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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권력의 이동 등록일 2016.09.28 04:37
글쓴이 박복진 조회 1810





권력의 이동

 

   나의 아내는 나보다 5살이 아래입니다. 나이가 모든 서열의 제일 첫 번째인 우리 전통사회에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결혼 남녀 나이 차이가 5살 정도가 가장 좋다, 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결혼 후 남편이 가정사 제반 권력을 조건 없이 순수 위임받는 가장 좋은 나이 차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결혼 직후부터 저는 아내를, 영희야! 라고 거침없이 불렀고, 아내도 군말 없이, ! 라고 조신하게 대답했습니다. 결혼 후 거의 25여 년 동안 이 권력의 추는 제 쪽으로 고정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추가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영희야 ! ” 라고 부르면 그냥 네! 가 아니고, ? 라고 물음표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몇 해 전부터는, “ , , ?? ” 라고 왜 앞뒤로 아 와 또 가 어디서 날아와 붙기 시작했습니다. 50살 후반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내 얼굴에서 제일 반반한 눈썹 옆에 지눈이 콩 부스러기 같은 잡티가 턱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이 말입니다. 거참, 천지 사방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지럼병이 지랄병 된다고 그 때부터 다시 잡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됩니다.

 

   얼마 전에 치른 외아들 혼사 준비 동안에는 박 씨 가문 이 집 가장인 저의 위상이 어디까지 추락했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혼사 준비를 위해 차를 몰고 어디를 가면, 아들이 운전하고, 아내가 그 옆에 앉고 저는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좌정되었습니다. 즉 이 인륜지대사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는 화자 목록에 제가 누락된 것입니다. 앞자리에서 둘이 하는 대화에 제가 좀 끼어들어 제 의견을 피력할라치면, 아내는 뒤를 보며 소리치더이다. “ , 좀 시끄러워요,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데. ”. 이 말뜻은, 제 목을 타고 나오는 소리는 실재 값이 없는 그냥 동물의 소리일 뿐, 인간의 뇌에서 나오는 생각이 아니라는 거지요. 소리는 나지만 무시해도 될 그런 잡음이라는 거지요. 뒷좌석 승객 자리에 앉아있어 내는 소리지만 차의 트렁크에서 나는 소리만도 못하다는 것이지요. 만일, 차 몰고 가다가 트렁크에서 무슨 잡소리가 나면 차를 멈추고 트렁크 문을 열어 그 차 소리에 대한 응대를 할 텐데 나는 그만도 못하다는 것이지요. , 그럴 만도 합니다. 나는 이 바쁜 세상에 남들 초대해서 폐 끼치는 예식장 사용하지 말고, 제발 덕분 간절히 구하고 바라건대 우리 집 정원 잔디 마당에 프랑스 대통령 취임식장처럼 청, , 백 예쁘게 휘장치고 우리 식구들끼리만 예식 올리자고 해서, 계란 후라이 굽던 아내의 달궈진 후라이팬이 날아올 뻔했었지요. “ 당신, 지금 어느 위성에서 사는 인간이야요? ”

 

   이렇게 완전 여자 쪽으로 이동되어 군림해오던 우리 집 권력의 추가 요즈음 들어 다시 조금씩 내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인 제 쪽으로 다시 건너오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의 혼사를 치루어 분가를 시키고 우리 부부는 소원대로 이곳 양평에 지어놓았던 전원주택에서 본격적인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시골 삶에 강한 로망이 있었던 제 꿈이 현실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평생을 두고 하는 사업인 faab 마라톤화 제조, 판매의 본사 사무실 건물로 핀란드산 통나무집을 짓고, 옆에 창고를 지어 물류를 해결하고 작지만 아담한 살림집도 같이 지어 본격적인 독립가옥 전원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 어쩌겠습니까? 독립가옥. 밤엔 무섭습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입니다. 남자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시골 집 할 일들이 얼마나 많으며 하는 일들은 또 얼마나 거칠고 야성적입니까. 대구 도회지에서 낳아 자란 아내의 눈에 제가 하는 시골 일들은 모두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뭐든지 말씀만 하시지요. 삽질해서 김장독 묻는 일, 그 위에 벼 짚단을 엮어 멋들어지게 보온 덮개 하는 일, 마당 끝에 굵은 돌과 벽돌 몇 개로 시멘트 발라 가마솥 걸어 무청 시래기 삶고 엮어내는 일, 단풍나무 정원수 밑동에 새끼 꼰 짚으로 완벽하게 월동준비 해놓는 일, , , 네 사진발 잘 받습니다. 작품이지요. 아내는 이것들을 사진 찍어 서울 사는 처제들에게 카톡으로 보냅니다. 이렇게 밑글을 첨가해서 보냅니다. “ 형부 작품, .. .. ”. 그러면 나는 허드레 장갑을 벗으며 작업복 걸친 그대로 데크에 철퍼덕! 거칠게 앉으며, 여성에서 남성으로 미세하게 이동 중인 권력의 추를 재확인코자 필요이상으로, 그동안 반대쪽으로 가서 갖은 아양 떨던 얄미운 권력의 추를 다시 끌어당기려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이곳 양평으로 이사 와서, 아내로 하여금 남성의 우월함을 다시 깨닫게 해준 독립가옥 전원생활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앞세우며 소리를 지릅니다. “ 영희야! 냉장고 막걸리 한 통 내와 !”. 그러면 아내는 ”, ?” 그리고 또 그동안 분간 못 할 어디서 날아와 말끝에 대롱대롱 달라붙곤 했던 를 쏙 뺀 조신한 대답을 합니다.

 

  “ , 네에 !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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