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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한 말씀 올려봅니다. 등록일 2016.09.30 04:35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50




한 말씀 올려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중국 상해에 저의 사무실 상해 지사를 내고 현지에 얼마간 장기 체류를 할 때입니다.

한국에서 쓰던 책, 걸상과 컴퓨터, 서류 뭉치 등을 콘테이너에 실어 보내놓고 짐이 도착 할 때를 맞춰

항공편으로 현지에 도착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짐을 실은 콘테이너가 한 항 차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저의 짐이 예정보다 약 보름 정도 늦게 그곳 지사 사무실에 도착되었습니다. 유럽의 거래처와 업무적인

일은 현지의 중국 컴퓨터를 이용하여 매일 매일 영어로 해결 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고국에 있는 저의

아내와의 교신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안부를 주고받아야 할 컴퓨터에 한글 자판이 없어 안부나 시시콜콜한

집안 일 까지도 모두 영어 자판을 이용, 영어로 해야만 했었습니다. 현지 사정상 국제 전화도 용이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극히 외람되지만,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쓰는데 비교적 큰 불편이 없는 저지만, 실재 아내와의

안부를 묻는 글에 영어를 쓰자니 얼마나 어색 하든지요? , 저의 정확한 감정을 나타내는데 얼마나

어렵든지요? 이런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예를 들자면, " 영희야, 내가 집 떠날 때 고뿔끼가

있어 코가 밍밍하고 머리가 욱신, 욱신 쑤신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어찌 괜찮은지? 나 없다고 때

거르지 말고 혼자서라도 제때, 제때 밥 꼭꼭 씹어 잘 챙겨먹어야 할텐데, 그렇게 하고 있는지 ".

이런 글을 보내야만 해서, 이런 뜻의 내외간 편지를 영어로 바꿔 보내야만했으니, 제가 영국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자란 현지인이 아닌 바에야, 쉐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렛포드 어폰 에이본 옆

동네에서 나고 자란 바가 아닌 바에야 어찌 한글 그 뜻을 정확히 영역해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영어로 보낸 그 글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삭막하고 얼마나 웃겼겠습니까? 저의 전자서신을 매일 받고

대충 감은 잡고 마음이야 놓였겠지만, 부부간의 애틋한 마음 속 뜻을 다 표현하기란 애초부터 글렀었지요.

그래도 어쩌다가 현지의 사정으로 전기가 나간다거나 전화가 불통이거나 하는 이유로 전자서신이

하루라도 없을 라 치면, 아내로부터는 소식이 없어 무척 걱정했다는 글이 득달같이 보내어지곤 했지요.

 

   그러다가 저의 컴퓨터가 실린 콘테이너가 도착되어 저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제일 먼저 컴퓨터 포장을

뜯고 이를 설치해서 아내와 한글로 교신을 시작하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그 때 한글로 된

전자서신을 받은 아내로부터의 첫 반응은, " 여보! 보내 준 메일 잘 받았어요. ! 이 고마운 우리 한글!

우리 글, 우리말이 이렇게 좋은 줄 정말 몰랐어요.. " 이었습니다. 제가 장황하게 왜 이런 저의 신변잡기를

끄집어 내느냐면요, 요즈음 우리 젊은 세대들의 우리 한글 파괴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축하를 추카라고 쓰는 게 거의 굳어 가는 것 같고요, “ 많이 드세요 는 당연히 마니 마니 드세요

라고 일반화되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제가 한글 학자도 아니고, 언어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니

가타부타 드릴 말씀은 없지만 정말 한 번쯤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아마추어 마라토너로서

마라톤을 하니, 특히 마라톤 용어에 관해 입이 딸싹딸싹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완주선이라고 다들

부르면 될 것을 굳이 피니시 라인이니, 휘니시 라인이니 라고 고집하고, 출발선은 촌스럽고 스타트

라인은 더 교양미가 넘치는지요? LSD ( Long Slow Distance ) 는 품위 있고, 길게 오래 달리기 해서

예를 들면 " 길오달 " 하면 어디 발모가지라도 부러지는지요? " 펀런 (Fun Run ) " 하면 고수 같고

 " 즐겁게 달리기" 해서 " 즐달 "하면 님의 체면에 분뇨가 뿌려져 기록 단축에 걸림돌이라도 되는지요?

누가 먼저 우리말로 많이 부르면 우리 눈, 귀에 익숙해져 편리하게 되는 법, 그런 노력들은 처음부터하지

않기로 작당을 한 것 같아 매우 슬퍼집니다. 먼 훗날, 우리의 말과 글이 없어져 우리 혼도 없어질까 봐

걱정하는 보통 평범한 한 시민으로서 그냥 한 말씀 올려본 것입니다. , 별 것 아닙니다. 다 써놓고 보니,

아내가 저에게 하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아침 집 나갈 때 매번 들려주는 훈목삼조, 제 일 조 : 이제 당신은 나이 들었으니 어디 가면 밥 굶지

말고 제 때 제 때 밥 챙겨 드세요. 제 이 조 : 당신은 이제 나이 들었으니 어디 가서 당신과 아무

상관없는 소리해서 젊은 사람들로부터 욕먹지 마세오. 제 삼 조 : 당신은 이제 나이 들었으니 어디

가면 어둡기 전에 일찍, 일찍 집 찾아 잘 들어오세요. ". 이것은 제 이 조에 해당 되는 것인가요? !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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