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영국 사람, 데이비드 쏠터 등록일 2016.09.28 05:08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27




영국 사람, 데이비드 쏠터                             

 

   제가 사업차 사귀게 된 많은 사람 중에 아주, 아주 전형적인 영국 신사 양반 데이비드 쏠터라는 분이 계십니다. 쏠터 씨와는 같이 알게 되어 지내온 세월이 얼추 20 여 년은 족히 넘으니, 아무리 외국 코쟁이라고는 하지만 그 동안 저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그가 서울에 오면 당연히 저의 집에서 식사를 같이하며, 저 또한 런던에 가면 당연히 쏠터씨 집이나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으며 그간 궁금했던 집안 이야기, 사업 이야기, 또 사람이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공통 화제에 대해 흉금 없이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겪어서 알게 된 수 십, 수 백 경험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 신사의 진짜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도 그리 생각할지는 모르지 만요. 요점은, 저는 대인 관계상 방향감각을 잃을 때면, 이럴 경우 그 영국 신사 쏠터 씨는 어떻게 처신할까? 라고 가만히 자문해 보고, 그 분 같으면 이렇게 할 것이다! 라는 믿음이 생기는 쪽으로 행동하곤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 그 분은 보통 타당성으로 뭉쳐진, 아주 상식적인, 그러면서도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그리고 삶에는 아주 진지한 끈기가 이어져 흐르는, 착하디착한, 제가 본받고 싶은 영국의 보통시민입니다.


 그 분의 여러 장점 중에 특히 언어는 그 세련미가 샘이 날 정도로 아주 부러운 면이 있습니다. 상대방과의 대화 때 많이 돋보이는, 아주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은 그 분의 말하는 습관은 정말 매번 탄복할 정도로 예의에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영국의 어떤 교육제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영국의 어떤 사회구조가 그를 그렇게 선하고 마음씨 착한 모범적 시민으로, 저렇듯 예의 바르고 깔끔한 언어습관을 갖도록 만들었을까? 저는 가끔씩 쏠터 씨와 같이 일하면서 혼자서 궁금증을 가져보곤 했는데요, 지금도 뚜렷한 해답은 가지고 있질 않습니다.


  어느 날엔 가는 직접 쏠터 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도 보았는데, " 쏠터 씨! 당신의 화법은 아주 특이합니다. 당신은 한 번도 상대방을 실망시키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문장을 구사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말씀은 항상 상대방의 인격이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아주 마음먹고 골라낸 표현만 쓰시는 것 같은데요, 혹시 말씀하시기 전에 그렇게 하시려고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지요? " 그 분의 대답은, 역시 그 분 특유의 예의를 갖추고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은,

 

   " 아이쿠 ! 미안합니다. 나는 이러한 질문을 처음 받아보아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나의 대답에 실망하지 않으셨는지요? 만일 서툰 대답이라도 양해해 주신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까 합니다. 저의 말하는 태도나 습관을 그렇게 좋게 보아주셨다하니 정말 저에게는 크나큰 기쁨입니다. 저의 말이나 행동의 습관은 제가 어릴 적부터 저의 조부모, 부모, 가족들로부터 보고 듣고 배운 그대로입니다. 달리 특별하게 교육받은 게 없는데요. 듣고자하는 대답이 되었는지요? 그렇게 되었길 바랍니다 "


   요즈음 젊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경우의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 우리는 말을 할 때 듣는 상대방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한 대화가 수반되는 행동도 당연히 무례하여 불쾌하기가 짝이 없지요. 쉬운 예를 들면, 상품을 구매하려고 상점에 들어가 문의 할 때에도 그 주인에게 너무 무례하게 구는 예가 너무 많고요, 그 주인이 이미 먼저 들어와 계신 다른 손님에게 열심히 제품 설명을 하고 있는데 손으로 주인 옷소매를 자기 앞으로 잡아끌며, " 이거 얼마요? " 라고 퉁명스럽게 묻질 않나, 먼저 오신 손님과 주인의 대화를 가로막고 주인 턱밑에 자기가 고른 상품을 내밀며, “ 이것 말고 다른 것 없어요? " 라고 무례한 독촉을 하지 않나.. 외국 여행 중에 공항 면세점에서의 같은 한국 사람끼리, 같은 여행객끼리 서로 밀치고 달치며 자기 것 먼저 포장하고 계산해 달라고 소리치는 모습, 저는 너무 많이 보아왔습니다. 물론 옛날보다야 많이 나아졌지만요.

