 몸이 자꾸만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목 비틀어 방바닥에 놓은 풍뎅이 같다. 다시 언덕이 시작되자 나의 달리기가 또 멈춰지고 그들도 자동으로 나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이럴 때 국내의 울트라 마라톤 대회 같으면 서로 간 살아온 인생사도 이야기하고 가족 이야기도 하며 다시 달리기를 위한 힘을 비축하는 유용한 시간이 되지만, 이 분들과는 그렇게 심오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저 조용한 침묵만이 우리 셋 사이 간격을 채우고 있다. 자박, 자박, 자박... 이렇게 걸으니 좌, 우 고산 준봉들의 위용이 눈 안에 들어온다. 달려오며 못 본 경치들이다.

 

그 때 우리들 옆으로 차량 지붕 위에 경광등을 단 대회 조직위 차량 한 대가 다가왔다. 오나라도 아니고 진나라도 아닌 팽자를 쓰는 분이었다. 그 분과 일행들과 긴 말이 시작되었다. 가끔씩 날 가리키며 말을 이어가는 것을 보니 나와 관련된 대화 같다. 저기 저 한국인이 고집을 부리며 밤중에, 혼자라도 가겠다고 우기고 있다는 설명인 것 같다. 그들이 대화 중에 나를 가리키면 나는 얼른 매직으로 휘갈겨 쓴 내 배번호의 호텔 이름을 내 손가락으로 꾹,꾹 찔려서 내 의지를 표현했다. 나로서는 그렇게 중요한 사안인데도 말은 못하고 좀비같은 제스처만 해대니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분위기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오나라와 진나라가 진 것 같다. 팽자를 쓰는 그 분의 목소리가 커지고, 좌우 고개 짓이 빨라지고, 말끝에 가서는 편 손바닥을 칼 삼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동작이 몇 번 반복되는 가 싶더니, 오나라가 나에게 다가와, 뿌커능 ! 즉 불가능이란다. 나는 이 뿌 자를 없애보려고 또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좀전의 좀비 제스처를 또 썼다. 그러자 오나라가 다시 진나라로 가서 뭐라 길게 이야기하니 그 팽나라가 운전대 왼쪽인 우리 쪽의 반대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크게 이야기한다. 아마 이런 말일 것이다. 아니 못 간다고 하면 못 가는갑다! 라고 순순히 배번을 반납하고 대회를 포기, 차를 탈 것이지, 참 그 양반 말이 많네. 지금부터 나오는 타이루거 협곡 구간이 야간에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시는 모양이구먼. 더구나 혼자서 뛴다고? 그러자 이번에는 진나라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기 머리의 헬멧을 이용해, 이렇게 좁은 협곡을 가다가, 머리 위에서 바윗덩어리가 요렇게 쿵! 떨어지면, 이렇게 아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요렇게 꽥! 뒈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못 가고 여기서 이렇게 싹! 접어야한다고 하며, 손가락 다섯 개를 나란히 부쳐 칼을 만들더니 목을 싹! 베는 흉내를 내었다. 너무도 날카로운 그 손가락 칼에 3,000m 고산의 공기가 찍! 둘로 갈라지고 동시에 대만 횡단 울트라 마라톤 246km 완주, 내 꿈도 그 자리에서 뎅강 분질러지는 순간이다. 이제 남은 거리 고작 29km...

 

나는 나를 잘 아는 대회 조직위원장을 전화로 연결해 달라고 해서 가겠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 가보라고 한다. 전화를 끊을 때쯤 그는 껄껄껄 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허가는 이곳 현지 주로 감독을 설득하지 못했다. 왼손을 들어 엄지와 가장 가는 손가락으로 전화기를 만들어 귀에 대고 방금 허가받았다고 항변했지만, 이제 오나라도 진나라도 팽나라도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뿌커능! 이라는 것이다. 주로 감독이라는 우리나라 마라톤 용어는 대만어로 재판장이다. 나를 재판하는 절대 권력을 쥔 사람이다. , 접혀지는 내 날개, 16년 마라톤 인생의 첫 탈락, 늙어가는 울트라 마라토너 실체를 인정해야하는 가슴 아픈 순간이다. 뿌커능, 뿌커능.. 도대체 어떤 능지처참 육시를 헐 놈이 이 단어를 만들어 날 슬프게 하는가? 속에서 벼락불이 일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고맙게도 내 스스로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려주었다. 얼마 후 나는 눈 앞의 높은 산봉우리와 계곡을 바라보았다. 한 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나서 재판장의 지시대로 차량에 탑승했다. 내 알량한 위안, 그래도 한국인 참가자 중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주자라는 어설픈 내 위안이, 타이루거 협곡에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2014년 제1회 대만횡단 울트라마라톤 246km 대회, 나의 완주 희망은 절벽 위 바위, 떨어지지 않고 거기 위에 붙어있는 그 바위 존재만으로 거기서 그렇게 무참히 깨져버렸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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