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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색다른 경험 등록일 2016.09.28 04:27
글쓴이 박복진 조회 1733





색다른 경험

                                                         

겉으로는 아무런 탈 없이 이제 닷새가 지나갔습니다. 오메, 이제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또 일을 저질렀거든요.

 

밥상을 다 차리고 앞 행주치마에 두 손을 쓱싹 쓱싹 문질러 물기를 닦은 아내가 치마 입은 엉덩이를 식탁에 바짝 붙은 의자 사이로 요령 있게 살짝 비켜 앉히고서 첫 숟가락을 막 들라고 할 때 나는 입술 속에서 뱅뱅 돌리던 젓가락을 빼어 맥없는 빈 접시 한 가운데를 꼭꼭 찍으며 말을 꺼냈지요.

 

" , 내일 법원에 출두해야 혀! 9 시 까지니까, 아마 집에서 7시 반에는 나가야 할텐데.... " 그러자 아내가, " 뭐 가아 ?? , 왜 또오 ?? 누구, 당신이 ??? " 나는 힘없이 , " 모올라 ! 나도. 차 뿌수고 사람 얼굴에 침 뱉었다고 나오래. 내일까지. 폭력 행위에 법률 뭐 어쩌고 위반이라나 ? 내 원 ! "

 

일단 아내가 들고 있던 젓가락의 비산 ( 날아서 흩어짐 )은 없어서 무척 다행이었습니다. 이제 아내의 신경이 더 달궈지기 전에 사태의 전말을 서둘러 풀어놓아야 했습니다. 사건의 전모야 매우 간단하였으나, 문제는 이런 일이 나에게는 처음이 아니고, 내 나이가 이런 종류의 상황에 대처해서 잘 처신 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매번 결과가 그렇게 잔인하게 귀결 된다는 데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차가 속도 제어 없이 달려와 거의 내 발톱 끝에 멈추어서, 나는 그 난폭 운전자의 차를 들고 있던 손가방으로 후려쳐 차의 빗물받이가 박살나고, 나의 항의에 대드는 그 젊은 놈에게 분함을 이기지 못해 그 얼굴에 침을 확! 뱉고 근처 파출소로 둘이서 쌍 멱살을 잡고 들어가 진술서를 쓴 사건. 아직 아내에게는 토설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미루어 왔지요. 잘 곪은 왕 땀띠를 터트리는 용기가 없어 시간을 잡지 못하고 미뤄 오듯이....

 

" , . 아니 그렇다고 사람 얼굴에 침을 뱉어요?? , 쓰레기 통 옆 길가에 침 뱉어도 요즘 5만원인데, 자알 됐다, 이제! 못 나와도 50만원이다, 이제!! 자알 됐다. 그 나이에 즉결 재판소나 들락거리고... 거기 가다가 내 친구나 만나면 뭐 하러 왔다고 둘러 댈랑가?? 알바로 자장면 그릇 찾으러 왔다고 헐랑가?? “.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법정의 판사 앞에 섰습니다. 사실 나는 추가로 제출한 진술서로 모든 걸 다 말했습니다. 나는 판사가 안경 아래로 읽고 있는 나의 진술서 읽기가 끝나면, 아내의 지시대로 무조건 잘못 했다고 해서 구류를 면하고 가능하면 벌금 액수도 줄여 보기로 마음먹고, 입을 풀무원 로고 뒤집어놓은 것처럼 아래로 꽉 다물고 판사의 질문을 기다렸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폭력 행위 피의자 박복진은 사건 현장에서 창졸간에 황망히 작성, 기 제출드린 진술서에 덧붙임 하여, 아래와 같이 사건의 상세 및 앙 선처 자술서를 제출하오니 해량하시와 관대하신 판결로써 본 피의자가 평상시대로 모범적 민주시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머리 많이 숙여 바라옵니다.