 

   음식점에서, 대중 공연장에서 천방지축 무례하게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그냥 놔두거나, 그 같은 몰상식을 보고 나무랄 것 같으면, 왜 남의 애 기죽이느냐고 대드는 그 부모. 지하철 의자 위에 신발신고 올라서는 아이에게 , 애야, 너 내리면 바로 다른 손님이 그 위에 앉는데 그러면 못 쓴다! 라고 타이르는 나에게, " , 흙이 묻으면 얼마나 묻는다고 그래요? 아저씨는 어린애도 안 키워요 ? " 라고 두 눈 크게 뜨고 대들어 나를 기절 시킬 뻔 한 그 아이 부모.. 이 모두가, 별도 교육 없이도 그처럼 선량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도 더 싫어하는 심성을 길러주는 사회에서 자라난 보통 평범한 영국인 쏠터 씨를 생각나게 하는, 참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래 전에 쏠터 씨와 같이 중국 내륙을 여행하다가 북경에 도착하여 어느 호텔에 같이 묵게 되었는데, 하루 늦게 도착한 저와 만나 저녁을 먹으며 하던 이야기는 지금도 저를 감동시킵니다. 쏠터씨는 중국 내륙을 여행하며 음식이 맞지 않아 매우 고생을 했는데, 배에 탈이 나서 북경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그야말로 일초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화장실이 급했었다합니다. 도착해서 호텔 접수부에 접수를 하려고 서있는 긴 줄 뒤에 서게 되었는데, 저 같으면 맨 앞줄에 다가가서, 저 지금 엄청 급하니 저 먼저 방을 배정해 주고 방 열쇠를 받아 가면 안 될까요? 라고 앞 뒤 가릴 것 없이 소리치겠는데, 워낙 예의 바른 쏠터 씨는 그 긴 줄을 끝까지 다 기다리고 나서 방을 배정 받아 들어갔다는군요. 물론 쏠터 씨는 예정에 없이, 세탁을 맡기는 자기의 입었던 내의, 바지를 정상적인 세탁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많은 시간동안 손수 물세탁을 해야 했다합니다. 아니 그런 상황이면 아무리 줄도 좋고 순서도 좋고 질서도 좋지만 그냥 앞으로 내 달아가서 그 사람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뒷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더 현명한 처사가 아닌가요? 라고 내가 되묻자,

 

" ,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나는 생각하길, 내 앞에 줄 서있는 사람 중에도 나처럼 무지 급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도 나처럼 무척 힘들어하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내가 앞서서 새치기하면 그 사람은 인내에 한계가 와서 바지에 원하지 않는 자국을 남길지 모른다. 더구나 앞에 줄 서있는 사람 중에 숙녀가 그런 상황이면 더 낭패가 아닌가? 그래서 내가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지요.. "

 

   쏠터 씨는 40대 후반에 무슨 일로 청각기능이 서서히 없어져 갔는데 지금은 아주 많이 악화되어 사람과 대화 중에 자기도 모르게 말하는 사람 쪽으로 조금 낫게 들리는 오른쪽 귀를 돌리며 집중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화에는 자기의 오른쪽 손바닥을 펴서 자기 귀 뒤에 나발같이 대고 놓치지 않으려고 더 집중하기도 하지요.

 

   한번은 차기년도 세계 유행을 점검하기 위해 같은 회사소속 디자이너와 뉴욕의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조금은 후미진 골목을 지나가고 있을 때 노상 강도를 만났다 합니다. 그 흑인 강도는 권총을 든 자기 손을 자기 가죽 잠바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일행에게 가만히 다가와 조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합니다. " 죽기 싫으면 돈 내놔 ! " 그러자 같이 걷던 디자이너는 번개같이 뛰기 시작하며 그 자리를 피하는데, 우리의 예의 바른 쏠터 씨는 오른쪽 귀 뒤에 자기 오른쪽 손바닥을 펴서 귀 뒤에 나발같이 대고, 오른 쪽 뺨을 그 강도 쪽으로 가만히 갖다 대고 몹시 미안해하며 말했다합니다.

 

  " Am so sorry! I beg your pardon ?? "

미안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