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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달림이 , 조폭 앞에 서다 ( 2 ) 등록일 2016.09.28 04:47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57




달림이 , 조폭 앞에 서다 ( 2 )

 

   아침 공원길에 개를 풀어놓아서 달리는 어여쁜 부인에게 겁을 잔뜩 먹게 하고, 그 부인 달림이로 하여금 옴쭉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개의 자비만을 바라보게 만들며, 그 점을 시정해달라는 또 다른 선량한 시민의 요청을 묵살하고 욕설을 퍼붓는, 모가지가 스페인 투우장에서 본 황소보다 더 두꺼운 깍두기 머리모양의 40대 후반 조폭나부랭이는 분명 악령의 화신이었다. 나는 잡고 있었던 내 자전거를 그냥 내팽개치듯 자빠뜨리고 그와의 일대 혼전으로 치고 박고 둘이서 같이 땅바닥을 나뒹굴어서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마음 약한 여자구경꾼으로부터 으악! 하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게 하는 전투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그러나,..

 

   잠깐 떠올려본 나의 전투장면은 정말 아쉽게도 비참한 나의 패배 모습만 재생, 확대되어질 뿐, 도무지 내가 바라는 나의 통쾌한 승리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싸움에서 나는 절대로 불리할 것이다. 우선 나는 나의 집에서 장장 12Km로 나의 원군이 이곳에 도달하기까지는 너무 멀었다. 또 집에 있는 아내에게 연락할 길도 없다. 내가 나와 뜻이 맞는 선량한 행인을 믿고 대든 여기는, 정의로운 법의 집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허허벌판 한강둔치 한 가운데다.

 

   그의 덩치는, 키는 작지만 우람했다. 몇 십 년을 싸움판에서 단련시켰으리라. 가냘픈 나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를 반복해 보지만 나는 내 주먹의 형편없는 파괴력을 잘 안다. 등이 고부라진 샘비 과자 하나도 제대로 못 깰 내 주먹의 가소로운 파괴력을 잘 안다. 나는 그가 언제 폭력을 사용하게 될지 조마 조마하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만 보고 있다. 나의 오늘 운수는 전적으로 그의 자비에 달렸다. 그는 아직도 계속해서 욕설을 퍼붓고 있다. 그는 화가 나면 이를 가는 습관이 있나보다. 아랫니가 단칼로 자른 두부 옆선처럼 단 한군데도 모남이 없이 반듯하게 닳아 있었다. 그에게도 쥐새끼 발톱만큼의 양심은 있는 걸까? 혼자서 무지막지한 욕을 퍼붓고 있으면서도 나와의 직접적인 시선은 피하고 있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자기 발끝 서너 발자국 바로 앞 땅을 더듬거리며 욕설은 계속된다. " , 좆도 쯔벌! 앙 그러냐구! 으엉? 쯔벌, 왜 자꾸 나를 쯔벌, 별 좆겉이 신경 건드리냐구! 으엉? , 나사 개를 끌고 오던 니기미 쯔벌! 돼지 새끼를 끌고 오던.. ? 좆겉이, 개 목줄을 메고 댕기라구? 별 좆겉은 쌕끼덜, 기냥 전부 확 긁어 버리까, 오늘?"

 

   마지막으로 위의 욕설이 끝나자 그는 자기 앞 이빨 사이로 자기 침을 찍! 하고 뱉더니 이제 처음으로 나를 빤히 올려 바라본다. 말은 이제 다 끝난 모양이다. 이제 나의 반응 차례다. 나의 반응 여하에 따라 이제 피비린내 나는 전투냐? 아니면 가련한 항복이냐? 가 결정될 판국이다. 나는 그가 먼저 주먹을 날릴 그 순간이 당도될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순간 직전까지 갔다고 느낀 순간, 전투의 연기를 선택했다. 그의 무지막지한 욕설에 질리고, 그의 험악하니 굵은 모가지에 질리고, 나의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지리적 불리함에 질리어 용감하게 그와의 기약 없는 전투 연기를 선택하였다. 포기나 도망은 아니라고 홀로 다독이며 연기를 택했다. 나는 가능한 그의 심기를 빨리 누그러뜨리어, 불필요한 오해로써 뒤돌아서는 나를 공격하지 않게, 큰 제스처로 얼른 자전거의 핸들을 돌렸다. 감히 대들 의사가 없음을 큰 몸짓으로 나타내었다. 그 조폭께서 오해하시지 않게 또박또박, 분명한 발음으로 삼가 말씀드렸다. " , 그래요? 자알 알았습니다. "

