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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나이아가라 폭포 등록일 2016.09.28 04:25
글쓴이 박복진 조회 1653




나이아가라 폭포

                                                                  

 

뉴욕을 출발하여, 장장 8 시간의 고속도로 주행 끝에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지 호텔에 도착, 우선, 첫날의 맛보기로 야간 조명에 비치는 장엄한 물 떨어짐을 멀리서 잠깐 보았다. 엄청난 대자연의 조화에 탄성보다는 경배의 침묵이 나의 눈 놀림을 꼬옥 붙들어 매었다. 폭포의 길이나 낙폭, 수심, 발원지등의 일차적 호기심보다는 엉뚱하게도 나는 우리나라 군대가 이곳 미국에 쳐들어와 이곳을 빼앗으면 안 될까? 하는 잠깐 동안의 상상으로 공격 가능 지점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쳐들어와 빼앗을 수 있다면 뺏어서 우리나라에 갖다놓고 싶었다.

 

이 양반아, 철 좀 들어라 !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는 아내의 핀잔을 들으며 어서 잠자리에 들어 지친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 아침 이곳 폭포주위를 뛰어볼 요량으로 서둘러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출장지, 관광지 가릴 것 없이 현지에서의 아침 달리기는 생략 할 수 없는 나의 의식이다. 더구나 , 이렇듯 경관이 빼어나고 공기 맑은 곳에서의 아침 달리기란... 달 지고 별도 진 밤 밀밭에서, 고맙게도 이따 밤에 나오겠다고 낮에 고개 끄덕여준 처녀 기다리는 시골 총각처럼 저절로 입이 헤 벌어졌다. 12일의 짧은 관광이었기에 큰 짐은 뉴욕에 남겨두고 와서, 짐 풀기는 금방 끝났다. 그리고 낯선 곳의 호텔 첫 숙박 시 챙겨야 할 기본적인 것을 점검했다. 출입문 중앙에 부착된 화재 시 비상 대피 방향, 호텔료에 포함된 아침 식사 제공 식당의 위치, 문 여는 시각, 객실의 온도, 습도 조절 장치, 내일 아침 기상을 위한 자명종 울림 장치까지 조절을 끝내고 막 잠자리에 들려다가 미심쩍어, 베개에 누이려던 나의 머리를 번쩍 들곤 가져온 짐을 다시 살펴보았다. 불행하게도 나의 의혹은 적중되었다. 가져온 짐 속에 내가 내일 아침 필요로 하는 달리기용 팬티가 보이지 않았다. 맡기고 온 뉴욕의 큰 가방 속에 놓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황홀한 폭포 주위 내일 아침, 고대하던 나의 환상적인 달리기는 저 바깥의 나이아가라 폭포수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지금 시각 밤 10시 하고도 50, 급히 호텔 로비로 내려가 구내 관광 상품 파는 가게를 기웃거렸으나 이미 철재 쇠가닥 문이 닫힌 지 오래이고 호텔 앞 도로 몇 블록을 뛰어 가보았으나 모두 철시한 상태다. 이곳은 가게들이 실내조명을 다 켜놓고 퇴근하니 가게 안에 보이는 진열된 옷들은 나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달리기용 팬티, 팬티가 없다. 이 늦은 시각에 구할 방도가 없다. , 나는 내일 아침 뛰어야 하는데. 이곳 나이아가라 폭포 주위의 아름다움을 내 두 발로 딛고 훑고 더듬어, 그 생생함을 가슴에 모두 담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고 예까지 왔는데.

 

허탕치고 터덜터덜 내 방으로 들어오는 내 발걸음은 천근을 넘어 만근인 냥, 갑자기 세상이 싫어졌다. 어쩌다 달리기 팬티를 잊고서 놓고 온단 말인가? 전에 없던 건망증에 내 자신이 싫어졌다. 이미 침대에 곯아떨어진 아내의 작은 몸이 튀어 천장에 닿을 정도로 털썩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얄밉게도 아내는 깨지 않고 그냥 잔다. , 일이 막혔을 때, 우선 침착해야 된다. 이성을 찾자. , 달리기 팬티가 필요한가? 그걸 입지 않고 뛰면 사람들이 웃을 것이다. 그들은 매우 낯선 것이 덜렁거리는 채 달려오는 나를 보면 웃을 것이다. 어떻게 한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포기 할 수도 없고...

 

이튿날 새벽 나는 계획했던 그대로 달렸다. 나만 아는 음흉한 웃음을 짓고 달렸다. 일자형 미국 측 폭포, 말발굽 모양 캐나다 측 폭포 주위를 달렸다. 수 천 수 만 마리의 버펄로 떼들이 계곡을 달려오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굉음, 때로는 상상이 실체를 넘지만 지금은 내 두 눈앞에 펼쳐진 실체가 나의 상상을 넘고 또 넘는 순간이다. 무지개다리를 지나 염소 섬, 루나 섬, 세 자매 섬, 수 억 톤의 물 떨어짐이 빚어내는 천둥소리, 물안개, 거기에 해서는 안 될 짓의 짜릿함으로 즐거움이 배가되는 그 순간을 즐기며 정신없이 폭포 주위를, 강 위, 아래를 넘나들며 뛰고 또 뛰었다. 강 상류 쪽으로 더 뛰어 올라갔다. 어둠이 덜 걷힌 강물 위의 새벽안개는 뛰는 나의 발밑에 구름을 받혀 주었다. 천상의 아침이 이럴 것 같았다. 강 옆의 파란 잔디. 제 멋대로 부러져 이리 저리 가로 세로 쓰러져 누워 있는 고목들의 백년 천년 세월의 흔적들... 내달리는 흙길 위에 현란한 기하학적 무늬의 느림보 달팽이들이 밟힐까봐 가끔씩 나의 뜀질 속도를 느리게 할뿐, 나의 방해꾼은 아무도 없었다.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주위의 물체가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는 서둘러 어둠을 타고 내 방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서둘러 호텔 쪽으로 역 방향을 잡고 다시 뛰었다. 밀려올라오는 아침 태양과 경주가 시작되었다. 나의 가속이 필요했다. 두 시간 여 음흉하지만 그렇게 만족할 수 없는 아침 달리기, 이제는 끝을 내야한다. 아직 아무도 기상한 흔적이 없는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을 돌아 내가 묵고 있는 Days Inn Hotel 의 측면 입구를 통해 Lobby 에 들어섰다. 밤 근무로 두 눈 거죽에 절구통을 올린 것 같은 무척 졸린 눈의 접수직원이 내 모양새를 바라보더니 두 눈이 뱀에 좆 물린 황소 눈깔만큼 똥그래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당당한 걸음으로, 마치 어제부터 세상의 패션이 바뀌어 지금은 BYC 삼각팬티가 마라톤 공식 팬티로 인정된 것 같이, 아무런 주눅 없이 그 큰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리고 단추를 눌렀다. 방에 들어와 욕탕에서 소나기를 끝내고 나는 나의 여행 일기장을 꺼내 이렇게 적었다

 

" 오늘 새벽 나이아가라 폭포를 뛰었다 . BYC 삼각팬티 바람으로 두 시간 십분 동안 뛰었다. 어둠이 나를 잘 가려 주었다 "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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