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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달림이, 조폭 앞에 서다 등록일 2016.09.28 04:46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11





달림이, 조폭 앞에 서다                                         

 

   발목이 많이 아프다. 이 아픔이 언제부터 계속되었는지 나는 안다. 의사의 진단도

그렇고, 내 자신 뛰고 나서의 자가진단도 그렇다. 발목은 이제 아픈 증세를 넘어 매 순간 통증으로 나도 모르게 발이 옴츠러드는, 그러면서 입으로는 작은 비명이 저절로 새어나오는 중증으로 접어들었다. 어느 순간 나에게 달리기는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 될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 달리기를 계속하는 우둔함을 고집한다. 나는 느끼고 있다. 매일아침의 이 지독한 달리기중독은, 어느 날인가는 갑자기 정지될 것이다. 현관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신발을 신던 나는 오늘의 뛰기를 잠시 접기로 한다. 한 달 정도만 쉬어보자. 좀 차도가 있을꺼야!

 

   달리기대신 자전거를 타고서 새벽 한강둔치로 나갔다. 고덕에서 하남 쪽으로의 길, 미사리, 팔당 쪽으로 나아갔다. 내가 혼자서 명명한, 남미 안데스 음악의 제목에서 따온 이름, 에스퍼란자스 길이다. 한강둔치 아래 물오리, 까치, 황새, 물병아리들이 나의 속도에 놀라 화들짝 비상을 한다. 내가 달리기로 이곳을 지나칠 때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행동들이어서 나는 조금 미안하다. 밝아오는 새 아침의 순수함에 취하고, 붉은 기운이 구름과 어우러진 동녘의 미색에 취하고, 적당히 빠른 자전거의 속도로 내 두 뺨을 스치는 상쾌한 아침공기에 취한다. 내가 가는 한강둔치 길에는 홀로 산책하는 사람, 두 셋이서 나란히 걸으며 담소하는 사람, 조용, 조용 뛰어가는 사람, 모두가 아름다운 새벽을 여는 한 폭의 그림이다.

 

   바로 이 때, 앞서서 산책하는 시민들 사이로 뭔가 내 정의감에 불을 지피는 광경이 목격됐다. 아장아장 우아한 자세로 달리기를 하던 예쁜 부인이 갑자기 달리기를 멈추고서 뱀을 본 여치모양 화들짝 놀래 달리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부인 옆에 큰 개 한 마리가 서성이며, 다시 뛰어 달리면 쫒아가서 콱! 한 번 물어 보겠다는 듯, 부인의 눈을 똑바로 맞추고 서있다. 그 예쁜 부인은 갈 수도, 아니 갈 수도 없이 주위의 개 임자를 찾아 어떻게 이 개를 제지해 봐 달라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개 뒤에는 그 개 주인이 분명한 40대 후반의 남자가 아무런 제지 없이 자기 갈 길만 가고 있다. 나의 정의감이 뇌신경 계통의 절차 없이 곧바로 언어신경으로 뻗쳤다. 여기 내 앞에서 숙녀가 봉변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 개주인은 잠옷처럼 생긴 하얀 츄리닝 하의를 배꼽 위의 위까지 올려 입었다. 그 개 주인이 조폭 일 것 이라는 나의 예상을 뒷받침 해주는 결정적인 점은, 그 남자는 머리 거의 꼭대기 위까지 기계로 밀어 깍은, 뒤통수가 허옇게 드러난 깍두기 머리 모양이고, 또 무엇보다도 그의 모가지는 너무 굵었다. 아마 조폭 우두머리의 똘마니로 몇 십 년 수행하다 모가지가 너무 굵어져서 탈락하지 않았나 생각되어질 정도로 그의 목은 정말 굵었다. 뒤통수에 붙은 머리칼 가마에서부터 목 아래 끝까지 거의 같은 굵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벌떡 일어선 나의 정의감을 죽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나는 우선 자전거를 탄 채로 지나가면서 한마디만을 던지고 반응을 보기로 하였다. 그를 자극해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하고 싶은 마음은 가을 날 소털만큼도 없음을 암시하는, 단지 지나가는 마음착한 순수 행인임을 강조하는 억양으로,

 

   " 공원에서는 개 좀 묶어 주세요오-, 이예 ? "

 