 

   참으로 많은 것이 함축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한마디였다. 그리고 힘없이 뒤 돌아서서 두 세 걸음을 자전거를 끌며 걷다가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곤두 서 있는 오른 쪽 페달을 뒤로 헛돌리어 발판을 발밑에 고정시키고, 앞으로 밀고 나가며 자전거 안장에 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자전거는 무겁게, 힘들게 앞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나는 짓이겨진 자존심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일방적인 싸움을 구경하던 아침 산책길의 서너 명의 구경꾼들 중,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불같은 내 정의감은 결국 만화 속 주인공의 것이지 결코 내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고 또 느끼었다. 주먹이 받쳐주지 못하는 정의감은, 차라리 벙어리에게 건네진 새마을 마이크보다도 더 못함을 왜 나는 진즉 깨닫지 못했을까? 나의 극심한 창피감으로 나의 고개는 점차, 점차 더 숙여져만 가서, 자전거 타는 내 모습은 전주 곰티재 비탈길을 올라가는 싸이클 선수의 막바지 고개 모습 같았다. ,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 지독한 자멸감. 나의 자전거는 느려졌다.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홧병이 도져 단 100m 도 더 못 갈 것 같았다. 자전거를 멈췄다.

 

   길 바로 옆에 조그만 방죽이 있어 물오리 20여 마리가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자전거 본체 뼈대를 옆구리에 걸치고 서서 나는 물끄러미 이 물오리들을 바라보았다. 부리로 끊임없이 물속에 자맥질하고, 다시 날개 밑을 헤집고, 그리고 또 자맥질하고 날개 밑을 헤집고... 얼마를 이렇게 넋 놓고 바라보았을까? 동물들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을까?

 

   그러자 이상했다. 내 몸이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하더니 주체할 수 없는 그 어떤 전투욕이 살아났다. 아까 맨 처음, 그 부인의 봉변 장면을 목격하고 물불 안 가리게 용솟음쳤던 그 뜨겁디, 뜨거운 그 정의감, 바로 그 기운이다. 그렇다! 나는 불의를 보고 비겁하게 고개를 돌리기보다는 그 불의의 한 가운데로 뛰어 들어야 했다. 알량한 자존심이지만 죽기 일보 직전까지는 지켜야 할 엄숙한 나의 책무, 나 스스로의 자존을 위해 마땅한 행동이 있어야 했다. 가자! 다시 가자!! 다시 그 조폭 앞으로 !!

 

   진군의 나팔 소리는 내 귀청을 사정없이 때리고, 황금빛 화랑 무공 훈장이 이제 막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는 동녘 하늘 위에서 잠깐 동안의 겁쟁이 나를 질책한다. 나는 이제 오늘 그와의 일전을 벌리겠다. " 그래 오늘은 싸우기 매우 좋은 날이다" 라는 늙은 인디언 추장의 명언도 생각났다. 코피가 터지고, 다리 몽생이가 부러져도 오늘 한번은 붙어야 한다.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는 달림이가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 줘야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선의의 달림이는 주로의 개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내 비록 터진 쌍 코피를 안고 아내의 치마폭에서 파스 찜질로 턱 쪼가리를 치료받으며 손바닥으로 등짝을 후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한판 붙어야 한다. 어쩌면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뜯어말릴 군중이 있어 내 명예를 성공적으로 지키고, 부상도 가벼운 선에서 마무리될지 모른다. 가자! 악이 있는 곳으로! 진격이다 !!