 

. 사건의 상세

피의자 박복진은 도로의 횡단보도를 적법하니 횡단하던 중, 횡단 보도상의 보행자 보호 의무를 위반하고 멈춤 없이 돌진하는 문제의 차량에 혼과 백이 사방으로 날아가 얼이 빠진 상태에서, 자기 방어 본능으로 들고 있는 손가방을 내리쳐, 문제의 난폭운전 차량의 조수석 플라스틱 빗물받이 (싯가 5,000원 상당)를 망가뜨렸습니다.

 

. 문제의 차량 운전자는 차가 아직 보행자를 치지 않았고, 사고가 나지 않았는데 왜 차량에 손괴를 가하느냐는 궤변으로 적반하장 작태를 보여 그 운전자와 인근 파출소까지 동행, 그의 위법 사실을 법에 고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스런 언쟁이나 여타 폭력 행사 등 불상사는 없었으나, 단지, " 차가 아직 사람을 치지 않았는데 왜 차량을 손괴 하는가 ? " 라는 묵과 할 수 없는 반복 대꾸에, 피의자는 하늘 끝까지 끓어오르는 분기를 감당치 못해 부지불식간에 상대방 얼굴에 침을 뱉게 되었습니다.

 

. 하오나, 아무리 중죄라 하더라도 지엄한 국법을 제치고 피의자 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이를 치죄할 권리가 없음을 알게 되었으며, 차후 남은 삶 동안에는 이런 우행의 재발이 없도록, 존경하옵는 판사님 전에 맹약 하옵니다.

 

. 다만 한 가지, 벽을 갉아먹은 쥐는 후 세월 그 일을 잊을지 모르나, 몸이 갉힌 그 벽은 그 쥐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는 " 벽불망서 " 옛 성현의 말씀처럼, 차량이 사람을 치어 다리가 부러지면 이미 일은 끝나는 법, 법에 따른 몇 푼의 보상을 끝으로 가해자는 그 일을 잊을 수 있을지 모르나 부러진 다리로 남은 생을 학독 같이 무겁게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는 결코 그 일을 잊을 수 없음에, 피의자 본인이 사회 정의라는 이름하에 어쩔 수 없이 내 질러야만 하였던, 정의의 최소 방위 행위이었음을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라옵니다.

 

더구나 본인은, 보스톤 마라톤까지 출전한 준 프로의 마라토너로서 그리고 또 시각장애인의 마라톤 도우미로서, 차량 사고로 인한 만의 하나 다리 부상은 곧 죽음이었을 수도 있었음을 존경하는 판사님은 헤아려 주시리라 믿는 바입니다. 폭력행위 처벌에 대한 법률위반 즉결 심판 피의자 박복진 올림.

 

얼굴 넓대대한 그 판사는 나의 진술서를 읽느라고 좌우로 돌려대던 고개를 멈추고 서류를 시늉으로 넘기며 질문한다. " 그래, 가해자는 가해를 인정하고 있는데 실재 입은 피해는 뭔가요 ? ". " 생명의 위협입니다 " 나는 그 물음이 불 인두되어 내 손가락에 닿은 듯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 판사는, " 그렇다고 사람 얼굴에 침을 뱉어요 ? ". 순간, 구류를 면하고 벌금을 줄이려면 무조건 잘못 했다고 하라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 죄송합니다.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이라 부지불식간에 그만.... " .

 

그러자 판사는, “ 박복진씨는 초범이고, 선한 사람인 것 같아 벌금 10만원의 선고를 일 년 유예합니다. 그러고 일 년 안에 다시 이런 일이 안 일어나면 이 선고는 없어집니다. 됐지요? , 가십시오. "

 

법정을 빠져 나오자마자 나는 품속에서 손전화를 꺼내 꺼놓은 전원을 살렸다. 시간이 뒈지게 오래 걸렸다. 전화기 화상에 막대기가 그려지고 요일, 시각, 내 이름이 나오자 나는 즉시 단축번호 일 번 집 전화를 돌렸다. 전화기에다 대고 소리소리 질러 고지했다. " 나 무죄야! 벌금 없어 ! 안 낸다고! 안 내도 된다고! 갖고 온 돈 되로 가져간다고 !! 나 죄 안 졌다고 !!"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