   그러나 이건 내가 오늘 당하는, 나의 인격이 짓밟히는 서막이었음을 깨닫는데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냥 지나치려는 나에게 그 조폭 깍두기는 용서가 없었다. 나는 그의 끈끈이주걱에 걸려든 먹기 좋은, 숫놈 모기 한 마리에 불과했다. 무자비한 육두문자가 거침없이 나의 뒤통수에 내리 쏟아져 꽂혔다. 그의 육두문자는 말의 뜻을 몰라도, 그 억양만으로도 소름이 끼치었다. 아주 빠른 순간, 나는 알아차리었다. ! 오늘 정말 일진이 안 좋구나! 이제 사건의 전개가 어떻게 돌아가게 될까? 그 조폭의 욕설은 멈춤을 몰랐다. 그의 말을, 이것도 말이라고 해야 할지?, 필터를 계속 갈며 성능 좋은 정수기로 정화해 본다면, 대충 이런 뜻의 표현이었다. 이 민주주의 꽃 대한민국에서, 내가 일찍 일어나 상쾌한 공기 좀 마시자고 모처럼 산책을 나왔는데, 내가 개를 끌고 오던, 돼지를 끌고 오던 나의 자유가 아닌가? 내가 끌고 온 게 개든지 돼지든지, 그 목에 끈을 묶는 것도 내 자유요, 불알에 묶는 것도 내 자유가 아닌가? 묶던지 꼬실리든지 제발 나 좀 그냥 놔둬라! 좋은 소리도 한 두 번, 이제 신물이 난다! 공중도덕, 예의, 남에 대한 배려, 도대체 이런 것들은 똑똑하고 유식한 너희 놈들 싫건 쳐 발려먹고, 나는 내 식으로 이렇게 살련다. 해라, 하지 마라, 이제 신물이 나서 살 수 없다. 이 좋은 민주주의, 대한민국 우리나라에서 나 좀 편하게 살자! 자알 알아들었느냐, 대한민국의 똑똑한 좆겉은 놈들아!

 

   아무리 점잖은 나지만 이대로 그냥 지나치면 이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자전거를 세웠다. 아니 그 상황이 나의 자전거를 세우게 만들었다. 왼발은 땅을 밟고, 오른발은 그냥 자전거 한쪽 페달에 올려놓은 채로 뒤를 돌아보자 그 깍두기가 서두름 없이 두꺼운 모가지를 땡겨 다가왔다. 나는 즉각 상황이 매우 안 좋음을 본능적으로 느끼었다. 그리고 내 얼굴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극소량의 적개심이라도 털어 내려고 멈췄을 때의 굳은 표정을 연하고 말랑말랑하게 만들며 최대한 유연해지려 노력하였다. 그런 나의 노력은 이 깍두기에게 전혀 반영이 안 된 듯, 이 깍두기의 욕설은 다시 곱으로 계속되었다, 정말로 지독한 욕설이었다. 그러나 다행이기에도 그는 아직 폭력을 쓸 의향을 내보이지 않았고, 욕설의 대상도 나를 직접적으로 겨냥하지는 않았다. 나도 아직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적어도 분위기상으로는 아직 나의 인내심은 그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금간 자존심만 들먹이지 않으면 조금은 더 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인내심에 그가 스스로 감정이 더 격해져서 다음 말을 뱉기 전 까지는...

.

   " 아니, 쓰벌 좆 겉애서, 정말. 쓰벌 아침부터 나한테 시방 쓰벌 뭐라고 하는 거야, 당신? 당신 쓰벌 지금 뭐라고 했어? , 쓰벌, 개를 묶으라고? 아니, 쓰벌 못 묶겠다면? "

 

   나는 이미 산목숨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아니, 이 정도의 근처까지 왔다면 아니, 여기까지 오기 벌써 전에 나는 이미 죽어 있어야했다. 살아서 이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죽기보다 골백번 더 비참했다. , 나는 이제 사생결단으로 나의 앞에 선 상대와 일전을 붙어야 했다. 그의 두터운 목을 비틀어 그의 입에서 잘못했다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뱉어내게 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모가지가 혐오스럽게 두터운 이 퇴물 조폭에게 나의 도덕률을 이식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스러웠지만 지금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했다. 양심! 행동하는 양심! 나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뇌에서는 전투준비! 전투대형으로 벌려! 의 구호가 말초신경까지 이미 내려와 있었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진 내 피는 이미 정상체온이 아니었다. 입술이 양쪽 끝에서부터 바삭바삭 말라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계속...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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