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수필



Home > Introduction > 마라톤수필

마라톤수필

제목 [기본] 그냥 그대로 계세요 등록일 2016.09.30 04:29
글쓴이 박복진 조회 1943

그냥 그대로 계셔도 됩니다.

 

보던 서류들을 덮고 약속장소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집 앞에 차를 세워, 대문 없이

사각 기둥만 있는 연립주택 1층에서 날 기다리던 그 분을 보았습니다. 아마 식구 중 한 분이

이 분을 바퀴의자 ( 휠체어 )에 앉혀놓고 자기는 안에 들어가 있는 모양입니다. 차의 뒷문을

열고, 그 바퀴의자를 밀어 차 옆에 대고 그 분을 차에 태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중증

장애를 앓고 계시는 이 분을 나 혼자서 차에 태우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안에 들어가 버리고 나 혼자에게 이 일을 맡긴 이 분의 보호자 혹은 식구 분이 조금은

원망스러웠습니다. 손가락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염천더위에 나는 이 분을 붙잡고

씨름을 합니다. 형편없이 구겨진 사람 몸뚱이를 더 이상 구겨지지 않게, 더 이상 펴지지 않게,

그러면서도 좁은 차 문을 통해 차의 뒷좌석에 좌정시키는 일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금방 등에 땀이 흐름을 느낍니다. 이 분을 안고 중심을 잡아 허리를 펼라치면 바퀴의자가

자꾸만 굴러가서, 한 발을 바퀴 밑에 밀어 넣고, 두 손으로 이 분의 허리를 잡아 균형을

잡아보려 하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소쿠리에 착 달라붙은 대왕문어를 한 손으로 떼어 옮기는

작업보다 더 어렵습니다. 한쪽을 잡으면 다른 한 쪽이 흐트러지고, 이 쪽을 잡으면 다른 쪽이

축 쳐지고.. 이렇게 한참을 씨름한 끝에 겨우, 겨우 이 분을 내 차의 뒷좌석에 좌정시켜드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말이 좌정이지 이 분의 지금 모습을 보면, 등뼈없는 연체동물이 뜰채 속에

들어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 형국입니다. 세상에나, 사람이 이렇게도 구겨지는구나...

 

  이 일도 처음에는 겁나서 하지 못했으나 몇 번 하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해집니다. 이 분은

중증 장애우이시고 나는 그런 장애우가 이동을 원할시 내 차량을 이용해서 그 분의 이동을 위해 무료봉사하는 자원봉사자입니다.

 

   이 분의 승차가 이루어지고, 안전띠를 그 분의 허리에 두른 다음, 바퀴의자를 접어 차 뒤

화물함에 싣고, 그리고 내 자리 운전석으로 가 앉았습니다. 말이 안전띠지 이건 장날에

둥그런 호박 세 덩이를 자전거 짐 받침대에 묶으시고 솜리장 가시던 우리 아버지 짐 묶기보다

더 어설퍼 보입니다. 흘러내리는 땀이 눈 속으로 들어가 눈이 많이 따가워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고 차를 발진시키며 이 분에게 말을 겁니다.

 

 

   “ 아까 전화 받았지요? 네 제가 박복진입니다. 잠실에서 근무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천호동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덥지요? 제가 아직 서툴러서 아까 차에

태워드릴 때 불편 하셨을텐데 죄송합니다. 어디 더 불편하신 데는 없어요? 음악 괜찮으시면

틀어드릴까요? 저는 사물을 하는데 우리 국악 괜찮으세요?” 그러면서 나는 차량의 음악장치를

틀어놨고, 곧이어 장구 네 대가 펼치는 잔잔한 다스름 소리가 차 안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이 분의 반응을 보려고 차내 후사경을 연신 바라봅니다. 이 분의 자세가 몹시 불안합니다.

얼굴과 팔, 다리 그리고 몸뚱이 위치가 마치 땔감 장작더미가 무너져 흐트러진 형국입니다.