 

   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자전거의 핸들이 좌우로 요동을 친다. 그 조폭이 갔던 방향으로 급히 자전거를 몰았다. 흙길 때문인지 자전거의 타이어가 흙을 패이게 만들며 자꾸 굵은 바퀴자국을 만든다. 가자! 정의의 달림이여!! 나는 이미 냄비 뚜껑을 머리에 쓰고 솥뚜껑으로 방패를 든 대한민국의 동키호테이었다. 나는 복수의 칼을 든 로마의 검투사보다도 더 이글거리는 안경 낀 두 눈으로 내 적군의 행방을 찾아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코에서는 두꺼운 콧바람이 핑! ! 새어나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늘의 도움이신지는 몰라도, 방죽에서 놀고 있는 물오리를 바라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을텐데, 나의 적, 40대 후반의 그 조폭은 이미 공원을 떠나고 그 자리에 없었다. 허전했다. 그렇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정의감으로 뭉쳐진 나의 전투욕은 쉬이 사그라지질 않았다. 나에게 등을 돌리고 비겁하게 꽁무니를 내뺀 그 조폭, 그는 정말 오늘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꺼다. 이제 사라진 악, 현장에 없는 조폭을 두고 빈주먹을 휘두르는 그런 바보짓을 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반대쪽으로 자전거를 내달려 한강 관리사업소라고 씌여진 콘테이너 초소에 들이닥쳐서 난폭하게 문을 화들짝 열어 제꼈다. 비겁하게 꽁무니를 내빼서 악에 대한 나의 응징를 교묘히 피해간 그 조폭을 대신해서, 법의 집행을 위임받았으나, 그 집행을 유기한 그 공원 관리사업소 직원이라도 나의 이 끓어오르는 분노의 화살을 대신 받아 줘야했다. 그 또한 간접적 범인이다. 간이 콘테이너 초소 문 앞에 선 애꿎은 관리사업소 직원에게 나의 호통이 쏟아진다. 그는 지난 밤 근무로 새벽에 잠깐 눈 붙이다가 얼떨결에 깨었나보다. 바지의 앞단추도 다 꿰지 않았고 혁대 고리도 맞물려 있지 않았다.

 

" 아니, 이 좋은 공원에 새벽에 개 끌고 와서, 개 줄도 없이 풀어놓아 지나다니는

시민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이 공원관리소에서는 무얼 하고 있소? 말해 보시오! 공원에 개를 끌고 오게 되어 있소? 끌고 오게 돼 있다면, 개 줄은 묶게 돼 있소? 풀게 돼 있소? 지금, 시방 당신네들 근무를 하는게요? 노는게요? "

 

   " ! 죄송합니다. 지금 어딩가요? 지금 바로 가서 시정시킬께요!

개는 안 데리꼬 오게 돼있꼬, 데꼬 와도 개끄나풀로 묶어야 되는디 그랬네요, .. "

 

  그 남자는 여기에 취직 된지 얼마 안 되었고, 까다로운 시민의 항의에 어떤 요령으로 대처해서 게시판에 글 안 올라오게 하는지 아직 교육을 받지 못한 양, 필요 이상으로 절절 매었다. 그도 나처럼 약자이었다. " , 이 사람하고는! 그 놈 버얼써 도망갔소. 내가 한 번 혼줄 내 주려고 했는데 버얼써 도망갔소. 공중도덕을 모르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일삼는 그 파렴치, 사회의 좀 벌레 같은 그 인간, 내가 달려가니 버얼써 도망갔소! 뒤통수가 허옇게 드러난 깍두기 머리에다가, 모가지가 떡집 여편네 허벅지 만하게 굵고, 화날 때 앞 이를 가는 그 놈 버얼써 도망갔소! 그 놈 다시 나타나면 이르시오! 한 번만 더 개를 풀어놓아 달리는 시민에게 욕지거리하며 대들면 내 그냥 안 놔 둘거라고.. " 그리고 나서 나는, 내가 오늘 새벽 이곳에서 당한 수모를 알 리 없는, 새벽 선잠에서 깨어 창졸간에 호통을 듣고 있는 그 관리소 직원에게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만 보태고 다시 집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 그나저나, 그 바지 앞단추나 잠그시오. 어서! 저도 궁금한지 아까부터 나와 있구만. "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