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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K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인사동에서 (1) 등록일 2016.09.28 04:52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88



K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인사동에서 (1)                    

 

   나 어릴 적 시골 동네에, 일찍 지아비를 보내고 억센 남정네들 틈에서 홀로 사는 부인이 있었다. 그 과부는 남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자기가 혼자서 하는 말버릇이 있었다. “ 저 년, 놈들이 내가 혼자 산다고 깜보는데 ( 업신여긴다는 사투리 ), ! 그렇게는 안 될걸. 내가 누구라고.. 이 낫으로다가 기냥 확, 낯빤대기를..”

 

   염천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 지난 주, 나는 그 과부의 혼잣말을 생각하며, 사물 공연복이 든 큰 바퀴가방을 끌고, 장구가 든 커다란 검정 바이닐 Vinyl 가방을 어깨에 메고 종로 3가 쪽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몹시 붐비는 지하철 문 옆 바닥에 큰 장구를 놓고 내 몸으로 그 장구를 에워싸 보호하니, 승객 모두가 곱지 않은 시선을 한 번씩 던진다. 그들의 무언이 내 뒤통수에 와 꽂힌다. 뭐야, 이거이.. 웬 장구? 이 복잡한 지하철 안에.

 

   나는 그 과부의 혼자 말버릇을 떠올렸다. 내가 고리타분한 사물 장구한다고 깜보는 모양인데, ! 그렇게는 안 될걸. 내가 누구라고. 오늘 나도 우리나라 심장, 서울하고도 한복판 종로 인사동 무대에서 우리 고유, 우리 장구를 한 번 쳐보겠다는데.. 기냥, , 낯빤대기를..

 

   K 시인아젊은 날 오대양 육대주를 무역으로 쏘다니며 온갖 설움 다 겪다가, 어느 날 혜성과 같이 다가온 김덕수 사물놀이를 보고 넋이나가 나도 한 번 배워야겠다라고 작심하고도 20여 년이 더 흐른 지 지 지난 해, 드디어 내 해보고 싶은 장구의 열채와 궁채를 잡았었다. 이게 덩! 이고 이게 딱! 이고 이렇게 하면 덩더쿵! 이고를 안지 석 달이 조금 넘어, 나는 온 세상 가락을 다 배운 양, 대전의 모 호텔 로비에서 장구 솔로 공연을 했다. 이름하여, “ 뛰지 못하는 중증 장애우를 위한 춘포의 장구 솔로 자선공연 ”. 그곳은 100km 정도는 식은 죽 갓 둘러먹기보다 더 쉽게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 정기 총회장이었다. , 석 달 배운 그 우당탕탕! 장구소리로 공연을 하다니. 그것도 지금부터 내 공연을 보고 한 푼 보태달라니.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돈을 주신 그 분들께 그저,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그리고, 천방지축 정말로 웃기는 나의 장구인생은 시작되었다. 낮이나 밤이나 줄기차게 두드렸다.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서도 궁채와 열채를 놓지 않고서 내 다리의 장단지 옆을 장구 궁편, 채편삼아 가락을 익혔다. 그래서 내 오른 다리에는 손바닥 만 한 붉은 열채 타박상 흉이 365일 사그라지질 않았다. 해외출장길 기내에서도 열채, 궁채를 지참, 유럽행 비행시간 내내 내 두 다리를 두드렸다. 그리고 조금씩 공연이라는 이름의 장구 인생이 펼쳐졌다. 대전에서, 포천에서, 하남에서, 충주에서, 양평에서 등 변두리를 돌고 돌아, 올 봄 서울 영등포에서, 그리고 이제 드디어 우리나라의 심장, 종로의 인사동, 남인사 마당 정식 무대에서.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 과부의 기냥, , 낯빤대기를 , 용기만 있으면.

 

   들고 이고 계단을 낑낑대며 오르락, 내리락 지하철에서 나와, 여름 낮 불볕더위에 바퀴 가방의 바퀴가 금방이라도 눌러 붙어버릴 것 같은 도심의 아스팔트를 한참이나 걸어 드디어 인사동 입구에 들어섰다. 일월오봉도. 해와 달 그리고 다섯 산봉우리가 그려진 멋진 벽화 야외무대 공연자 대기소에 장구를 내려놓고, 바퀴가방 안에서 공연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파랑 어깨띠를 두르고 그 위에 노랑 어깨띠를 얹혀 두르고, 두 띠를 눌러주는 빨강 허리띠를 둘러 적청황 삼색띠를 갖췄다. 불볕더위로 땀이 숭글숭글 맺힌 머리 위에 청색 두건을 올려 써 오늘의 무대의상을 다 갖췄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것 없는 내 어릴 적 그 시골 과부의 기냥 확, 낯빤대기 명언이 8월 하늘 뜨거운 태양 속에서 나에게 손짓을 한다. 무대 공포증, 낯선 이들에 대한 소심증, 자기 것, 자기 민족의 혼을 업신여기는 모자란 사람들에 대해 큰 용기를 가지고 대적해 싸우라고 큰 미소로 손짓을 해준다.

 

   이윽고 프로그램의 두 번째, 13명 안대미 맞춤 사물장구 우리 차례가 되자 나도 연주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세 줄로 줄을 맞춰 왼손으로 장구 조롱목을 잡아 허리에 두르고 미투리 신발로 조심스럽게 무대 위에 올라가 좌정을 하고 상장구의 첫 가락 신호를 기다렸다.

 

... 이어집니다

 

 

춘포

박복진

( faab 마라톤화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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