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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신혼부부 망치질 등록일 2016.09.30 04:14
글쓴이 박복진 조회 2002



신혼부부 망치질   

 

  저는 외국과 장사를 했는데 주 거래처가 영국이었습니다. 따라서 날마다 접하는 일상 거래행위나 그 거래행위에

수반되는 모든 대화가 영국인과, 영국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해외 출장지가 주로 영국이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영국인과 지내다 보니, 요새 말로 저의 일상 코드도 영국식으로 많이 닮아갔습니다. 진저리나게 싫은 영국식

사고방식도 간혹 접했었지요. 그런데 그분들과 장사 이외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언뜻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식사 끝난 뒤 후식을 들며 나누는 유머가, 우리는 배꼽을 잡으며 뒤로 나동그라질

정도로 웃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별로이어서 제가 준비해 간 웃기는 이야기가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어 몹시 민망할 때

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그들도 엄청나게 웃기는 이야기라며 말을 꺼내기 전부터 웃음을 터뜨리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전혀 아니어서, 신발을 팔아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바닥으로 내 허벅지를 때리며 분위기에

맞게 웃어줘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영국 코쟁이 한 분이 들려줬던 아래 이야기, 그렇게 웃기는 이야기인지요?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런던 시 외곽 조그만 서민아파트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대다수 영국

 젊은이들이 그렇듯 둘이는 맞벌이 부부라서 주중에 짐을 풀고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에

 파김치가 되어, 주중의 집 안 정리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지요. 첫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미뤄왔던

짐을 풀고 집 안 곳곳에 집기들을 들여놓고, 바닥을 쓸고 닦고 털고 비지땀을 흘리며 둘이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좁은 서민아파트여서 안방, 거실을 오가며 일하다 마주치면 때로 껴안기도 하고 입도 맞추며, 잠깐이지만 몸도 비비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 젊은 신혼부부는 예의가 깍듯한 가문 출신들이라, 이처럼 조용한 주택지에서

주말 아침, 집안 정리 정돈하는데 필수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그릇 딸그락거리는 소리, 진공청소기 소리, 무거운 짐을

들 때 호흡을 맞추느라 하나, 둘, 셋! 자신들이 내야하는 구령 소리조차 몹시 신경이 쓰였습니다. 혹시라도 출근이 없는

주말이라, 늦게까지 아침잠을 자는 이웃이 있을지 걱정하면서, 어서 빨리 이 소음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소음을 최대한 줄이며 할 수 있는 일들이 거의 끝나갔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액자를 걸려면 시멘트 벽 몇 군데에 못을

박아야만 하는, 커다란 망치질 소리를 피할 수 없는 아주 곤혹스런 일만 남았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 예의에 투철한 이들에게 이 일은 많은 망설임을 요구했으나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신랑이 말했습니다.

'우리, 늦잠 주무시는 이웃 사람들에게 소음 피해를 주느니 차라리 큰집으로 이사 갈 때까지 이 액자 걸기를 보류할까?

도저히 망치 소리 내며 못을 박지 못하겠어! ' 그러자 예쁜 신부가 말합니다. ' 정말 그러네요. 그러나 그림 하나 없이

휑한 벽으로 어떻게 살아요? 여기 이 그림 하나만이라도 걸게 어서 못을 좀 박아 봐요 ' 가슴을 졸이며 신랑은 의자를 갖다

놓고 그 위에 올라가서 조심스럽게 시멘트벽에 망치질을 하고, 신부는 아래에서 그림 액자를 들고 신랑을 올려다보며

걱정스레 서 있었습니다. 신랑의 펑퍼짐한 바짓가랑이 사이로 손을 밀어 올려 예민한 부위도 쓰다듬어보며 둘만 아는

미소도 지었지요. 둘은 망치질 한 번 하고 이웃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여 보고, 또 한 번 망치질을 하고 반응을 살피고…

이렇게 조심, 조심 망치질을 해나갔지만, 마음은 결코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망치질이 거의 끝나갈 무렵, 신혼부부는 현관의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둘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하던 망치질을 멈추었습니다. 신랑은 의자에서 내려와 손에 들고 있던 망치를 치우며 옷매무새를 만졌습니다.

지금 저 현관 밖에 주말의 이른 아침 소음에 대해 항의를 하러 온 이웃에게 사과할 자세를 취했습니다. 신부도 들고 있던

그림 액자를 벽에 기대어 놓고 머리를 다시 만지며, 훌륭하신 이웃들에게 조용한 주말 아침의 소란스런 망치질 소리에

대해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려 현관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곤 둘이 손을 꼭 잡고서는 이웃의 소음항의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신부가 신랑에게 어서 문을 열어드리라고 눈짓을 보냈습니다.

  문을 여니, 바깥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한 쌍의 노부부가 엉거주춤 서 있었습니다. 머리칼과 콧수염이 모두 똑같이 새하얀

할아버지가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대단히 죄송합니다. 우리는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쪽은 내

아내인 로잘린입니다. 귀만 좀 안 들릴 뿐, 나에게는 좀 애석한 일이지만 말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어 매일 해대는

잔소리 횟수에 변함이 없답니다. 다시 머리가 하얀 할머니 로잘린이 말합니다. '피터와 나는 결혼 이후 줄 곳 이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53년을 살았지요. 우리는 조용한 이 동네가 좋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지요. 피터와 나는 당신 두

부부의 이곳 입주를 환영합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아주 좋은 이웃이 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지요.'

 

  너무도 사려 깊은, 정식 항의 이전의 예절 바른 접근방식에 이들 신혼부부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소음을 야기한 누를

수 없는 자책감으로 달아올랐습니다. 이렇듯 완벽한 예의범절을 갖춘 노인 부부를 이웃으로 주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우선 이 위기를 헤치고 나서의 이야기이고, 당장은 주말 아침의 망치 소음으로 이웃에게 끼친

불편함을 어떻게 용서받아야 하는지가 커다란 관건이었습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 로잘린이 말합니다. '댁에서 박으신

못 중 하나가 우리 집 벽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젊은 신혼부부는 절망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 뜯긴 그 머리를 하늘로 꼬아 올려 계수나무에

걸어 동네 그네를 만들어줘도 시원찮을 지경에 왔습니다. 망치소음으로 항의하러 온 이웃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뚫린 벽

값도 물어주게 생겼습니다. 세상에나! 내가 박은 못이 옆집 벽을 뚫다니! 이런 결례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시설물 원상복귀는 나중 일이고, 당장 무릎을 꿇어서라도 이 결례를 용서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콧속 털까지

하얀 할아버지가 오른쪽 손으로 할머니의 오른손을 더듬거려 찾아 자기 왼쪽 손에 쥐고 자기 오른쪽 손을 제자리에 갖다놓아

바른 자세를 잡고서는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대단히 죄송스러우나, 우리 집 벽에 나온 귀댁의 그 못에 내 모자를 좀 걸어 놓아도 괜찮겠는지요?"


춘포

박복진

대한민국 뜀꾼신발 faab  마라톤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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