구정물의 호박씨처럼 제 각각입니다. 참 안됐습니다. 그렇게 한 참을 가는데 이 분이 어렵게

말을 합니다. “ 아이,..... ” 그러자 저는 바라보던 차내 후사경에서 얼른 눈을 떼어 목을 돌려

뒤 그 분을 보며, “ 아이고. 자세가 많이 불편하시지요? 죄송합니다. 잘 앉혀드려야 했는데..

그냥 가기가 많이 어려우세요? 다시 앉혀드릴까요?” 그러자 그 분이 또 말을 합니다.

아이.....”.

 

 

   이 분은 약 이 삼 분 간격으로 아이, 를 해댑니다. 그럴 때 마다 저는 정말 좌불안석

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를 세우고 이 분의 자세를 다시 잡아드린다 해도 지금의 저 자세보다

더 잘 잡아드리는 보장이 없고, 이미 땀이 범벅이 된 내 옷가지는 다시 사무실로 가서 근무하는

데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 , 죄송해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이따가 다시 집에 오실 때 모실 봉사자 분은 정해졌나요? 선생님 귀가 때는 제가 시간이

안 되어, 죄송합니다.” 라고 화제를 돌려봅니다만 이 분은 또 이 말을 반복합니다. 돌아간 입을

떼어 말을 시도하는 것도 엄청 힘이 드는 것 같은데 자꾸자꾸 이 말을 해대니 제가 죽을 맛입니다.

이 염천 더위에 봉사한다고 나서서 육두문자를 들어야하는 제 신세가 참 민망했습니다. “ 아이,

..” 라니. 조금 참아주시면 안될까? 장안동에서 천호동이면 20 - 30 분 거리인데.. 자세가 조금

불안정해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분은 돌아간 입을 어렵게 떼며, 얼굴색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온 힘을 다해 하시겠다는 말씀이 겨우, “ 아이, . ” ? “ 아이, 씨냐고?”.

차라리 애기 씨 같으면 식구 하나 늘고 구청에서 주는 출산 장려금이나 받지..

 

 

   이렇게 이 분은 2-3 분 걸러 육두문자 앞대가리를 계속 토해내고, 나는 차내 후사경을 통해

힐끗힐끗 이 장면을 바라보고며 들어야하고, 김덕수 사물놀이 CD는 그러거나 말거나 제 갈 길로

치달아, 고조된 다스름이 막판을 치고 올라 장구의 열채와 궁채 소리는, 막 진흙구덩이에서

나와 포장도로로 재 진입한 타이어에서 떨어져 나가는 진흙부스러기 소리처럼 요란하게

따따따따, 팔월 염천 더위는 차내 공냉장치와 한바탕 네가 죽느냐, 내가 사느냐 사생결단

씨름 중이고, 하이고야!

 

 

   요상한 인연의 우리 셋, 장애우와, 김덕수와 나, 셋이서 천호대교 중간쯤 왔을 때, 그 분이

죽을힘을 다해 자 하나를 더 뱉어냈습니다. “ 아이, 씨 일 ..” 나는 후사경을 통해 이 분이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의 뜻이 무언가하고 이 분의 입 모양을 더 자세히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천호대교를 다 건너 교차로 지하차도를 지나 다시 지상의 밝은 태양으로 막 나왔을 때

이 분은 드디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하시고 들었던 고개를 그냥 푹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 감동해서, 눈물을 찔끔거려야했습니다. 30여 분 동안 죽을힘을 다해,

이 분이 돌아간 자기 입을 통해 나에게 하고자했던 말은, “ , ..일례지만, ” 이었습니다.

, 실례지만 나이가 얼마? ” 질문의 앞 대가리였습니다.

 

 

 춘포

박복진

faab  마라톤화 대표







다음글 | 용기보다 오기
이전글 | 무념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